[Opinion] 당신을 재워드립니다. 「출장 자장가」 [문학]

오로지 남을 위해 부르는 노래가 필요한 밤은 여전히 존재하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 졸음을 참는 밤이 지나가고 있다.
글 입력 2020.05.0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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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불면과 우울함이 현대인을 대표하는 질병이 되었을까. 이제는 세상에 마음이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 감내하고 살아간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니까 호들갑 떨지 않으려고. 평소에 그럭저럭 괜찮기도 하고, 별로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으니까. 그렇더라도 이따금, 무언가 사무치는 순간은 분명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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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2018년 여름호에 실려 있는 사익찬 작가의 「출장 자장가」는 이런 지점을 섬세하게 잡아냈다. 자신은 잠을 자지 못하면서 남을 재우는 능력이라는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이야기는 잔잔하게 진행된다.

 

 


「출장 자장가」



알 수 없는 헛것으로 가드레일을 박는 가벼운 교통사고를 일으킨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왜 갑자기 헛것이 보였을까. 사고를 기점으로 주인공은 운전을 그만두고, 하던 일을 그만둔다. 영업팀 대리로 오 년을 넘게 일했지만 복잡한 생각은 정리하고 사직서를 낸다. 사직서는 빠르게 처리된다. 주인공이 갑자기 나간다고 아쉬워할 사람도, 피해 볼 사람도 없었다.


주인공은 아는 사람의 연락으로 결혼식 하객 인력 대행업체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대기업 영업직이었고 삼십 대 초반 남자로 “빛 좋은 들러리” 역할에 제격이었다. 처음에는 거짓으로 하객 행세를 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점차 주인공은 지인들의 결혼식보다 모르는 사람들의 결혼식에 가는 게 편해진다.


일(거짓말)에 능숙해져 가고 있을 때, 주인공은 우란을 만난다. 자유자재로 직업을 바꿔가며 완벽한 하객을 연기하는, 기만에 상당한 자질을 가지고 있어 보이는 우란. 우란은 자신을 소개하며 ‘출장 자장가’라는 다섯 글자가 박힌 명함을 보여준다.


어쩐지 이상한 뉘앙스를 풍기는 다섯 단어. 우란은 교통사고로 이 년을 의식불명으로 지낸 적이 있었다. 우란의 2008년, 스물셋은 사라진 시간이었다. 평생 잘 잠을 다 자버렸는지, 그 이후로 우란은 이제 잠을 자지 않는다. 그 대신에 노래로 남을 재우는 능력이 생겼다.


2008년. 주인공 역시 같은 해에 스물셋을 보내고 있었다. 우란이 죽음과 싸우며 사경을 헤매는 동안 주인공은 최악의 해를 보내고 있었다. 뭘 하든 줄줄 잃기만 하던 시절이자 가장 변변찮은 사람이었던 시절이었다. 주인공은 2008년을 지울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란의 대답은 조금 다르다.

 


“영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에요.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


가드레일을 들이박는 작은 사고는 주인공의 일상에 균열을 만들었다. 사고 후 곧바로 일을 그만두는 주인공은 기진맥진해 보인다. 지금 주인공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는 헤어진 연인인 규나를 계속해서 생각한다. 바로 옆에 사람이 필요했던 주인공이 갈구했던 규나. 규나는 계란을 싫어했고, 정말로 싫어한 것은 계란의 맛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겪은 ‘방치의 맛’이었다. 감정은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이제 규나는 계란을 먹을 수 있고 주인공은 계란을 먹지 않는다. 주인공은 규나가 떠나고 나서야 조용한 텔레비전의 문제를 인식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부턴가 자주 그런 짓을 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나를 덮쳤을 때 내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에 대해 있는 그대로 토로하려고 하기보다는 타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이야기를 바꿔 설명했다. 그러는 편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더 유리했다.”



남에게 무언 갈 설명하기가 귀찮고, 하던 일을 홧김에 그만두고 싶어진다.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내가 그다지 중요하지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주인공을 덮쳐온 무력감은 사랑했던 연인도 떠나가게 했다. 사랑해서 필요했지만, 사랑했기 때문에 헤어져야 했다. 주인공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삼키고 있는 잔잔한 무력함이 ‘그냥’ 독자를 이해시킨다. 주인공의 감정이 느껴진다는 건 어쩐지 슬픈 일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속은 비었지만 계속 살아야 했다. 원래 인생이란 그런 거니까. 세상은 진실만으론 유지되지 않고 사람을 하객 수로 재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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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잠자는 얼굴을 들키고 싶은 밤이었다.”



절대 ‘외롭다’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 단어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의 사무치는 그 감정이 느껴진다.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흘릴 수 있는 무심한 생동감 같은 것”이 절실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간절해지는 밤”이 여러 차례 나를 지나갔다. 그때 나는 주인공이 규나를 갈구했던 것처럼 연인을 갈구했다.


자주 연인의 집을 찾아가 아직 집주인이 돌아오지 않은 빈집에서 잠을 잤다. 자고 있으면 언젠가 연인이 돌아와 나를 깨운다는 사실이 좋았고, 작은 방에 단둘이서만 있으면 세상과 동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연인의 집은 내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였다. 단순히 연인의 자취방이 아니라 나의 새로운 공간이자 걱정을 잊을 수 있는 환상이었다.


자기 위해 침대에 누우면 가끔 이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상상한다. 이대로 내게 다음 날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가장 행복할 때도 가장 슬플 때도 나는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인공도 우란을 만나고 셈을 해본다. 전 재산을 들였을 때 얼마나 잘 수 있을지에 대해서. “다행히” 죽음을 살 정도의 돈은 없었다. 주인공은 그런 생각을 했으면서 죽음을 선택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영원한 잠에 “평안의 시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에게 갑자기 나타난 환상적인 존재인 우란. 우란은 심리 상담을 해주지 않는다. 그저 돈을 받고 곁에서 약속한 만큼의 자장가를 불러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가 큰 힘이 될 때는 생각보다 세상에 많다. 책을 읽는 독자는 소설 속 우란이 현실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로지 남을 위해 부르는 노래가 필요한 밤은 여전히 존재하고 우란의 자장가를 듣기 위해 졸음을 참는 밤이 지나가고 있다.

 

 



[진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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