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름밤 [사람]

잔인한 여름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이유
글 입력 2020.05.04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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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건너뛰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아침과 저녁의 일교차가 줄어든 것뿐만이 아니라, 며칠째 평균 온도가 25도를 유지하고 있다. 좋아하는 봄을 쥐도 새도 없이 앗아간 것이 원망스러워 미워하는 여름의 글을 써볼까 한다.

 



나에게 여름은


 

해가 길어진 탓에 분명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던 것은 분명한데, 그래서 뭔가 항상 시끄럽고 정신 없었던 느낌은 나는데, 나도 모르게 무더위에 정신을 잃었던 것인지 여름날의 기억은 죄다 흑백스케치로만 남겨져 있다.

 

미완성으로 남겨진 잔상이라도 떠올려보면 이렇다. 여름 특유의 숨막힘과 샤워가 소용없는 찝찝함으로 고통받고 있는 나와 이맘때쯤이면 항상 사랑에 실패하던 나. 별로 좋은 기억의 조각들은 아니다.


향수를 좋아함에도 아주 가벼운 향조차 무겁게 체감되고, 오직 섬유유연제 향만이 허락된다. 밖을 나서자마자 땀으로 범벅이 되고, 자연 바람에 건조될 땐 아직 끈적임이 남아있고 실내로 대피해 에어컨 바람으로 건조되면 곧 감기가 찾아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곳곳에서 느껴지는 땀 냄새는 후각에 예민한 내가 원망스러워질 정도이다.


 


 


난 이렇게 너는 또 그렇게 나긋한 시선으로 서롤 바라보다, 살며시 흐르는 단 공기에 문득 걸음을 멈춰 조용히 웃어 보이네



같은 여름을 배경으로, 누군가는 사랑에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한다. 쌍방의 기류가 흐르는 가사 속의 상황과는 달리 현실에서의 나는 일방의 몫만 남겨졌다. 결실을 보기도 전에 힘만 빼다 실패, 질질 끌어왔던 상대방에게 들은 단호한 대답을 끝으로 얻은 완벽한 실패, 아예 전하지도 못하고 접어둔 실패.


그래서 몽글몽글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이 노래를 그리도 좋아했는지 모른다. 앨범커버처럼 맑고도 붉었던 하늘을 고개 들어 쳐다봐야만 하는 순간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모든 것을 좋아할 순 없더라도


 

추위와 더위를 모두 타는 저주스러운 몸을 갖고 있기에 여름을 옹호하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뼛속 깊이 스며드는 겨울의 상처와 비교해보자면 여름의 것은 비교적 옅고 쉽게 아물어진다.


 

여름밤 크기조절.jpg

 


최근 몇 년간 여름의 밤하늘을 유심히 관찰해본 결과, 어둡기보단 새파랗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습했던 날씨가 선선하게 불어오는 밤공기로 전환된 순간부터 여름밤엔 결코 혼자가 아니게 된다.


친구를 불러서 집 앞 놀이터 혹은 공원에서 캔맥주를 들이켜기도 하고, 홀로 산책을 하더라도 열대야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과 함께하게 된다. 운 좋게 고독의 시간을 확보하더라도, 단골 친구인 매미를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여름은 슬픔을 만끽할 수 있는 틈이 없다. 강제적으로 외로움이 채워지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너무 높은 기온 탓에 ‘덥다’는 생각 외에는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허함에 대한 갈증에 중독된 나를 일시적으로라도 시원한 맥주 한 모금으로, 또 샤워 한 번으로 꺼내주는 고마운 밤이 있어 여름을 맘껏 미워하지 못하나 보다.


이렇게 여름의 기억은 또 한 번 미화되어진다.

 

 

*삽입된 사진은 모두 직접 촬영했습니다.

 

 

 

에디터 박수정 tag.jpg

 

 

[박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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