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가 일상이다. 지금 당장 쓰고 있는 노트만 6개다. 일상과 가장 밀접한 오늘 할 일 노트와 연간 계획 노트와 일기장부터, 책이나 전시, 공연,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 감상 노트, 책을 읽고 마음에 남는 문장을 옮겨두는 필사 노트, 나의 꿈을 위한 계획과 작은 아이디어도 놓치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드림 노트까지. 내 손이 닿는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한 나의 소중한 노트들이다.
사실 이러한 ‘메모’의 삶을 살게 된 건 오래된 일은 아니다. 오늘 할 일 노트는 예전부터 써왔더라도, 나머지는 정해진 노트 없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종이에 끄적이곤 했었다. 그래서 뭔가를 항상 끄적여도 모아놓지 않으면 흩어져 버리는 종이 한 장에 불과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순간 메모를 찾고 싶을 때, 종이가 사라진 좌절을 몇 번 경험한 후, 제대로 된 노트 한 권을 마련해서 메모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습관을 들였다.
노트를 마련한 이후, 취미는 멋없고 무언가 미완성인 느낌의 ‘끄적임’이라는 단어 대신 뭔가 있어 보이는 ‘메모’로 업그레이드되었고, 글씨가 빼곡해지고 노트에 손때 묻어가는 만큼 메모에 대한 애정이 쌓여갔다. 그래서 『아무튼, 메모』라는 제목을 봤을 때, 이건 나를 위한 책이라는 기분으로 주저 없이 읽었다.
아무튼 시리즈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협업하여 만든 에세이 시리즈로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한 가지’를 주제로 기획되었다. 『아무튼, 메모』는 아무튼 시리즈의 28번째 책이고, 아무튼 시리즈는 나에게 ‘믿고 읽는 즐거운 에세이 시리즈’로 자리매김했다. 몇 권의 아무튼 책을 읽었지만, 『아무튼, 메모』를 읽고 난 후 이 책은 나의 최애 아무튼 책이 되었다.

WHY? 메모의 이유
내가 메모의 습관을 들이게 된 건 생각이 너무 많아서였다. 시도 때도 없이 중심 없는 생각들이 무의식 속에 스쳐 지나간다. 그걸 적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아! 그거 뭐였지?’ 하고 떠나간 기억을 되살리려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기록해두어야 놓치지 않는다. 내가 그 사실을 절실히 느낀 순간은 몇 개월 전에 읽었던 어떤 책의 내용을 떠올려보려고 애썼던 순간이었다. 분명 재미도 있었고 눈물이 맺힐 만큼 감동도 있었던 것 같은데 무슨 내용이었지? 구체적인 장면들과 디테일한 설정들은 이미 머릿속에 증발한 상태였다. 그때 다시 한번 메모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SO? 메모의 의미
내가 여태껏 해왔던 메모는 대부분 과거를 기억하는 의미이거나, 현재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기록이었다. 한마디로 나의 메모는 과거와 현재에 머물러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게 하는 힘으로써의 메모를 강조한다. 과거와 현재를 지탱하는 메모를 미래의 시간대까지 확장시킨다.
혼자서 메모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우리는 사회적 존재다. 메모는 재료다. 메모는 준비다. 삶을 위한 예열 과정이다. 언젠가는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삶으로 부화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메모할지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메모장 안에서 우리는 더 용감해져도 된다는 점이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꿈꿔도 좋다.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쓴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살지 몰라도 쓴 대로 살 수는 있다. 할 수 있는 한 자신 안에 있는 최선의 것을 따라 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있지 않은가. 자신 안에 괜찮은 것이 없다면 외부 세계에서 모셔 오면 된다. (67p)
나는 가장 좋은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고 믿는다. 세계가 더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혹은 “결국 내 인생은 잘 풀릴 거야”라는 믿음을 가져서가 아니다. 그런 믿음은 없다. 세상은 아수라장이다. 나는 늘 실수하고 길을 잃고 발전은 더디다. 나는 나 자신의 ‘후짐’ 때문에 수시로 낙담한다. 그래서 더욱더 나 자신이 더 나아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고 세상이 더 좋은 모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다. 마음은 어둡지만 미래에 대한 계획은 있다. 네루다의 시처럼 우리에게는 “아직 노래하지 않은 작은 단어들”이 있다. (43-44p)
메모장은 꿈의 공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싶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연결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하얀 백지 메모장에 삶을 위한 예열 과정인 메모를 쌓아간다. 나의 소중한 메모장엔 나에게 항상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야망을 심어주는 채찍과 당근 같은 문장들이 있고, 오늘을 견디게 하는 감사한 일들이 있다. 이 퍼즐 조각들로 나의 세상을 퍼즐로 맞춰갈 것이다.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 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서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 양귀자, 『모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