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예술을 통해 나를 만나다 - '예술과 나날의 마음'

문광훈의 미학에세이, 어쩌면 나에게는 응원에세이
글 입력 2020.05.0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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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한 애정



요즘 그림을 많이 그린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림 그리는 일이 좋아졌다. 나도 이런 내가 낯설어 무엇이 날 이렇게 변화시켰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중인데, 아마 복수전공을 마무리하고 학점 압박에서 좀 더 자유로운 (해탈한) 졸업반이 되었기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미술로 힘들어했던 지난 날의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그림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있고, 그리고 나는 그걸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미술에 대한 애정은 내가 예술서적을 읽는 경지까지 이르게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예술과 나날의 마음>이다. 학교에서 미술이론 수업을 들을 때에도 교수님이 제공한 프린트로만 '존버'했던 내가, 예술 서적을 읽고 메모하고, 그림를 찾아보고있다. (이게 무슨일이지?) 도서 소개 페이지도 읽어보지 않고 제목에 반하여 무턱대고 신청한 이 책은 나에게 뜻밖의 여정을 소개해주었다.

 

 

 

있는 그대로를 그려낸다는 것에 대해서-1



난 사실주의 기법을 싫어했다. 이것저것 복잡한 것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그리려는 그 마음이 괘씸했다. "똑같이 그릴거면 사진기를 쓰지 왜 물감을 쓴담?" 이라는 꼬인 마음을 가지고, 그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미술을 어려워하는 마음이 생겨난 것은 어쩌면 그 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미술작품은 깊은 뜻을 담고 있어야하고, 그렇기에 아무나 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또한 항상 미술을 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반문하고, 검열했다. 그렇게 4년을 미술과 경계태세를 낮추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러다 우연히, 지난 3월 즈음 내 눈을 사로잡는 풍경을 발견하게 된다. 깊은 뜻이고 뭐고, 그냥 똑같이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그림을 그렸다. 내가 그렇게 지양하던 미술을 지향하고 있다니, 아이러니 했다. 그렇게 흥미와 불편함이 공존하게 된다. 그리곤 어김없이 '나 잘 그리고 있는건가?'라는 반문을 시작했다. 그러다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9.jpg

 

 

 

있는 그대로를 그려낸다는 것에 대해서-2



(2)구리솥과 세 개의 달걀.jpg

저자는 모든 사물에 꿈이 있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샤르댕, 호퍼, 컨스터블 등 주로 18,19세기 화가에 대해 다룬다. 그들의 특징은 사물이나 자연, 사람을 보고 느끼는 그대로를 그려낸다는 점에 있는데, 그들에게 '있는 그대로 그린다'라는 표현은 조금 부족하지 싶다. 말로 완벽하게 형용할 수 없지만, 부족한 어휘력으로 굳이 표현해보자면, '대상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택했다' 정도가 될 것 같다.

 

당시 정물화나 장르화는 모사품으로 취급하여 가장 낮은 예술적 지위를 가졌다고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사물 자체를 오롯이 담아내는 행위를 굉장히 높이 산다. 그는 낡은 책이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정물의 사연에 대해 추측하기도 하고, 일상적인 여인의 모습을 담아낸 그림을 보며 애틋해하기도 하면서 그림의 구조, 색감 등에서 자신이 느낀 바를 이야기하듯 풀어낸다.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냄으로써 순간의 분위기를 담아냄과 동시에 사물의 몰랐던 면모를 느끼게 되고, 사물이 가지고 있는 꿈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면을 담기


 

가늘고 긴 줄기와, 동적이면서도 정적인 잎파리들을 보면 정신 못차리고 카메라로 찍어대고, 집에와서 기어코 그대로 그려버리는 요즘의 나를 보며, 과연 내 그림은 예술로서 의미가 있는 것인가 고민하던 밤이 있었다. 지난 8년간, 예고 선생님과 미대 교수님으로부터 그림에는 무조건 의미가 담겨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나로서는 어쩌면 이런 회의감이 당연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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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에서인지 식물이 좋아진 나는

줄곧 식물의 형상을

그대로 그리는 작업을 하고있다.

 


하지만 이 책과 함께 나의 그림을 돌이켜보면 내가 정말 아무 의미없이 그림을 그렸던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코로의 그림을 예로 들며, 물리적 풍경에 그리는 사람의 마음을 담아 그린 '내면 풍경화'에 대해 소개한다. 그림을 그릴 때, 외적인 형상 뿐만아니라, 그리는 사람의 정서, 이념 등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내면 풍경화라는 개념을 좀 더 곱씹어보았을때, 어쩌면 나도 식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잎의 형상과 줄기의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작지만 강한 생명성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꼭 그림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늦게나마 온몸으로 깨달았다. 식물 촬영에 열을 올린 블로스펠트의 경우 자연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는 노력을 해왔고, 그것을 본 누군가는 '자연의 형식과 예술의 형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려주었기때문이다. 고민하던 밤이 눈녹듯 기억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더 나아지려는 마음


 

저자는 가능한 일은 조금씩 하면서 책과 인문학 등을 공부하며 교양과 자기형성을 위해 시간을 쏟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 인간은 일하기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의 말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에서 철학과 예술학을 비롯한 인문학을 공부하면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서 취업을 하라.'라든지, '문송합니다.' 라든지 비웃음을 사기 마련인 요즘 세상에서, 과연 저자의 말을 듣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몇이나 될까 싶었다.

 

나 또한 졸업을 앞두고 취업를 하는 방향과 그림작업을 이어나가는 방향 사이에서 많은 고민과 갈등을 느끼고 있다. 불과 작년까지만해도 오로지 취업생각으로 이런 고민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무엇이 더 좋은 삶인지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둘 사이에서 고민을 하기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저자의 말머리에서 전하는 '더 나아지려는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기 자신과 만나는 용기


 

나는 이 책을 일고 내가 하는 일이 귀한 일이라는 것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나를 '그림만 그릴 줄 아는 바보'정도로 생각했던 지난 날의 나에게 미안해졌다. 예술의 참된 의미를 아는 사람과 글자로나마 소통하고, 그것을 토대로 나를 돌아볼 수 있음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 책의 저자는 교수로서, 연구자로서 끊임없이 예술을 탐구한다. 평생을 예술과 직접적인 관련없는 어문계열을 전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수양의 일환으로 예술을 꾸준히 감상하고 즐긴다. 어쩌면 전공자인 나보다도 예술을 사랑하는 듯 싶다.


인문학을 연구하면서도 그것을 바탕으로 사람들로 인해 좋은 영향을 끼치고, 더 나아지려는 삶을 살겠다는 그의 목표도 어느정도 달성된 듯 하다.

 

이 책 덕분에, 예술 덕분에, 나는 나를 만났다.


 

예술과 나날의 마음 표1.jpg

 


[전예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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