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의 모습은 흔해빠진 것이다 - 예술과 나날의 마음 [도서]

글 입력 2020.04.3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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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플 때 간식을 먹는다. 주어진 일을 한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태양이 뜰 때쯤 일어나고, 달이 뜨면 잠자리에 든다. 옷을 입는다. 끼니를 때운다. 의식주, 일, 사랑, 자아, 사람이 끊임없이, 그것도 반복적인 흐름으로, 문득 징그럽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우리는 ‘일상’을 산다.


우리 각자에겐 너무도 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남의 인생은 어떨까 궁금해 들어가 본 누군가의 브이로그의 댓글에는 이런 글이 심심찮게 보인다. ‘남의 일상 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어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굳이 무언가를 꾸며내지 않아도 되니까, 있는 그대로, 이대로 꾸준히 올려만 주세요.’ 대댓글 혹은 영상 주인공들은 이따금 이런 글도 쓴다. ‘제 일상은 항상 똑같아요. 같은 모습을 보여드리기에는 지루할 것 같아….’


지루하고 반복된 일상에 흥미를 잃고 별일 없이 산다는 누군가의 일상도,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다른 이의 눈에는 흥미롭다. 멋없는 내 일상이 누군가에겐 궁금함으로 다가오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아마 일평생을 나 자신, 단 한 명으로 태어나고, 한 번이라도 온전히 ‘타인’이 되어볼 수 없어서이지 않을까. (나로 시작해 나로 끝나는 이 인생도 어떻게 보면 별난 것 같다)


이러한 일상을 그림 그린 예술가가 있다. 샤르댕. 책 덕분에 샤르댕에게 흠뻑 빠졌다.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 샤르댕은 대상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좋아했고, 이렇게 본 것을 곧바로 화폭 위에 그리는 것을 선호했다. 그는 대신 천천히 그렸다. 아주 꼼꼼하게 그렸기 때문에 그의 작업속도는 느렸다. 이 실천에는 몰두와 집중이 요구된다. 여유 있게, 놀이하는 마음으로, 관조하며. 그는 느끼고 생각하는 여유를 가졌다. (122페이지 中)

 

 

 

관조.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것들의 고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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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댕, 물컵과 커피포트



컵과 양파와 커피포트와 한 송이 꽃, 아니면 빵과 솥과 냄비와 계란. 너무도 흔하디흔한 것이어서 가끔은 귀찮고 성가시며 지루한 것이 될 수도 있지만, 매일 보고 먹으며 사용하는 것이기에 중요하기도 하고, 그것이 없다면 살아가는 일 자체가 어렵다는 점에서, 필요불가결하기도 하다.

 

일상에서는 그 어느 것도 하찮지 않다. 모든 것이 고상하고 고귀할 수는 없으나, 내팽개쳐도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지극히 일상적이고 범속한 것 이외에 달리 고귀한 것은 없다. 가장 평범한 것이야말로 가장 귀한 것이다.



샤르댕이 그랬듯, 문광훈 작가가 그랬듯 나도 가만히 관조해본다. 투명한 유리컵. 뜨거운 용암에서 세상에 나와 누군가의 손에 거쳐, 수많은 씻김과 사용 그리고 무언가를 옹골차게 담아내는 컵이다. 안에 담긴 물도 새삼 고맙다. 타국에 여행 갔었을 당시, 며칠간 지속된 단수로 한국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한국 태생, 이 정도면 운이 나쁜 편은 아니지 않나 끄덕여본다. 투명하고 맑은 물은 믿음이 가게 만든다. 작은 무언가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금방 걸러내게 만드는 투명함. 피곤한 일일까 정직한 일일까 궁금하다.


커피포트는 썩 귀엽다. 그을림과 사용감을 생각하고 있자니, 우리 집 부엌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커피포트가 생각난다. 커피포트는 나보다 일을 잘하는 것 같다. 버튼 하나만 내려주면 제 할 일 묵묵히, 단순하지만 열정적으로 매사에 임하는, 사명감 투철한 충성 직원 같기도 하다. 언젠간 녹슬어 다른 커피포트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때가 생기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더욱이 그렇다. 그 때에, 열심히 임해준 그에게 박수 쳐줄 이가 있으려나.


마늘 세 쪽, 그리고 시든 꽃과 잎. 이들 모두 일상적인 것이자,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진 속 모든 모델들은, 사람이 필요해서 만든 것들이자 사람을 위해 태어나 준 것들이다. 감사하고 평범하지만 고귀한 것에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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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댕, 세탁부



삶의 어떤 것도, 빨래하는 일도 옷감도 비누 풍선 놀이도, 그리고 이 모든 정경을 그린 이 그림마저, 절대적 소멸의 덧없음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샤르댕 역시 나날이 반복되는 일상의 정경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을 것이다. 거기에는 여성이 주로 담당했던 집안일, 젊은이와 아이의 행동에 대한 그의 관심이 담겨있다. 그는 별 의미 없이 되풀이되는 허드렛일의 포착이야말로 세속적 순간의 덧없는 망실을 이겨내는 어떤 세계의 창출로 이어지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겐 ‘일상’이라 함은 단순히 말해 의식주, 먹고 자고 컴퓨터하고, 일하고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하는 일 정도를 지칭한 단어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참 많다.


그림 속 여인이 그러하듯, 1700년대 사람도, 조선 시대 사람도, 지금의 나도, 이따금 손으로 빨래하고, 널고, 입는다. 방을 청소하고, 꾸미고, 정리하고, 식물에 물을 주고, 옷을 갈아입고, 이불 속에 파고들고,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고, 바람을 느끼고, 하늘을 쳐다본다. 사진을 찍거나 몸을 씻고, 설거지하고, 분리수거를 하고, 차를 타고, 옷장 앞에서 고뇌하고, 충전기를 꽂고, 초파리를 때려잡고, 머리를 말린다.


이에 더해, 나는 일기를 쓰고, 물 한 컵을 먹고, 의자에 두 다리를 올리고 글을 쓴다. 안경을 닦고 노래를 듣고, 노래를 부르고 버스 카드를 찍고, 매번 같은 프라이팬에 계란을 터트려 올리고, 스팸 전화에 미간을 찌푸린다. 안전 문자에 멍 때린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별 의미 없이 되풀이되는 이 모든 행위는 하찮은 것은 없다. 되풀이될 뿐, 작게 보면 항상 다르다. 우리는 매일 작은 이벤트를 겪으며 살고 있을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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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갓난아이에서 비눗방울 풍선을 부는 아이를 지나, 청소년, 청년을 거쳐 그 이후로 이어지는 신비한 인생.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작은 이벤트들은 중요하고 고귀한 것이다. 모든 이의 삶과 그이의 주변, 일상의 루틴에는 꼭 필요한 것들이 담겨있다. 지루하다고만 생각했고, 그저 ‘이렇게 또 하루가 가는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꽤 주체적으로 주변을 정돈하며, ‘나를 위해’ 살고 있었다. 중심엔 내가 있었다.


일상에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정리하고 치워버리면 그만이고, 필요한 것들은 채워 넣으면 된다. 일상은 똑같고 안정적이다. 필요충분한 것들이자 공평한 일상에, 감수할 이유가 없는 불평이 따른다면 바뀌기 위해 노력할 것은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그대로인 일상과 삶은, 중심인 내가 바뀌어야 순차적으로 비틀어지기 때문이다. 책 <예술과 나날의 마음> 덕분에, 한동안은 일상을 ‘징그럽고, 멀미 나는 것’으로 생각하진 않을 것 같다. 내 눈에 보이는 내 일상의 물건들은 날 위한 것들이고, 내 일과는 내게 필요한 것들이라고 끄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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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휘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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