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헤아릴 수 없어도, 헤아리지 않아도. 핫펠트 '1719' [음악]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글 입력 2020.05.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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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3일, 핫펠트(HA:TFELT)의 첫 정규앨범이 발매되었다. 앨범의 제목은 ‘1719’.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그의 시간들, 어느 시절보다 혼란스럽지만 동시에 절실한 17살부터 19살의 시간들, 해가 저물어가는 푸르른 주황빛의 17~19시. 이 모든 때를 의미하는 숫자이다. 핫펠트는 같은 제목의 묶음집 또한 펴냈다. 3분 남짓한 곡들에 담긴 이야기의 파편들에 살을 붙여 이어주는, 그의 정중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진심과 공을 꾹꾹 눌러 담은 결과물들을 보며 궁금증이 생긴다. 그가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여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어떤 풍경을 자아내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같은 이유로 궁금증은 궁금증으로 내버려 두고 싶은 마음이다. 완전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들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도록 그가 기한 수고를 헛되게 하고 싶지 않다. 감히 헤아리지 못할 어떤 것들을 어설픈 공감으로 왜곡할 여지를 만들고 싶지 않다. 그의 이야기가 그대로 존재하도록, 나는 그가 제공한 틀에 들어간 채 나만의 개인적인 감상을 하고 싶다.

 

‘1719’가 의미하는 세 가지 시간들. 이 개별적인 시간들에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의미를 떠올릴 것이다. 나에게 각각의 시간들은 어떤 기억을 내보이고, 그 기억은 다시 어떤 트랙과 알맞게 연결된다. 그렇게 17시~19시는 ‘Sky Gray’와, 17세~19세는 ‘Satellite (Feat. ASH ISLAND)’과, 2017~2019년은 ‘Blue Bird’와 이어진다.

  

바쁜 아침과 다사다난한 낮 시간을 거쳐 하루의 마무리를 시작할 무렵인 17시에서 19시. 하늘이 빨갛다가, 오묘한 보랏빛을 섞고, 계절에 따라 이내 짙은 남색을 띠는 때. 이 때는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의 경계에 걸쳐져 있다. 꿋꿋하게 장비된 (혹은 장비되어야 하는) 외면을 내려놓을 수 있는 어떤 공간의 출구이자, 개인적 공간의 입구가 주로 위치하는 시간이다.

 
 

Trees and flowers lose their colors

Could I see them back before I, I

 


13번 트랙 ‘Sky Gray’는 그 시간이 유독 참기 힘들던 잠깐의 시기를 떠오르게 한다. 이 시기, 과거의 짧은 때에, 감정의 파도가 이성을 잠식하곤 했다. 노을은 빛을 잃어갔다. 그대로인 세상과 달리 나의 공간은 자꾸만 어두워져 갔다. 바깥을 마주할 장비를 갖춘 모습과 그것이 감추어준 모습의 괴리는 양극단의 절벽 같았다. 절벽 사이를 잇는 위태로운 잔교는 해 질 녘 거쳐가던 좁은 경계를 대신했다.

 

 

Haven’t u learned all these years

Nothing lasts forever

So this thing will disappear at last

The gray on my mind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 시기에 어떤 위로와 조언도 소용없던 이유는 오직 나만이 세계 간 간극을 좁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기가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어렴풋이 예상하고 무기력하게 소망했다. 가사들을 읽으며 회상하는 그때는 무채색을 띤다. 사방의 빛들이 모여 다채로운 17시~19시의 세상과는 반대로.

 

 

satellite satellite

끝을 알 수 없는 긴긴 여정 

불안해 어지러워 안간힘을 쓰지만

이 순간만큼은 빛을 낼 거야

 

 

8번 트랙 ‘Satellite (Feat. ASH ISLAND)’는 17세부터 19세를 의미하는 1719와 연결된다.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그렇듯, 나 또한 정형화된 형식 속에서 진로를 여러 번 변경했다. 많은 경험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래는 쉬이 그려지지 않았다. 가능성은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실패가 무서워 시도를 주저했다. 이 악순환이 반복될수록 검은 미래는 점점 가까이 번져온다. 적어도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불안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전진의 과정 아닐까?

 

물론, 지금도 확실한 진로는 미정이지만 그때만큼의 막막함은 없다. 그간 쌓인 작은 경험들 때문이다. 크지도, 중하지도 않지만 나름대로 쌓인 경험들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근간을 만든다. 막막함 속에 빛을 찾아 헤매던 순간들이, 자신을 위성이 아닌 별로 존재하게 만든다.

 
 

바람은 내게 말했어 따듯한 햇살 아래서

비바람을 견디고 나면 언젠가 꽃피울 거랬어  

웬일인지 난 자라지 않았고  

봉오리는 맺히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등 뒤쪽이 이따금 따끔거렸어

 

 

가사 한 줄 한 줄이 소중한 곡, 12번 트랙 ‘Bluebird’는 2017~2019년의 기억을 꺼낸다. 반항 어린 사춘기 없이 자라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던 난, 성인이 되고 나서 뒤늦은 사춘기를 맞았다. 그전엔 꽃으로 자라 향기로운 존재가 되길 꿈꿔왔다. 의문을 제기할 필요 없이 그저 그것이 정답이었다. 이것이 오답임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작은 계기와 단순한 논리면 충분했다. 그렇게나 쉬웠다. 허황된 이상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나자, 때아닌 정체성 혼란과 예상된 반발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치는 바람에 움츠러들지 마

둘러보니 사실 아무도 내게 관심도 없더라고

… 

If I ever knew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새로 태어났어 

 

 

고민이 됐다. 지금까지 살아온 길은 주류의 평탄한 길 같았고, 이것을 져버리는 순간 폭풍이 몰려와 결국엔 나를 쓸어버릴 것 같았다. 사실 정체성이야 그동안의 이상이 헛된 것임을 깨닫는 순간 일찍이 확립됐지만, 그것을 실생활에 적용하기까지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


긴 고민 끝에 뒤바뀐 가치관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지금 생각해도 그 결심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나 자신의 시나리오가 실행을 가로막는 가장 큰 반발이었을 뿐. 새로운 주류는 이미 불어나고 있었고, 나는 그곳에 안전히 안착했다. 꽃이 아닌 새가 되어.

 

내가 지나온 ‘1719’는 이런 풍경이다. 온갖 것들로 꽉 찬 우울, 불안, 용기. 기억들이 음악을 통해 나열되어 유일한 풍경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이것이 가능할 만큼 핫펠트의 음악은 항상 진심으로 다가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각별한 틀 속에서 각자의 사연으로 연결될 저마다의 ‘1719’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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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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