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난 손발이 모두 묶여도 자유하는 법을 알아

미지근한 삶과 미지근한 글쓰기
글 입력 2020.05.0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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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넘치는 바다

눈을 감고 느낀다

난 자리에 가만히 앉아

항해하는 법을 알아

소금기 머금은 바람

입술 겉을 적신다

난 손발이 모두 묶여도

자유하는 법을 알아

 

_ < 뱃노래> , 악동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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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할까···. 3월의 일상들이 천천히 글로 마음 속에 자리잡기 시작한지는 일주일 쯤 지났다. 제목도, 내용도, 전체적인 윤곽도 어느 정도 그려졌는데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사월의 첫주를 지나 중반까지 왔다. 이전에는 나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가장 쉽고 좋았는데, 요즘은 오히려 나에 대해 무언가를 쓴다는 사실이 부담스럽다. 내가 이 일상기록에 유난히 애착을 가지고 있기에 더 그런 마음이 드는 것 같다. 내 하루 하루가 모이는 글인 만큼 온전히, 정성들여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진다.


물론, 글을 쓰면 사소한 것 하나도 의미가 진해지기에 부러 글쓰기를 자제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나는 여전히 글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 이 녀석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은 위험하다. 감정이 풍요로운 일상을 살고 싶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느끼는 것은 불편하다. 어찌하든 나는 한 명의 사회인으로 기능해야했고 내 몫을 해내야 했으니, 온전히 글에 기대는 삶은 위험했다. 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득 느낄 수 있게 해주지만, 눈에 잡히는 무언가를 주진 않았기에 나는 이 녀석과 천천히 균형감을 유지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3월이 시작되고 지금의 시간까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건 코로나19가 불러온 사회적 여파였다.(이 맘때 우리 모두의 변수, 코로나!) 취직의 전쟁에 뛰어들기 시작하던 시기와 동시에  그 질병이 닥쳐오더니 내가 몸을 일으키려는 시기와 정확하게 맞물렸다. 취직과 관련한 자격증, 어학 시험들은 줄줄이 취소되었고,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아르바이트 더 귀해졌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는연장되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하나부터 열까지 내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나를 빗겨갔다. 이건 나와 비슷하게 취준을 시작하는 이들이 모두 겪는 일이고, 누군가는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도 쉽사리 마음이 나아지지 않았다. 감정의 파도를 다스리면서 묵묵히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했다. ' 나'라는 배의 양쪽 끝에서 흔들리며 균형을 잡아가는 일상이 이어졌다. 삐끗삐끗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내가 몸을 일으키지 못한 날들은 색깔없이 채워졌다.

 



색깔없는 시간, 죽어있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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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끝은 가장 색깔이 없던 시간이다. 당장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없다는 것이, 언제 치뤄질 지 모르는 시험들을 준비하며 기약없이 기다려야한다는 사실이 조금씩 나를 좀먹었다. 이 당시엔 계속 시험을 취소당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는 경험 자체가 처음이라 무력감이 더 심했던 것 같다. 마지막 주는 그나마 꾸준히 해오던 운동도 일주일 정도 빼먹었다. 그리고 완전히, 균형이 무너졌다. 아주 간만에 현실 도피를 위해 내가 자주 찾던 방법을 실천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엄청나게 많은 드라마를 보았고, 게임을 했고, 식단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먹었고, 외출도 잘 하지 않았다.


매월 결제하는 넷플릭스가 제값을 톡톡히 해내던 시기였다는 점에선 좋았지만, 생전 게임엔 관심이 없던 내가 현질에까지 발을 담궜다. 과거에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 게임에 현금을 쏟아붓는 일이었는데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나를 본 순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심지어 그렇게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다 여기던 일을 하는 와중에도 돈을 쓰는 쾌락의 맛은 즐거웠다. 어이가 없는 와중에 어처구니도 사라졌다. 지금 내가 뭘하는 건가 싶다가도, 재미는 있었다. 완벽하게 어이없는 경험이었다. 물론 한 번쯤이야 즐거웠으니 됐다고 편하게 넘기긴 했지만, 그 말이 곧 그런 일들을 용납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당장 나를 위한 어떤 것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생산적이지도, 그렇다고 정말 스스로를 위한 것도 아닌 가짜 쾌락에 더 이상 나를 맡기고 싶진 않았다.

 

일상의 밸런스를 완벽하게 무너뜨리는데 일조한 건 확실히 운동의 부재였다. 일주일 쯤 집 안에 칩거하다가 너무 답답해서 잠시 나와 강변을 뛰었는데 거짓말처럼 다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슬금슬금 걸어들어왔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쳤다는 핑계로 풀어지던 시간은 그만하면 충분했다. 아니 넘치고도 남았다. 항상 집고양이의 삶은 즐거울 것이라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막상 늘어져있는 일상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분명 즐겁긴 한데 찝찝하달까?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즐거움이었다. 아마 이런 생활은 잠시 잠깐의 도피처일뿐 어떤 해결책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선명해지는 사실 하나는 '결코 변화는 극적인 계기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작은 순간들의 의지가 쌓여서 일어나는 일'이란 점인데, 나는 자주 이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오늘의 하루를 그저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변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무언가 극적인 계기가 나를 찾아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멀리 갈것도 없이 내 과거만 돌이켜봐도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는 계기는 산책이거나, 샤워이거나, 아니면 그저 '해야겠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상 속의 작은 순간들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답답해서 몸을 조금 움직이고, 햇살을 받고, 봄의 풍경을 눈에 담았을 뿐인데,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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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클라스> 조이서 (김다미 배우)

 

 

꼭 15살의 질풍노도 중2병 시기가 아니더라도 가끔 우리들에겐 중2병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혼자서만 세상의 모든 고뇌를 짊어진 것 같고, 모든 세상의 흐름이 나를 역행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차마 평상시에는 죽어도 (오글거려서) 말할 수 없는 거대한 감정의 일렁임에 빠지는 순간이 말이다. 일주일만에 집에서 나와 강변에서 달리던 그 순간이 나에겐 그러했다. 수없이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제 3자가 보기엔 너무나 오그라드는 그 상황 말이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신이 그 상황(중2병의 순간)의 당사자가 되면 극한의 오글거림도 극복할 수 있는 극강의 철면피를 갖게 된다. 덕분에 우리는 후에 침대 위에서 이불킥은 할지언정, 당장엔 중2병의 주인공이 되어 감정의 파도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손발이 막 움찔 거리는 그 순간의 나에게 찾아온 생각은 막 정주행을 끝냈던 드라마 <이태원 클래스>의 한 대사였다. 웹툰을 기반으로 한 만큼 드라마치고는 다소 오글거리는 ('세상아 덤벼라' 마인드의 중2병 기운이 넘치는) 분위기가 난무하던 드라마였지만, 가끔은 뻔한 것이 정답이기도 하기에 그 순간 이 대사가 떠오른 것 같았다.

 

 

"자기 가치관대로 소신대로 어려운 일 같지?

온갖 핑계대면서 편하고 싶은 거겠지."

 

 

정답이었다. 어떤 이유가 됐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건, 결국 나였다. 물론 '어떤 역경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꿈을 향해 정진한 열정의 청년' 같은 존재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내가 선택한 행동과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싶었다. 시험 취소를 핑계로 어떤 일도 하지 않은 건 나였고, 그 죽어있던 날들로 인해 나타난 우울감과 무력감도 내가 감당할 몫이었다. 결국 모든 건, 핑계였다. 모든 것이 내 뜻을 벗어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나이기도 했다. 문득 또,당연하지만 자주 잊어버리는 명백한 사실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내려놓기, 미지근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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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다고 그 이후 완벽하게 성공을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했다면 거짓말을 왕창 보탠 허세일테고, 그럭저럭 꾸준한 일상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한 스트레칭과 명상을 한 후, 엄마와 산에 갔고, 집에 와서는 아침 식사를 하고, 토익 공부를 했다. 공부를 마치면 점심을 먹었고, 틈틈히 스트레칭을 했다. 이후엔 조금 쉬거나 책을 읽고 저녁 운동, 운동을 끝나면 다시 공부를 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꾸준하게 내 일상을 꾸려나갔다. 신기하게도 4월에 들어서는 운동에 굉장한 탄력이 붙어서 몸도, 마음도 점차 변해가는 과정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복잡하게 생각하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걱정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생각이 너무 많아 멍하니 공상을 하던 버릇도 점차 줄어들었다. 쓸데 없는 걱정을 할 시간에 스쿼트라도 하나 더 하자는 마음으로 몸을 움직였고, 실제로 하루의 대부분의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챙겨먹고, 먹으면서 다음 먹을 것을 생각하면서 보냈다. 아직까지 목표로 삼는 건강한 몸과 체력에 닿으려면 갈 길은 멀지만, 내 뜻대로 온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꾸준한 일상을 지탱할 수 있는 거대한 원동력이 된다.


심지어 지난 3월 말, 일주일동안 운동을 하지 않은 시간동안 느낀 불편함(?)과 무력감이 너무 커서 간단한 스트레칭이라도 매일 해오고 있다. 운동과 함께 일상을 지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침 시간이었다. 하루의 아침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날 하루의 컨디션은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아침이 망가지면 하루의 효율성이 지극히 하강하는 걸 몸소 체감했기에 하루하루의 아침을 최대한 깔끔하게 지켜내려 노력했다.


 


좋아하는 채널 @해그린달

영화같은 화면, 단순하지만 명쾌한 문장들이 돋보인다

 

 

일상 루틴을 세우고 하루하루를 일궈나가는 중요성을 심히 체감하는 요즘은 일상 브이로그를 자주 본다. 이전부터 남들이 사는 모습이 궁금해 자주 보던 컨텐츠이지만, 요즘엔 특히 더 일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 같다. 흔히 누리던 일상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시기이기에 더더욱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겨울서점 채널에서 예술가들의 하루 일상을 그려낸 《예술하는 습관》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컨텐츠를 보았다. 겨울작가님의 아침 루틴, 다른 구독자님들의 아침 루틴을 살펴보며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예술가들의 하루 일상을 대략적으로 그려낸 책과 연결지어 습관의 중요성, 일상 루틴의 힘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루를 꾸준하게 살아내는 것은, 언뜻 보기엔 미약해보일 지 몰라도 그런 하루들이 쌓여서 큰 힘을 갖는다. 나만해도 1월 달 소소한 스트레칭 습관에서 시작해서 3개월이 지난 지금은 매일 2시간 이상의 운동을 지속하는 일상을 갖게 되었다. 작은 것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습관 성형의 힘을 절실히 느끼며 충실한 하루를 살아가려 노력하는 요즘이다.

 

하루는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엄마와 대화를 하다가 서로 '많이 내려놓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걸 발견했다. 나는 온전히 내 욕심껏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 항상 노심초사했었고, 그건 엄마를 닮은 성격이었다. 부모님의 손을 빌리지 않고 4년을 꼬박 수도권에서 대학을 다니고, 많은 것들을 채워넣기 위해선 항상 무언가를 하면서 새로운 일을 준비해야했다. 엄마는 혼자서 자식 둘을 건사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대비하고 겪어내야했다.


두 사람 모두 미래에 대한 완벽한 준비가 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스타일이라 항상 걱정이 많았는데, 언젠가 한번 서로가 지쳐 크게 싸우고 난 뒤론 각자가 한 발자국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굳이 경제적인 부담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선택지를 버렸고, 엄마 역시 조금 덜 갖춰지더라도 현재를 즐기려 노력했다. 작년 한 해 엄마와 함께 살면서 우린 조금씩 서로의 부재 하에 세워진 일상의 간격을 줄여나갔고, 지금은 최대한 소소하고 즐거운 경험들로 가족 간의 시간을 채우려 노력한다. 그날 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제는 우리는 완벽하길 바라지 않고, 행복하길 바란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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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난 직후 마시는 미지근한 물 한잔은 보약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왜 하필이면 미지근한 물일까 생각했다. 미지근한 물은 체온과 가장 비슷하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기에 큰 무리없이 몸에 흡수된다. 마실 때도 마찬가지, 천천히 머금으며 마실 수 있다. 나는 요즘 자주 이 '미지근함'이란 단어에 대해 생각한다. 미지근한 것은 뚜렷한 색채가 없기에 언뜻 중요하지 않아보이지만, 큰 변화가 없고 무던하기에 오래 갈 수 있다. 한결같이, 변함없이, 꾸준하게.


이제 나는 번쩍이고 화려한 삶보단 조용하고 자박하게 흐르는, 시냇물 같은 삶을 살고 싶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큰 변화없이 무던히 나아가는 사람이고 싶다. 이전엔 글을 쓰는 사람들은 다 미지근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경거망동하지 않고 쉽게 흥분하지 않고 냉철하지만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글을 쓸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제는 이것이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작가에 대한 이미지고 사람들은 각자의 온도에 따라서 뜨겁기도, 차갑기도 한 글을 쓴다는 것을 안다. 이 미지근한 글쟁이에 대한 이미지는 내가 글을 통해 만들어내고픈 나의 페르소나였다.

 

 

 

글 _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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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미지근함의 관계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생각했었다. 나는 일상 자체에 큰 변화를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소소하고 작은 변화들은 좋아하지만, 자기 통제를 벗어나는 큰 변화에는 두려움을 느꼈다. 어쩌면 내 성향 자체가 미지근했는지도 모르겠다. 열정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핵인싸의 삶이나 자기계발과 효율에 집중해 무한정 성장하는 열정의 삶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바쁘고, 열정적으로 산다고 해도 거대하게 활기차거나 움직임이 큰 삶도 아니었다. 나는 어느 정도 세상을 관조하고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들을 가치있게 생각했다. (그래서 인문학 전공 공부가 그리 즐거웠던 거겠지) 그런 내가 글쓰는 일을 좋아했었으니, 글쓰기 역시 자연히 나와 비슷한 온도를 지닌 행위라 여겼다. 내 일상의 온도가 미지근하니, 미지근한 글쓰기를 좋아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글쓰기가 미지근한 것이 아니라 내가 미지근한 온도를 좋아하기에 미지근한 온도의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었다. 머리는 냉철하게 세상을 바라보더라도 마음은 따뜻하게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온기와 냉기가 적절하게 섞인 미지근한 글을 말이다.


 

그래서 나의 글쓰기는 미지근한 행위다.

 

나와 지극히 닮아있는.

 

큰 변화는 없지만 늘 적정한 속도로 꾸준하게 나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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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신기한 경험을 했다. 4월 초, 또 다시 시험이 취소되고 계획했던 일이 틀어져 좋지 않은 결과를 안게 되었다. 점차 멘탈을 다잡는 데 걸리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이때는 하루 정도 기분이 저조했다. 다음 달까지 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할 지, 보증금으로 쓰려고 모은 적금을 결국 해지해야 할지, 무슨 시험을 더 준비해야 할지 등 이런 저런 현실적인 고민이 계속 들었던 날이었다. 처지는 기분을 삭히는데엔 따뜻한 봄날씨가 제격이라 억지로 무거운 몸을 끌고 산책을 나갔는데, 그날의 발걸음은 유난히 느렸다. 투-욱, 투-욱, 느린 발걸음을 끌면서 걷다가 빛이 부서지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약해지는 순간엔 작고 여린 것들을 자연스레 돌아보게되는데, 봄은 그런 작고 여린 빛들이 가득 찬 계절이었다. 눈 앞에 펼쳐진 봄 풍경은 찬연했다.

 

요즘은 책에서 오는 활자의 유입량이 급격히 줄어들어서 일기도 꽤나 단순하게 쓰는 일이 많은데 유난히 문장이 길게 나오는 순간이 가끔 찾아온다. 그 날 봄의 풍경을 마주했을 때가 그러했다. 앞으로에 대한 불안함, 또 다시 흔들리는 멘탈에 대한 자책,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불만 이런 것들이 복잡하게 섞여 우울하던 와중 봄빛이 너무 좋아서 급격하게 감성적으로 변했는지도 모르겠다. 간만에 꽤 긴 일기를 걸으며 써내려갔다. 외부 상황과 관계없이 나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기다려야한다는 사실을 머리는 알았지만, 마음과 몸은 모른다고, 계속 기약없는 것들을 기다리는 일이 힘들다고. 뭐 그런 이야기를 썼던 것 같다. 그래도 해야한다고, 마음이 움직이면 몸은 움직인다고, 마음을 움직이기엔 글을 쓰면서 정리하는 일이 제격이라고. 그런 이야기도 적었다. 한바탕 일기를 빙자한 감정적 한탄을 쏟아붓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정제되지 않은 형태지만 감정을 한번 글자의 형태로 정리해서일까, 정말로 마음이 움직였다. 무거웠던 걸음은 경쾌해졌고 그제야 봄 풍경들을 보며 '예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덕분에 돌아오는 길엔 잔뜩 봄꽃 사진을 찍어서 왔더랬다. 글은 또 이렇게 소소하게 내 일상의 나아감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글은 마음을 정리하는 일이다.

흐트러진 것들을 바로 잡는 일이다.

 

너무 뜨겁지도 않게, 차갑지도 않게

미지근한 온도를 쭉 유지하면서.

 

 

미지근한 삶은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내는 삶이고, 글은 나에게 미지근한 일상의 온도를 유지하게 해주는 힘이다. 마음이 날뛸 때, 일상의 온도가 뒤죽박죽 섞일 때, 손이 문장을 뱉어내면 다소 온도가 맞춰진다. 감정의 온도를 지극히 차가운 곳에서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그 날의 경험을 통해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나의 글은 미지근하다는 걸.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나만의 필터로 삶을 정제하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늘 적정한 온도로, 체온과 비슷한 온도로 나의 일상을 버틸 수 있게 해준다는 걸.

 

너무 불타오르는 마음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쓰기는 오래 마음을 써야하는 일이기에 뜨거운 마음은 글이 무르익는데 필요한 시간을 감당하지 못한다. 너무 차가워서도 글은 쓸 수 없다. 차가운 마음은 따뜻한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다.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작은 움직임, 나의 세계를 이루는 것들, 봄과 닮은 연약한 존재들을 돌아보지 못한다. 너무 차가워진 마음은 꽁꽁 얼어버린 얼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게 미지근한 온도로 내 일상을, 내 글을 이어가려고 한다. 꾸준하게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적당히 정량적으로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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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선거도 치뤄졌고, 환자 수도 점차 안정세를 찾고있다.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조심해야하지만 다시 무탈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세바시 강연을 보다가 긍정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연히 좋게 생각하는 건 진짜 긍정이 아니라고 한다. 긍정의 사전적 의미는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함' 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긍정은 '수용' 즉 상황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 상황을 오롯이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일이다. 우리가 흔히 긍정적 표현이라고 하는 "괜찮아, 잘 될거야."라는 말은 희망은 주지만 긍정은 아닌 셈이다.


그 희망이 꺾였을 때의 오는 실망감은 더 클테니, 저 말은 상황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하는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나는 그동안 다음 시험은 치뤄질 거야, 앞으로는 잘 될 거야 같은 말들로 위안 삼으며 가짜 긍정을 해오고 있었다. 그리곤 그 기대가 어긋날 때마다 작게 계속 넘어졌던 것이고. 여러 번의 가짜 긍정 단계를 거친 끝에 이제는 진짜 긍정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손발이 묶여있다. 그리고 이 매듭은 언제 풀릴 지 알 길이 없다. 우리는 하염없이 희망을 기다리며 매듭이 풀리길 기다리기 보단, 손발이 묶여도 자유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대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또 무의식적으로 가짜 긍정을, 희망을 가지게 되는 나지만 간만에 찾아온 미세먼지 없는 봄을 느끼며 최대한 자유해보려한다. '이렇게 멘탈이 강해지는 경험도 언젠가는 쓰일 때가 있겠지'하는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말이다.

 

 

한바탕 휩쓸고 간 폭풍의 잔해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마지막 작품 


독백의 순간을 버티고야 비로소

 너는 예술이 되고 또 전설이 되었네


 “너는 꼭 살아서, 죽기 살기로 살아서, 

내가 있었음을 음악 해줘” 


그는 동경했던 기어코 물을 만나서 

물고기처럼 떠나야 했네


_ <물 만난 물고기> , 악동뮤지션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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