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대체 미술이 뭘까? - 서양미술사 [시각예술]

내 마음대로 미술 규정하기
글 입력 2020.05.03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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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뭘까?


난 항상 화려한 색감과 패턴을 흠모해왔다. 현란한 시각적 효과, 쨍한 톤에 시선을 뺏겼다. 당연히 미술 작품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시간 날 때마다 전시회를 찾았고, 직접 작품을 보는 순간 어지러운 마음이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다. 매사에 무관심하고 게으른 내가, 자의로 실천했던 일들 중 하나였다.
 
내심 미술을 바라고 가까이하고 싶어 했다. 종종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좋아한다고만 하는 것 같아, 뜨끔하기도 했다. 그만큼 작가와 작품에 대해 설명해 주는 전시회가 좋았다. 배경 설명을 차치하더라도 작품과 한 공간에 있으며 그걸 감상한다는 게 묘하게 날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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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어느 날 시간표를 짜다가, 서양미술사라는 교양을 찾았고 홀린 듯 강의를 듣고 있었다. 내 대학 생활 재밌게 공부하고 열의를 갖고 과제 제출했던 강의였다. 나름의 결론은 어쨌든 공부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틀리면 누군가 날 지적해 줄 때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만 견지한다면 된다고 결심했다.
 
조금 늦었지만, 천천히 사유하고 배워보고 싶어서 가장 대중적이고 잘 알려진 서양미술사를 읽기 시작했다.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공부하고 글을 써 내려가고 싶었던 게 그 단초였다. 사실 내가 매료됐던 미술에 가장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 넘겨버렸던 미술에 대해 말이다. 도대체 미술이 뭘까? 아름다운 오브젝트? 영혼이 담긴 역작?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곰브리치는 600여 페이지를 상회하는 저서의 서두를 두 문장으로 열었다. 그만큼 굉장히 강렬했다. 뒤이어 미술과 미술에 대해 언급한다.
 
아득한 옛날에는 흙으로 동굴 벽에 들소를 그린 사람이 미술가들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물감을 사서 게시판에 붙일 포스터를 그릴 사람들이었다. 우리들이 미술이라 부르는 말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으며 고유 명사의 미술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한 이러한 행위를 미술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의문은 시원히 해결되지 못했다. 고유 명사의 미술이라는 게 실재하지 않는다면, 미술가들만 실존한다면 미술가와 결부시켜 미술을 이해해보면 되지 않을까? 나 스스로 사유해보기로 했다. 오늘날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미술에 대해서 구체화해보기로 했다. 지금껏 주워듣고 배웠던 얄팍한 지식으로 글을 써본다.
 
 

창의력

     
미술 개념의 포문을 여는 창의력이다. 흔히 말해서, 새로운 개념이나 생각을 찾아내는 것이며 기존 관념들을 묶거나 조합해서 새로운 것으로 꾀하는 것이다. 어떤 물리적인 과정보단 일종의 사회정신적인 과정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조개껍데기나 석양, 꽃 등은 아름답지만 그 자체로는 예술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창의력이 발휘됐다고 여기지도 않으며 더더욱 미술 작품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개껍데기로 창의력이 발휘되는 어떠한 행위를 한다면 그건 미술품이다. 다음의 조개껍데기 조합도 결국 조개껍데기지만 미술품이라고 부르는 데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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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껍데기로 만든 <양과 매화꽃>, 이상혁
 
 
 
상상력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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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핸들과 안장으로 만든 <황소머리>, 피카소

 

미술의 상상력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작품이다. 피카소의 <황소머리>다. 차가운 오브제인 철로 소 머리를 형상화했다. 피카소는 길을 걷다, 우연히 버려진 자전거를 발견했다. 자전거에서 핸들과 안장을 떼어 안장 위에 핸들을 붙였다. 황소머리라고 이름 붙인 작품은 50여 년 후 런던 경매장에서 300여억 원에 낙찰됐다.
 
여기서 우리는 미술가와 기술자의 다른 점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자전거를 만드는 기술자는, 자신이 만드는 게 자전거임을 확신한다. 기성품과 같은 자전거를 만드는데 예술적 상상력이 발휘될 여지가 없다. 피카소는 자전거의 형태에서 소 머리를 연상했으며 바로 실천했다. 장인과 구별되는 건, 만드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발휘되었는지와 그 실천적 반응이다.
 
재밌는 일화가 있다. 우리가 아는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다. 그는, 조각은 돌 안에 가두어진 작품이 드러나도록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으로 다비드상, 피에타 상을 조각했고 몇 세기에 걸쳐 극찬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 조각가가 중도에 조각을 멈춘 작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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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인 <젊은노예>, 미켈란젤로
 

바로 노예상이다. 미켈란젤로는 죽기 직전까지 조각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주문으로,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미켈란젤로는 이런 상황을 "수많은 칼이 나를 찌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극단적 완벽주의자였던 미켈란젤로는 미완성으로 남기는 작품도 많았다.
 
미켈란젤로가 작업을 중단한 것은 자신이 상상했던 작품을 꺼내지 못할 거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일 테다. 예술가의 피땀어린 고군분투 같기도, 이상과 현실 사이의 전쟁 같기도 하다. 이처럼 미술가들에게 상상력은 떼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독창성과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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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전의 이야기는 과거다. 반대로 5분 후의 이야기도 미래다. 미술가도 마찬가지다. 예술 작품은 탄생되는 순간 전통에 속한다. 만들어진 작품은 모두 전통이며 예술가들이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다. 예술가가 당도한 지점이 전통의 일부가 되고 미래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
 
독창성이란 예술 창작의 모든 측면에 있어서 모방이나 표절 등에 의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고유의 힘과 개성에 입각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는 성향이나 성질을 가리킨다. 미술 분야에서 화가가 독창성을 인지하고 작품에 서명하기 시작한 시기는 15세기 이후이고 18세기 이후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독창성은 영국 시인 에드워드 영이 『독창적 작품에 대한 고찰』을 출판하면서 미학의 주요 개념으로 널리 수용되었다. 영은 독창적 작품을 자연에 뿌리를 내린 예술가로부터 나올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독창성이란 뛰어난 개인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그만이 지닌 창조적 특징이다.
 
두 개념이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술가들에 있어서 독창성과 전통은 분리될 수 없다. 옛 예술가들이 쌓아올린 전통 범주 안에서 현재 미술가들의 독창성이 발휘됨으로써 미술의 계승이 이뤄지고 반복된다.
 
 
 
의미


작가들은 인간인 이상 작품에 의미를 담는다. 이념, 사회, 혹은 작가 개인의 개성, 경험 등 작품에 어떠한 뜻이라도 담겨있다. 심지어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 "다다" 또한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다는 걸 뜻한다. 결국 다다이즘은 의미를 담게 됐고, 경멸하던 많고 많은 ism 중 하나가 됐다.
 
미술 작품은 얕든 깊든, 단순하든 복잡하든 어떤 의미라도 담고 있다. 작가의 신념, 창작 의도는 예술 작품과 단순 꾸미기를 구별한다. 미술은 단 하나의 작품으로 100 개의 단어보다 많은 걸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언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가고 듣는 과정을 통해 추리하고 해석해내지만 시각 작품은 보는 순간 즉발적인 감상이 떠오른다. 담화에 비해 매우 짧은 순간에서 표현과 감상이 교차된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은 매우 암시적이고 상징적이다. 작품 하나에 하나 이상의 이념 혹은 에피소드를 담아낸다. 에드가 드가를 살펴보자. 드가는 발레리나를 주로 그린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발레리나 얼굴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 배경은 어린 시절의 드가가 어머니의 불륜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건이다. 이후 드가는 여성 혐오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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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에드가 드가
 
 

당시 발레리나들은 대부분 스폰서를 뒀다. 발레리나 뒤쪽에는 신사의 모습이 커튼에 가려져 있다. 공연 후 발레리나와 스폰서 사이에서 벌어질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아름다운 몸짓의 발레리나, 그 이면에 존재하는 스폰서 개념을 여성 혐오적인 시각으로 그려냈다. 드가는 이런 식으로 여성 혐오적인 시각과 동시에 하층민 출신이며 당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스폰서를 감내했던 발레리나의 현실을 작품에 담았다.

 
 
 
양식


미술 작품의 주체는 당연 미술가다. 앞서 사람인 이상, 작품에 의미를 담아낸다고 했다. 그렇기에 작품에 양식이 빠질 수 없다. 사람은 당연히 어떤 한 사회의 구성원이며 필연적으로 영향받는다. 속한 사회 현상이나 가치에 대해 동조, 반립, 방관하든 특정 스탠스를 취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대 상황, 사회 상황을 고려해 미술 양식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제작자 의도는 한 개인의 사회 성향, 상황, 개성의 총체다. 모든 미술가가 한 사회에 속해 있다고 같은 제작을 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당연히 예술가들은 살아온 환경과 성격, 배경지식 등의 차이가 있다. 그 배경은 분명 사회적 환경이며 곧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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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자크 루이 다비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시기, 자크 루이 다비드가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주제를 그려냈다. 매우 격정적인 테니스코트의 서약이나 멋진 나폴레옹의 이상화 등말이다. 나폴레옹은 노새를 타고 산맥을 넘었지만 다비드는 갈퀴가 휘날리는 아름다운 백마를 그렸다. 군대를 다 보내고 안전한 상태에서 천천히 건너갔다는 역사적 사실과 별개로 나폴레옹은 전두지 휘하는 영웅처럼 그려졌다. 당시 이런 영웅화와 이상화가 주류였으며 선전 도구로 쓰였다. 실제 인물에 비해서 더욱 용맹하게, 잘생기거나 아름답게 그려냈다.
 
 
 
자아표현과 대중


미술가들은 창작 욕구만큼이나마, 인정 욕구에 휩싸여 있다. 인간에게 자연 욕구만큼 강렬하고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만큼 괴로워한다. 인정받지 못해 불행한 인생을 보냈던 미술가들을 읊으라 하면 너무 많아 모두 언급할 수 없을 테다.

 

그만큼 자아를 표현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살롱에 참여하거나 다른 미술가들과 교류하거나. 미술가들은 그만큼 자신과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가들에게 대중의 존재란 필수다.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고 가치를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중에게 자아를 표현하고 인정받는다는 건 미술가의 영원한 숙제인 것 같다.

 

미술의 주체는 미술가들이다. 따라서 미술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미술가들을 규정하고 그들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정답은 없지만 나름 주워듣고 사유하던 시간이 재밌었으며 주관적 기준을 세워보는 게 재밌었다. 나처럼 모호하고 어렴풋했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미술 매력에 빠져 같이 공부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한국문학평론가협회(2006), 문학비평용어사전, 국학자료원 

E.H.곰브리치(2017), 서양미술사, 예경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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