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거부할 수 없는 검붉은 유혹 – 뮤지컬 ‘드라큘라’ [공연예술]

글 입력 2020.05.02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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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말 오래간만에 뮤지컬을 관극하고 왔다. 그리고 약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여운에 젖어서 살아가고 있다. 매일 그 넘버를 흥얼거리고, 자려고 누우면 그 가슴 아픈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렇게 나를 앓게 만든 극은 바로 ‘드라큘라’다. 큰 기대 없이 본 작품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대극장 뮤지컬이 베풀 수 있는 모든 희열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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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절대 죽지 않는다



뮤지컬 ‘드라큘라’는 세기를 뛰어넘는 사랑을 노래한다. 400년 동안 한 여인만을 사랑한 드라큘라. 사랑 때문에 자신은 어둠과 고통뿐인 지옥에서 살았지만, 사랑하는 여인에게는 한없이 순수하고 애처로운 고백을 하는 모습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비록 그가 줄 수 있는 전부인 ‘죽음이 없는 삶, 이별이 없는 사랑’이 인간을 타락으로 이끌지라도, 그를 완전한 악으로 정의할 수 없다. 그저 자신을 살게 하는 사랑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것일 뿐일 테니.

 

미나는 드라큘라에 대한 자신의 수많은 감정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며, 남편 조나단에게 때가 오면 자신을 죽여달라 부탁한다. 그리고 극의 마지막, 드라큘라 역시 미나에게 자신에게 죽음을 줘 구원해달라 애원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위해 자신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할 때 어떤 마음일까? 아마도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부탁을 들어줘야 할 사람 역시 날카롭고 차가운 칼날이 가슴에 박힌 듯한 기분일 것이다. 사랑을 위해 여전히 눈부신 사랑을 파괴하는 잔인한 일을 해야 하는 이의 심정이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드라큘라’의 사랑 이야기에 개연성을 불어넣는 가장 큰 요소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라고 생각한다. 드라큘라, 피의 살인자임이 분명하고 악인임에 틀림이 없는데, 그의 행복을 응원하게 된다. 이는 드라큘라라는 캐릭터가 뿜어내는 매력이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큘라의 치명적인 유혹이 만들어낸 수많은 감정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미나의 모습 역시 충분히 이해가 된다.


드라큘라를 증오하고 그를 죽이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치는 반 헬싱도, 드라큘라의 유혹에 악으로 타락하는 루시도 충분히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간다. 드라큘라라는 작품의 서사에 빈틈이 없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서사에 녹아든다.


 

 

드라마틱함에 매혹되다



뮤지컬 ‘드라큘라’의 음악을 만든 프랭크 와일드혼. 지킬 앤 하이드, 시라노, 데스노트, 웃는 남자 등의 작곡가로 유명한 그의 음악은 우리의 귀를 완벽히 사로잡는다. 개인적으로 그의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 감성적이고 섬세하면서도 웅장하고 깊이 있는 음악은 나의 마음을 촉촉이 적시기에 충분하다.

 

오케스트라의 수많은 악기가 어우러졌지만, 그중에서도 현악기의 선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묵직하고 쨍한 일렉 기타 사운드는 드라큘라를, 가냘프지만 치명적인 바이올린 선율은 미나를 나타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일렉 기타 소리와 강인한 타악기의 앙상블은 강력한 힘으로 남의 피를 탐하는 드라큘라의 서사를 들려준다. 바이올린의 선율은 드라큘라의 유혹에 혼란스러워하고 고뇌하지만 이내 폭발하는 미나의 감정을 노래한다.

 

드라큘라의 음악은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한 다른 음악들의 느낌이 많이 묻어 있어 익숙하고 중독성 있지만, 그 어떤 작품의 음악보다 치명적이고 매혹적이다. 검붉은 피를 악보에 옮기면 이런 음악이 나올 것만 같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만큼이나 화려한 무대 메커니즘은 우리의 눈을 매료한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쉼 없이 돌아가는 회전무대는 시시각각 변화하며, 매 순간 다른 공간을 만든다. 추격 장면에서는 배우가 노래와 연기를 하는 중에도 무대가 돌아가며 극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하늘에서 내려오고, 스스로 섰다 누웠다 반복하는 드라큘라의 관 역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인간을 뛰어넘는 드라큘라의 힘과 능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다양하게 활용되는 블랙 스크린 역시 극의 몰입도를 높이며, 드라마를 극대화한다.

 

 


늦덕은 슬프다



이번에 뮤지컬 ‘드라큘라’를 보고 류정한 배우의 매력에 빠졌다. 그의 공연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그 어떤 역할보다 ‘드라큘라’ 역에 찰떡인 것 같다. 광기에 사로잡혀 분노하고, 위압감 있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매력적으로 표현한다.


그의 낮고 굵은 저음은 어느 배우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며, 혼자 드럼통에서 노래하는 듯한 울림과 귀에 때려 박히는 발음 역시 대단하다. 뮤지컬계의 정통파 패왕답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71년생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멋지고 섹시한 드라큘라였다. 류정한이라는 배우는 그 자체로서 드라큘라의 위험하고 공포스러운 피의 유혹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요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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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드라큘라’는 6월 7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왠지 베테랑 드라큘라 류정한 배우와 베테랑 미나 조정은 배우는 이번 시즌 드라큘라를 끝으로, 앞으로 드라큘라를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니 이번 시즌이 끝나기 전에 모두들 한창 무르익은 드라큘라의 검붉은 유혹을 맛보러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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