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밤의 해변에서 혼자, 사랑의 모습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글 입력 2020.05.0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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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밤해변 글씨.jpg


 

제목도 시나리오도 없다. 배우들은 아무 정보도 없는 영화에 캐스팅이 된다. 시나리오는 당일 아침에 쓰여 즉석에서 공개된다. 그마저도 언제 어떠한 흐름에 의해 바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촬영이 마무리 된 후, 그제서야 제목을 붙인다. 이런 영화가 있을까, 이런 영화에 출연하려는 배우가 있을까ㅡ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 영화감독의 이름은 홍상수이다.

 

앞의 설명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촬영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지도 꽤 오래 전이니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영화의 한결 같은 흐름을 볼 때면 촬영 방식 또한 쉽게 바뀌지는 않을 듯 하다. 어찌되었던 간에, 이러한 촬영 방식의 자유로움은 그의 영화에 고스란히 배어 나와 장면 장면 속 즉흥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홍상수의 의식은 늘 비슷한 곳을 가리키곤 한다. 남자와 여자, 연애와 이별, 술과 밤, 사랑하지 못할 이유들까지. 혹자는 그의 영화는 단 한편만 보면 모든 것을 본 것이라 말한다. 그만큼 반복되는 레퍼토리는 늘 유사하다. 그럼에도 유수의 영화제들에서 좋은 성과를 이끌어내는 것과 적지 않은 팬들을 보면 바로 그 지점에 그의 영화의 매력이 숨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팬들이 말하는 매력의 지점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영화에 비우호적인 이들이 지루함을 느끼는 부분과 일치한다. 그렇기에 신작이 나올 때면 늘 화제가 되긴 하지만 정작 그에 비해 실제로 영화를 본 이는 생각보다 적은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2017년에 개봉한 <밤의 해변에서 혼자> 역시 이러한 지점에 있다. 물론 5.7만명이라는 관객수가 비슷한 류의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들에 비하면 마냥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화제성에 비하면 신통치만은 않다. 특히나 이 작품에 있어서는 작품 자체보다 그의 사생활이 화두에 오르며 더욱 눈길을 끌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역시나 지극히 홍상수스러운 장면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볼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제 아무리 비슷해도 다른 제목을 달고 나와 다른 대사를 하는 다른 영화이기 때문이다. 참, 적어도 이 글에서만큼은 그의 사생활은 논외로 하려 한다. 중요한 건 그가 정말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말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함부르크에서의 1부와 강릉에서의 2부는 유사한 듯 다른 지점을 조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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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남 감독과 사랑에 빠져 구설수에 오른 배우 영희는 함부르크로 떠난다. 감독은 그녀를 따라오겠다 말하지만 그녀는 믿지 못한다. 선배 언니와 하릴없는 시간들을 보내며 그녀는 그를 기다리는 것도, 기다리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에 머무른다.

 

영화 내내 온통 검은 옷으로 무장한 의문의 남자는 끊임없이 영희를 따라다닌다. 함부르크에서 그는 영희에게 다가와 지금 몇 시인지 아냐며 뜬금없는 질문을 하기도 하며 자꾸 그녀의 시선에 밟힌다. 영희와 선배 언니는 그를 이상하게 보며 마주치지 않게 자리를 피한다. 그는 결국 1부의 마지막에 쓰러진 영희를 들쳐 업고 해변을 걸어간다.

 

그러나 2부의 강릉에서는 상황이 정 반대이다. 남자는 영희의 숙소에서 큰 유리창을 현란하게 닦으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인물 중 누구도 남자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뻔히 보이는 남자를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듯 취급하고 무시한다. 남자와 인물들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오직 영희의 행동에만 남자는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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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날 때가지도 남자에 대한 설명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영화 속 한 명의 ‘등장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감독과 영희의 관계 혹은 감독에 대한 영희의 마음이라 본다. 함부르크의 영희는 솔직하다. 선배 언니와도 감독에 관한 이야기를 터놓고 한다. 그래서 남자는 인물들에게 인식되며 접근할 수 있다.


영희는 선배에게 감독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그녀의 말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 혹시나 그가 그녀에게 와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 마음은 검은 남자가 되어 영희에게 다가와 감독이 언제쯤 올까 궁금해하는 그녀의 마음을 대변해 시간을 묻기도 한다. 그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구태여 꼭꼭 숨기지 않는다.

 

1부의 마지막 장면인 해변에서 영희는 선배 언니에게 묻는다. 그 사람도 나처럼 지금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내내 꺼내지 않던 궁금증을 그녀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물은 뒤 검은 남자에게 들쳐 업혀 간다. 실체가 된 그녀의 물음은 감독을 향한 마음에 무력하게 이끌려가게 만든다.


 

[크기변환]밤해변 남자.jpg

 

 

2부의 강릉에서의 남자는 보여도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감독을 향한 영희의 마음은 모두가 알고 있어도 모른 척 해야 하는, 영희 자신 조차 부정하는 마음이다. 외국에서는 조금이나마 자유롭고 솔직했던 그녀의 모습은 한국으로 돌아오자 전혀 찾아볼 수 없어진다. 요즘 어떠냐는 선배의 물음에도 그녀는 남자는 없다며, 남자는 모두 병신이라 생각한다는 다소 격양된 답변을 내놓는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밤의 술자리. 술에 취한 영희는 사랑이 뭔지는 아냐며 취중진담을 꺼내어 놓는다. 영희의 눈에 비친 남들은 진짜 사랑을, 가슴 아리고 슬프면서도 정열적인,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을 겪어보지 못한 이들로 비춰진다. 그러니 그녀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답답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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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생활에서의 고독 그리고 귀국한 한국에서의 실없는 잡담으로도 풀리지 않던 그녀의 답답함은 결국 그녀를 옛 애인인 감독에게로 이끌며 영화는 정점으로 치닫는다. 꿈 속에서 재회한 둘의 분위기는 사랑처럼 보이기도 증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감독은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희의 무의식이 바라던 모습이었다. 뜨내기들과 나누던 자기연민적 대화는 확실한 대상을 찾아내어 날아가 꽂힌다. 그렇게 폭발되던 에너지는 꿈에서 깬 영희의 안에 다시 담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꼭 특정한 상황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이 영화는 그저 사랑 이야기일 뿐이다. 사랑에 빠지고 떠나감을 겪었을 때, 그때의 우리는 영화 속 영희와 그리 다르지 않다. 나의 세계 속 나의 그 사람과의 사랑이야기. 남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나에게는 너무 남달랐던, 그래서 더욱 말하기 힘든 사랑 말이다. 그런 사랑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 속에서 감독의 사생활이 아닌 스스로의 이야기를 보지 않을까? 어쩌면 영희에게서 어떠한 위로를 얻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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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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