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이웃집 파리지앵 로맨스

파리라니! 나의 첫 유럽여행이 시작된 곳이자, 예술의 도시인 파리.

"이곳에서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라는 원대한 꿈을 선사해 준 도시이기에, 파리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좋아하는 나에게 이 영화를 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마침 적당히 만나는 남자도 있겠다, 썸 로맨스라는 타이틀을 가진 달달한 영화를 보면서 행복을 한껏 느끼러 가야겠다 싶었다.

02 닮은 듯 안 닮은 듯, 스칠 듯 말 듯

포스터와 제목에서 느낄 수 있었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보다 보니 단순히 달달한 연애를 그린 영화는 아닌 듯했다. 남주와 여주가 서로에게 관심을 표하는 부분은커녕, 서로가 옆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썸세권!)을 알고는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기 때문.

그들은 바로 옆집에서 살고 있지만,

서로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결국 서로를 보듬어줄 수 있을만한 연결고리는 다분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각자 복잡한 사연을 가지고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 것, 연애에 서투르거나, 전 애인을 잊지 못하는 등 연애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동네 슈퍼를 자주 이용한다는 점 등등.

서로가 닮은 듯 안 닮은 듯, 스칠 듯 말 듯 몽글몽글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5m 반경의 상대를 발견하지 못한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03 사랑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과정

'뭐야? 그래서 언제 이어진다는 거야?'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까지도, 래미와 멜라니는 서로에게 말을 건네기는커녕 눈을 마주치는 장면조차 없다. 잠시 약국에서 약사에게 설명을 들을 때 '어? 뭔가 통하나?' 싶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결국, 관객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슈퍼 사장님이 나서게 되고, 넉살 좋은 그의 '꽁빠'영업으로 인해, 둘은 그제서야 정식으로(?) 마주할 기회가 생기게 된다.

처남이 운영하는 댄스모임 '꽁빠'를

홍보 중인 슈퍼마켓 사장님.

그 무렵, 멜라니는 정신과 상담을 통해 전 남자친구에 대한 아픔과 부모님으로부터 생긴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점차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래미 또한 동료의 해고와 잘 어릴 적 여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늘 '운이 없다'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과거를 상담을 통해 살며시 털어내면서, 맬라니 와 래미는 '나를 보듬기'를 점차 시작한다.

남을 사랑하기 전에 나를 먼저 사랑하라는 말처럼, 결국엔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자신을 보듬기 시작한 순간부터, 우연히 서로를 마주하고, 서로를 감싸 안고 춤을 추려 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들이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고나 할까?

로맨스 영화처럼,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던 포스터의 '5m 썸세권'이라는 달달한 문구는, 어쩌면 남녀 간의 물리적 거리가 아닌,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시작한 순간, 즉 자신과 자신의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한 순간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일지라도, 결국 주변에 눈을 돌리고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는 것은 바로. 자신과의 사랑을 시작했을 때, 자신과의 거리가 썸세권일 때라는 것. 그것이 영화<썸원 썸웨어>가 전하고자 하는 것 같다.

illust by 예연

<썸원 썸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