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나은 내일을 꿈꾸게 하는 힘, 메모 [도서]

글 입력 2020.05.0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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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가 일상이다. 지금 당장 쓰고 있는 노트만 6개다. 일상과 가장 밀접한 오늘 할 일 노트와 연간 계획 노트와 일기장부터, 책이나 전시, 공연,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 감상 노트, 책을 읽고 마음에 남는 문장을 옮겨두는 필사 노트, 나의 꿈을 위한 계획과 작은 아이디어도 놓치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드림 노트까지. 내 손이 닿는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한 나의 소중한 노트들이다.

 

사실 이러한 ‘메모’의 삶을 살게 된 건 오래된 일은 아니다. 오늘 할 일 노트는 예전부터 써왔더라도, 나머지는 정해진 노트 없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종이에 끄적이곤 했었다. 그래서 뭔가를 항상 끄적여도 모아놓지 않으면 흩어져 버리는 종이 한 장에 불과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순간 메모를 찾고 싶을 때, 종이가 사라진 좌절을 몇 번 경험한 후, 제대로 된 노트 한 권을 마련해서 메모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습관을 들였다.

 

노트를 마련한 이후, 취미는 멋없고 무언가 미완성인 느낌의 ‘끄적임’이라는 단어 대신 뭔가 있어 보이는 ‘메모’로 업그레이드되었고, 글씨가 빼곡해지고 노트에 손때 묻어가는 만큼 메모에 대한 애정이 쌓여갔다. 그래서 『아무튼, 메모』라는 제목을 봤을 때, 이건 나를 위한 책이라는 기분으로 주저 없이 읽었다.

 

아무튼 시리즈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협업하여 만든 에세이 시리즈로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한 가지’를 주제로 기획되었다. 『아무튼, 메모』는 아무튼 시리즈의 28번째 책이고, 아무튼 시리즈는 나에게 ‘믿고 읽는 즐거운 에세이 시리즈’로 자리매김했다. 몇 권의 아무튼 책을 읽었지만, 『아무튼, 메모』를 읽고 난 후 이 책은 나의 최애 아무튼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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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메모의 이유



내가 메모의 습관을 들이게 된 건 생각이 너무 많아서였다. 시도 때도 없이 중심 없는 생각들이 무의식 속에 스쳐 지나간다. 그걸 적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아! 그거 뭐였지?’ 하고 떠나간 기억을 되살리려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기록해두어야 놓치지 않는다. 내가 그 사실을 절실히 느낀 순간은 몇 개월 전에 읽었던 어떤 책의 내용을 떠올려보려고 애썼던 순간이었다. 분명 재미도 있었고 눈물이 맺힐 만큼 감동도 있었던 것 같은데 무슨 내용이었지? 구체적인 장면들과 디테일한 설정들은 이미 머릿속에 증발한 상태였다. 그때 다시 한번 메모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책에서도 저자는 ‘비메모주의자의 고통’을 역설하고 ‘메모해둘걸’이라고 되뇌며 메모의 이유를 설명한다. 저자가 처음으로 메모의 화신이 된 순간은 타인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은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열등감에 젖어있던 저자를 구원한 건 다름 아닌 메모였다. 노트에 좋은 문장들을 적으면서 자신을 위해,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메모했다. 이것은 이 책의 부제목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와도 이어지고, 메모의 의미와도 연결된다.

 

 


SO? 메모의 의미



내가 여태껏 해왔던 메모는 대부분 과거를 기억하는 의미이거나, 현재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기록이었다. 한마디로 나의 메모는 과거와 현재에 머물러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게 하는 힘으로써의 메모를 강조한다. 과거와 현재를 지탱하는 메모를 미래의 시간대까지 확장시킨다.
 
또 메모의 개인적 의미를 사회적 의미로 확장시킨다. 라디오 피디답게 저자 정혜윤은 자신이 제작한 라디오 다큐멘터리 ‘조선인 전범’에 관련한 에피소드를 ‘나는 당신을 위해서 메모합니다’라는 소제목과 함께 풀어나간다. 또, “내 사랑이 너를 지켜줬으면 좋겠다”라는 네루다의 시구를 통해 세상의 빛을 전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찰한다.
 
 
혼자서 메모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우리는 사회적 존재다. 메모는 재료다. 메모는 준비다. 삶을 위한 예열 과정이다. 언젠가는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삶으로 부화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메모할지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메모장 안에서 우리는 더 용감해져도 된다는 점이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꿈꿔도 좋다.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쓴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살지 몰라도 쓴 대로 살 수는 있다. 할 수 있는 한 자신 안에 있는 최선의 것을 따라 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있지 않은가. 자신 안에 괜찮은 것이 없다면 외부 세계에서 모셔 오면 된다. (67p)

 

 
나는 메모 습관과 메모의 이유에 대해 말하는 대목보다도 메모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깊게 와닿았다. 세상에는 끔찍한 일도 많이 일어나고 그래서 절망스럽기도 하지만 언제나 희망을 꿈꾸며 더 나은 삶을 도모하고자 하는 나의 가치관과 책이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메모를 한다는 것은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 우리의 세상을 더 나은 공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게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가장 좋은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고 믿는다. 세계가 더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혹은 “결국 내 인생은 잘 풀릴 거야”라는 믿음을 가져서가 아니다. 그런 믿음은 없다. 세상은 아수라장이다. 나는 늘 실수하고 길을 잃고 발전은 더디다. 나는 나 자신의 ‘후짐’ 때문에 수시로 낙담한다. 그래서 더욱더 나 자신이 더 나아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고 세상이 더 좋은 모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다. 마음은 어둡지만 미래에 대한 계획은 있다. 네루다의 시처럼 우리에게는 “아직 노래하지 않은 작은 단어들”이 있다. (43-44p)

 

 
이 문단을 읽으며 마치 메모는 퍼즐 조각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장에, 필사 노트에, 드림 노트에, 감상 노트에 흩뿌려놓은 문장들은 그 자체로도 존재하지만, 퍼즐로 연결되었을 때 훨씬 의미 있다. 마치 퍼즐이 모두 맞춰졌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직 노래하지 않은 작은 단어들, 혹은 아직 맞춰지지 않은 낱개의 퍼즐 조각으로 부유하는 것들을 잡아 삶으로 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모장은 꿈의 공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싶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연결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하얀 백지 메모장에 삶을 위한 예열 과정인 메모를 쌓아간다. 나의 소중한 메모장엔 나에게 항상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야망을 심어주는 채찍과 당근 같은 문장들이 있고, 오늘을 견디게 하는 감사한 일들이 있다. 이 퍼즐 조각들로 나의 세상을 퍼즐로 맞춰갈 것이다.
 
며칠 전, 큰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결심을 짓고도 불안했고 어두컴컴한 터널 속에 갇힌 것 같은 느낌에 답답했다. 그때 언젠가 필사해두었던 소설 속 문장이 떠올랐다. 필사 노트를 펼쳤고, 거기엔 『모순』의 문장이 까만 볼펜으로 쓰여 있었다.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 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서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 양귀자, 『모순』


 
문득 터널 먼 곳에서 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과거의 내가 메모해두었던 문장은 현재의 나의 결심에 힘이 되어 주었고, 이 결심이 미래의 나에게 긍정의 신호를 보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찾게 된 퍼즐 한 조각을 꼭 쥐고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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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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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사탕수수
    • 잘 읽었습니다. 메모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었는데, 이제까지 흘려보냈던 (어쩌면) 엄청난 아이디어나 영감이 안타까워지네요 ㅎㅎ 찰나의 순간을 잘 기록하는 연습을 해봐야겠어요.
    • 0 0
    • 댓글 닫기댓글 (1)
  •  
  • 담연
    • 2020.05.23 14:32:40
    • |
    • 신고
    • 사탕수수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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