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과 삶의 아름다움은 '나의 낙원'으로 이어진다. - 예술과 나날의 마음 [도서]

<예술과 나날의 마음>을 읽고
글 입력 2020.05.06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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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공자들처럼 유명한 화가와 그림의 제목까지 정확하게 많이 알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관심은 늘 많았다. 전시회를 좋아하고 해외 사이트의 멋진 사진 작품과 이름 모를 작가들이 그려놓은 작품에좋아요를 꾹 누른다. 가끔 TV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 등장하는 유명 화가와 그의 작품에 관한 일화를 보면서 언젠가부터 유명한 그림에 관한 에피소드 같은 게 궁금했다.

 

그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다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동서양을 막론한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에 얽힌 다양한 뒷이야기를 읽으며 미술사에 관한 흥미를 느꼈고, 그 뒤로도 이와 관련된 다양한 책이라던가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비슷한 카테고리가 나오면 유독 재미있게 즐겨보곤 했다.

 

그런 내게 <예술과 나날의 마음>은 책 제목부터가 너무 반듯하고 예쁘다는 생각을 했고, 그 안에 펼쳐질 그림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상상하게 했다이 책이 다른 여타의 예술서와 달랐던 점은 그저 그림에 관련한 이야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문학의 결합으로 우리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글쓴이의 개인적 사색을 통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책을 읽는 이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최근에 읽은 그 어떠한 책보다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지금 내게 필요한 위안을 얻은 듯하다. 분명 책에 펼쳐진 수많은 그림과 사진들을 떠올려 보면 정적인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진 다양한 이야기는 가끔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 그래서 내게 이 책은 한 단락 한 단락이 무척이나 소중했다.

 

결국, 각각의 챕터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절대 놓을 수 없는 문제, 나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쉽게 해결할 수 없고, 쉽게 놓을 수 없는 절대적인 문제. 시중에 나와 있는 문학 99%, 아니 거의 100%의 주제를 차지하고 있는인생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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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문화와 야만 사이]에서 기억에 남는 그림은 고야의 [대단한 영웅행위군! 이 주검들과!]라는 그림이었다. 잔인하게 잘려나간 사지와 얼굴, 군데군데 돋아난 잎으로 표현된 그림을 보았을 때 나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고통 속에서도 돋아난 잎처럼 무언가 희망을 얘기하겠거니 하고 말이다. 다음에 이어진 설명은 그러한 나의 예상을 완전히 잠식시켰다.

 

“언제 죽는지를 알기도 어렵지만 어떻게 죽는지, 어떤 죽음을 당하는지를 상상하기도 어려운 게 인간 현실이다.”

 

이 챕터는 어두운 현실 앞에 힘없는 자들의 무기력한 삶 속에서 예술은 밝은 분위기의 찬미와 영광을 주려 하는 목적에서 벗어나 변질과 타락의 과정을 여과 없이 그려야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탐욕을 스스로 줄일 수 없는 한, 삶의 재앙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그 안에서 예술가들은 예술이 전할 수 있는 장점을 고민한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어디론가 도피를 하고싶을 때, 우리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 좋은 풍경을 보려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 오래전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예술적 긍정의 가능성이 감사하게도 지금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좋은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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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범한 것들의 고귀함]에서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챕터이다. 맨 처음 보이는 호퍼의밤 올빼미를 좋아한다. 어두운 밤 풍경의 불 켜진 카페의 네 사람이 그려져 있다.

 

 

"늦은 밤 아직 잠 못 든 사람들 몇몇이 여기 술집에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누군가 옆에 있어도 위로이긴 어렵다각자는 다른 누구 이전에 자신의 현실과 직면해야 한다어떤 것도 자신을 만나는 그 머나먼 길에서 나를 대신할 수 없다"

 

 

라고 쓰여 있는 그림 밑의 이 짤막한 설명이 우리의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설명한 듯해서 울컥하기도 하고 오히려 너무 솔직한 글귀에 설명할 수 없는 위안을 얻는다. 불현듯 쉽게 읊조리는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눈앞에 네가 있어도 보고 싶고 외롭다.” “곁에 있어도 그립다.” “결국, 인생은 혼자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복잡한 도시의 대낮과 대조적인 어둡게 내리깔린 저녁 밤,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도 결국은 혼자서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 혼자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 이 그림 하나에 잘 녹여져 있는 듯하다.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자신만의 문제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고독을 정적으로 표현한 그림과 글이 오래도록 맴돈다.

 

 

내게는 천년을 산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이 있다.

계산서, 시 원고와 연애편지, 소송 서류, 연가들,

영수증에 돌돌 말린 무거운 머리타래로 

가득 찬 서랍 달린 장롱도

내 서글픈 두뇌만큼 비밀을 감추지 못하리.

그것은 피라미드, 거대한 지하 매장소,

공동묘지보다 더 많은 시체를 간직하고 있는 곳.

나는 달빛마저 싫어하는 공동묘지,

거기 줄을 이은 구더기들은 회한처럼 우글거리며,

내 소중한 시체를 향해 늘 악착같이 달라붙는다.

나는 또한 시든 장미꽃 가득한 오래된 규방.

거기 유행 지난 온갖 것들이 널려 있고,

탄식하는 파스텔 그림들과 빛바랜 부세의 그림들만

마개 빠진 향수병 냄새를 맡고 있다.

-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그르치지 않고, 

아무것도 원치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잠자는 것, 

이것만이 오늘날 나의 유일한 바람이다.

치사하고 메스꺼운 바람이지만, 진지한 바람이다.

-

눈 많이 내리는 해들의 무거운 눈송이 아래

우울한 무관심의 결과인 권태가

불멸의 크기로까지 커질 때,

절뚝이며 가는 날들에 비길 지루한 것이 세상에 있으랴.

이제부터 너는, 오, 살아있는 물질이여!

안개 낀 사하라 복판에서 졸면서도

막연한 공포에 싸인 화강암에 지나지 않으리

무심한 세상 사람들에게 잊히고 지도에서도 지워져,

그 사나운 울분을 석양빛에서만 

노래하는 늙은 스핑크스에 지나지 않으리.

 

- 보들레르 <우울>

 

 

3 [시와 미와 철학]은 자연과 미학의 아름다움을 논한다. 특이점은아름다웠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지속될 수 없다. 다만 좀 더디게 시들었으면 하고 헛되이 바란다.”로 끝난다. 그동안의 무수히 많이 읽었던 문법과는 현저하게 틀리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것을 진실로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삶을 쇄신하려는 반성적 노력이지만, 결국 아름다운 것은 시들고 바래진다. 그러니 아름다운 것에 너무 목매지 말고,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 자체로 흡족하자라는 글쓴이의 이야기가 나는 정말 새로웠다. 내 삶에 주어진 시시각각 일어나는 감각의 기쁨으로 이루어진 짤막한 삶을 감사히 추구하자는 생각이 절로 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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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작품이 예술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생생함'일 것이다. 이 생생함은 이성보다는 감각에서 온다. 감각은 정신이 아닌 육체의 산물이다. 바로크가 예찬한 것은 감각의 생생함이고, 생생한 육체가 땅 위에서 누리는 살아 있는 세속적 기쁨이다. 바로크의 빛과 색채, 그 역동적 드라마는 모두 지상적 삶의 실감나는 기쁨으로 귀결된다. 시시각각 일어나는 감각의 기쁨이 없다면, 삶이란 과연 무엇일 텐가. p201

 

아름다움은 단순히 예쁘고 착하며 쿨하고 섹시한 게 결코 아니다. 참된 아름다움에는 감각적 자극의 차원을 넘어 더 넓은 차원으로 나아가는 윤리적 이행의 움직임이 있다.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지만, 아름다운 것을 보고 느끼는 우리는, 이렇게 느끼는 내면 속에 쇄신의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다. p208

 

아까시나무 꽃의 아름다움도, 이 꽃을 바라보는 내 감정과 마음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봄을 예찬하는 이 글도, 마치 아까시나무 꽃처럼, 곧 이우러질 것이다. 무엇이 이 조락을, 시간의 이 어쩔 수 없는 풍화를 이겨낼 것인가. 아무것도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꽃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시듦을 추억하는 이 글은 좀 더디게 시들었으면 하고, 나는 헛되이 바란다. p209

 

 

4 [사라진 낙원을 그리다]는 각자의 낙원을 다양한 형태로 그리고 있다. 글쓴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컨스터블의 풍경화 두 점을 보여준다. 컨스터블이 보여주는 광활한 풍경으로 말미암아 글쓴이는 마음의 편안함을 느낀다. 사람이 자연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 사라지고 오가는 것들, 불가피한 소멸의 필연적 경로에 인간과 자연은 그 경계를 허물며 순리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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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로 ‘있음을 표현하는 긍정의 정의자연은 사랑을 뜻하고 나아가 사랑은 넓고 깊은 존재로 향한다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다시 나를 살게 하는 것. 예술과 자연, 사랑과 삶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요소를 설명하고 값진 의미로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또한책 읽기를 통한 오늘날 우리 각자가 그리는 낙원으로 향하는 보다 나은 길을 알려준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을 창작으로서 풀기도 하며, 말하기와 읽기, 듣기, 쓰기로 표현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삶을 표현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 아주 작은 가능성일지라도이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일상을 좀 더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것을 잊지 말자고 한다. 나의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보편적 가치를 잊지 않는 일, 작은 가능성을 놓치지 않고 어제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나의 현실을 움직이는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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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나날의 마음>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마치 어딘가 한적한 곳에 있는 숙연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상담센터를 다녀온 듯했다. 단 한 번도 상담센터라던가 정신과를 가본 적은 없지만, 왠지 그러한 곳에서 상담을 받는다면 이렇듯 편안한 기분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되게 덤덤하게 나의 인생에 관한 고민거리를 여러 가지 이야기와 그림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내게 주어진 일상에 감사함을 느끼도록 정리해준 듯하다. 늘 가까이했던 독서와 음악, 누군지 모를 작자 미상의 그림과 사진, 엽서, 자연, 성당, 풍경소리 등 내가 좋아했던 모든 것들이 나의 꿈을 이루는 아주 소소하지만 작은 가능성의 시작이고, 나조차 몰랐던 내 안의 지상낙원을 이미 개척해나가고 있을지도 모를 긍정의 기운이 솟구친다.

 

그가 말하는 예술과 사랑의 마음을 늘 가까이하고 선의 의지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이다. 자기와의 대면을 통해나의 일상을 소중히 생각하고 꿈을 이루기 어렵더라도 나만의 낙원의 흔적을 쫓아가면서 재구성하는 일 자체가 우리의 영혼을 상승적으로 이행시켜준다

 

 


 

 

예술과 나날의 마음
- 예술로 삶을 사랑하는 방식 -


지은이 : 문광훈

출판사 : 한길사

분야
인문
미학/예술철학

규격
148*210mm 양장

쪽 수 : 344쪽

발행일
2020년 02월 28일

정가 : 19,000원

ISBN
978-89-356-6338-5 (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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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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