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때로는 원동력이기도, 때로는 족쇄이기도 하다 -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도서]

고전문학을 통해 읽어내는 사랑 이야기들
글 입력 2020.05.0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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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전 문학을 통해서 사랑에 대해 정의해 나간다. 흔히 ‘사랑’의 고수들, 혹은 사랑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거나 사랑을 상위 가치에 둔 이들에 관한 문학을 다룬다. 수많은 고전 문학 작품 안에서, 사랑은 때로 잔인하게 모든 것을 앗아 가기도 하고, 평생을 살아가는데 잔잔한 에너지원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작가는 남녀 간의 로맨틱한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사랑을 권력을 도구로 쓴 클레오파트라, 모든 결혼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며 그 이면에서 신분제에 대한 비판과 타개를 이끌어낸 피가로에 대한 이야기 등을 통해 사회적인 관계들, 권력과 엮일 수밖에 없는 사랑의 특성을 짚어낸다. 지금부터는 이 책의 인상 깊었던 구절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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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게네프는 이렇게 말했다. “첫사랑은 유일하게 아직까지도 즐거움을 준다. 그 자체가 인생이기 때문이다.”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p.14

 

 

첫사랑이 그 자체로 인생이라는 말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사랑은 인생을 살아갈 힘과 원동력을 주는 것 같다. 가기 싫은 학교도, 직장도 그 곳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 등교 혹은 출근 준비를 하는 시간 마저도 행복하게 느껴 지기 마련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사랑이라는 원동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일을 할 때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도 사랑이 필요하다. 비단 연인을 향한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 절친한 친구에 대한 사랑 등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사람들은 이러한 관계를 통해 비축한 사랑의 에너지로 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그 자체가 인생이라는 것은 어쩌면 비약적인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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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에게는 어제의 사랑 약속도 오늘의 정치적 필요에 종속되었다. 주저 없이 배신을 일삼고 사랑과 유혹을 도구로 삼았던 클레오파트라가 추구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p.49


 

여기, 사랑을 또 다른 방식으로 사용했던 이가 있다. 바로 클레오파트라이다. 유혹과 배신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그는 사랑을 수단으로 취급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더 큰 것을 위하여 사랑을 희생한다. 나는 클레오파트라의 가치관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순수한 사랑은 아름답다. 한 사람만의 위한 사랑은 로맨틱하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단 한사람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어쩌면 부당한 억제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과 같은 약속과 책임을 모두 등지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자유로운 사랑을 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랑은 때로 수단이 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사랑을 목적으로 두고, 사랑을 수단으로 대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보다 다른 것을 상위 가치로 두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다. 사랑보다 야망을 택할 수도 있고, 재력을 택할 수도 있다. 자신이 매기는 사랑의 우선순위와 타인의 우선순위가 다르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다.

 

흔히, 많은 문학작품, 혹은 드라마 등 사랑을 다루는 컨텐츠에서 여성에게 사랑을 가장 우선순위에 둘 것을 강요하는 것 같다. 야망과 성공을 쫓기보다는 한 남자만을 바라보며 내조하는 조강지처를 이상적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욱이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가치관을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도 다루어져 여성들의 우선순위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


 

‘피가로의 결혼’ 2막 21장에는 “목마르지 않아도 마시고 때를 가리지 않고 사랑하는 것 말고는 우리와 다른 짐승들을 구분할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p.94

 

 

사랑은 또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요소이다. 종족 번식을 위해서,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사랑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비효율이다. 물론 인간의 사랑은 비효율적이다.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마르지 않아도 음료와 술을 마시는 것처럼, 자식을 낳아 대를 잇겠다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본능처럼 사랑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사랑은 특별하고 이상하다. 어쩌면 사랑은 모든 일에 효율을 따지는 현대인들이 유일하게 조건 없이 비효율적일 수 있는 구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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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이아는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적 사회의 희생자이다. 메데이아는 모든 여성을 대표하여 여성에게 가한 남성의 잘못을 보복한 것이다.”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p.118


 
사랑은 때로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특히, 가부장적인 성향이 짙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에게 사랑이란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다. 상자를 열면 그 안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그 끝은 파멸일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 상자를 여는 이들이 많다. 인간에게 사랑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 상자 속에는 사랑에 있어서 헌신적이고 치장해야 한다는 여성에 대한 프레임, 혹여나 헤어진 후에 데이트 폭력을 당하지는 않을지, 사랑을 하는 와중에도 나의 연인이 몰카를 통해 나를 능욕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에 대한 걱정과 시름 등 상상치도 못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사랑 앞에서 여성은 결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
 
메데이아의 서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부당한 일을 당했음에도 여성들은 여태까지 ‘사랑해서 그랬다’는 말 뒤에 모든 것을 묻으려는 사회에 자신 탓 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메데이아는 그러한 여성들을 대표하여 사회에 복수하는 인물이다. 자신을 배신한 이아손뿐만 아니라 두 자식들까지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다소 잔인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메데이아는 여태까지 여성에게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왔던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반발과 복수를 이행한 인물이라는 점이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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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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