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독립영화, '옆구르기' [영화]

글 입력 2020.05.0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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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영 감독의 독립단편영화, <옆구르기>


 

체육 수행평가 '옆구르기'를 통과하기 위해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을 하는 여중생 정은. 그는 지각을 밥먹듯이 하는 그닥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다. 학교 담을 넘다가 체육 선생님한테 걸려 오리걸음하는 벌을 받기도 한다. 그런 그녀가 옆구르기만큼은 반드시 잘해보겠다는 투철한 의지가 보인다. 그 이유는 좋아하는 남자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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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에 대한 환상을 가졌던 중학교 시절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잘 보이고자 하는 민감하고 순수한 중학생 감성이 드러난 이 영화가 나를 15년 전 중학교 시절로 던져놓았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바로 옆에 철조망을 하나 두고 다른 중학교도 붙어있었는데, 남중이었다. 남학생들만 가득찬 그 학교 학생들은 등학교시간 버스에서나 마주칠 수 있었으며 베일에 쌓인 신비한 존재들이었다.

  

한번은 체육시간에 피구공이 담을 넘기는 사건이 났다. 교문에서 가장 가까운 내가 지목되어 공을 가지러 가야했었다. 친구들 앞에선 싫은 표정을 냈지만 난 뒤돌아 흐트러진 교복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 남학교로 가는 20여 미터가 나에게는 100미터처럼 느껴졌었다. 운명의 남자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심장과 호흡이 날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남학생들도 가득찬 그 운동장에 도착했더니 수십명의 남자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그중 한명이 무심하게 피구공을 휙 던져주곤 그들은 다시 축구를 진행했다. 공 갖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 친구들을 보니 마치 과도한 상상을 했던 내 마음이 들켜 버린 것만 같았다.

 

중학교 때는 이성 앞에서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알아차리기 전에 서투른 행동이 앞섰던 때였다. 지금은 내가 누구한테 눈길이 가는지, 반대로 누가 나한테 야릇한 눈빛을 보내는지 그냥 거의 안다.


그러나 가끔은 누가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 지 좀 모르고 싶다가도, 정말로 티 안내는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 소름끼친다. 이렇게 평소에 전혀 눈치 못챘는데 느닷없이 내게 고백이라도 하게 되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도 둘다 눈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는 눈치게임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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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르기>에서 정은은 엄마가 사준 꽃무늬 브래지어를 입는다. 정은은 촌스러워서 절대 입기 싫다고 하지만 엄마는 어차피 안보인다며 그냥 입으라고 핀잔을 준다. 그런데 웬걸, 정은은 옆구르기 수행평가 시간에 옆구르기하다가 상의가 젖혀지면서 꽃무늬 브래지어가 모든 학생들 앞에서 대공개되고 만다.


집에 돌아온 정은이에게 엄마는 새로운 브래지어를 사줬는데, 이번에는 무늬가 튀지 않고 '평범'했다. 그러나 정은이가 좋아하는 그 남자는 그 촌스러운 꽃무늬를 봤을테고, 이를 영문도 모르는 엄마에게 정은이는 불같이 화를 내고 만다. 엄마 때문에 정은은 망신당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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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마 정은이가 짝사랑하는 그 남자는 꽃무늬 브래지어에 별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평소처럼 지각한 정은은 그 남자도 지각한 것을 알 게 된다. 모든 학생들은 이미 학교 안에 있을 것이고, 그 둘만이 학교 철조망 앞에 마주했다. 둘은 그 남자는 정은이가 벤치에 놓고간 정은이의 이어폰을 준다. 둘 사이에 묘한 설렘의 기운이 흐른다. 정은이는 입술을 깨물었고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거렸다. 둘이 함께 학교 철조망을 넘는다.

 

봄기운 풍기는 기분 좋은 영화였다. 이렇게 독립단편영화는 화려한 CG나 자극적인 볼거리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을 보여주는 이러한 영화에서 우리 자신을 마주하고 잊었던 과거를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난 독립영화가 참 따뜻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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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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