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퇴사를 꿈꾸는 사람들 - 무엇이 우리를 나가고 싶게 하는가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4.24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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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활동으로 사무실에 들릴 일이 있어 오랜만에 홍대를 왔다. 사무실은 복잡한 골목들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덕분에 길치인 나는 그곳을 찾느라 제법 애를 먹었다. 다행히도 일은 금방 끝났다.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려는데 아침에 1호선에서 탈선사고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아침부터 어떤 고생을 했는데 구태여 또 지하철을 타고 싶지는 않았다. 핸드폰으로 내가 탈 수 있는 광역버스를 찾았다. 다행히 집까지 가는 버스가 한 대 있었다. 다만 버스가 오려면 앞으로 30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 말인즉슨 남은 30분을 어디선가 때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동생이 생일선물로 읽고 싶었던 책이나 사라며 보내준 돈이 생각났다. 먹고 마시는데 조금 쓰긴 했지만, 보내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목적에 맞게 써야지 싶었다. 때마침 근처에 서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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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넓은 크기의 서점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점에 오는 건 오랜만이다. 바깥 거리만큼이나 서점 안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로 입고된 책을 정리하느라 직원 하나만이 바쁘게 돌아다녔다. 나는 우선 소설과 에세이 쪽을 훑어볼 생각이었다. 벌써 몇 달째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곰돌이 푸우와 떡볶이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의 책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언어의 온도를 이야기하는 사람의 책도 있었다. 그것들을 지나쳐 이번엔 서가에 꽂혀있는 책들로 눈을 돌렸다. 재미있는 제목의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퇴사하기 좋은 날>이란다.


‘감자’라는 닉네임으로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쓴 책이었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제목을 가진 책들이 옆에 많았다. <나는 매일 최사를 결심한다>, <퇴근 말고 퇴사가 하고 싶다>, <퇴사하겠습니다> 등등. 하긴 요즘은 이런 글들이 유행이긴 하다. 내가 활동하는 브런치에서도 퇴사 후의 일상을 글로 풀어내는 작가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퇴사를 소재로 영상을 제작하는 유튜버도 많다. 이미 SNS에서는 퇴사와 관련한 각종 농담이나 게시물들이 마치 하나의 밈처럼 퍼진 지 오래다. 그러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취준생일 때는 그렇게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서 아등바등 난리를 떨더니, 정작 직장인이 되어서는 왜 이렇게 퇴사라는 낭만을 꿈꾸는 걸까.

 

과거의 부모 세대와 다르게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는 퇴사는 일종의 문화이자 유행이다. 내가 아는 지인은 퇴사에 퇴사를 거듭하여 사는 동안 직장을 10번 옮기는 게 꿈이란다. 그의 꿈이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실제로 적지 않은 20~30대의 젊은 직장인들이 한 번쯤은 퇴사를 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보다 나은 직장을 들어가기 위해서, 혹은 직장 내 인간관계 적응에 실패해서. 불합리한 조직문화에 대한 반감 때문에. 자아성장의 기회가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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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한국인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24시간이었다. 1년이 8760시간이니, 한 해의 25%를 일하는 데에만 쓴다는 뜻이다. 조사를 실시한 국가들 중에서 우리보다 근무시간이 많은 나라는 멕시코 하나뿐이었다. 한편 한국인 노동 시간당 생산성은 34.3달러로 측정되었다. 36개국 중에서 29위에 해당한다. 하위권이다. 우리보다 노동 생산성이 낮은 국가는 폴란드, 에스토니아, 헝가리, 그리스, 칠레, 멕시코 등이 있다. 멕시코를 제외하면 나머지 국가는 연평균 노동시간이 2000시간을 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한국인은 남들보다 훨씬 많이 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적은 가치를 생산한다. 노동의 시간이 노동의 결과물과 비례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과도한 노동은 생산성에 해를 끼친다.

 

이러한 이유로 몇 년 전부터 ‘워라밸’로 지칭되는 새로운 삶의 형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저녁이 있는 삶, 일과 삶의 균형, work and life balance. 정부에서도 이러한 사회문화적 흐름에 호응하여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 등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들의 도입 취지는 하나다. 근로자에게 충분한 보상과 휴식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노동의 생산성을 끌어올려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은 유례없는 경기 침체를 실감하는 중이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 코로나19 사태 등을 감안하더라도 꽤 심각한 수준이다. 심지어 정부의 의욕적인 정책 시도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생산성이 생각보다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는 통계도 들려오고 있다. 결국 들어오는 돈은 그대로인데 나갈 돈만 늘어나게 생긴 기업들은 줄줄이 정부를 향해 볼멘소리를 내뱉는다. 보수 야당들은 이때다 싶어 정권을 물어뜯는데 열중한다. 그런데 정말 마냥 정부의 정책이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는 걸까?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말은 정책의 성공이나 실패가 아니다. 정말로 이야기하려는 건 우리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간과했던 진짜 문제에 대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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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가고 싶어 하는 기업 1위는 ‘아마존’으로 나왔다. 2위는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이다. 참고로 알파벳은 작년 조사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3위는 ‘페이스북’이 차지했고 그 뒤를 ‘SalesForce’, ‘테슬라’ 같은 회사들이 잇는다. 흥미로운 건 테슬라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IT 계열의 회사라는 점이다. 공통점은 또 하나 있다. 이들 모두 굉장히 혹할만한 복지제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과 알파벳의 복지야 말해봤자 입만 아플 것이다.


실제로 ‘알파벳’은 기업의 문화를 평가하는 인사이더몽키에서 10점 만점에 8.4점을 받았을 정도로 직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호텔 레스토랑급의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사내에 볼링장과 농구장 등의 오락시설도 구비해놓았다. 높은 연봉과 탄력근무제는 기본이다. 필요하면 외국어를 배울 기회도 제공한다. 낮잠도 잘 수 있고, 유명 인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건 구글만이 가지고 있는 ‘20% 프로젝트’ 문화다. 업무시간의 20%를 상사의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스스로를 위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시간 동안 직원은 자기계발을 할 수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 해외출장이나 관광도 가능하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어떨까? 아쉽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의 복지는 곧 돈이라는 시각이 유효하다. 삼성 같은 대기업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또한 좋은 일자리의 기준도 아직까지 연봉이 1순위를 차지한다. 뭐, 사실 이렇게라도 보상이 이뤄지면 다행이다. 몇몇 대기업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성과급은커녕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을 요구하는 것도 어렵다.

 

그렇다면 이러한 두 국가의 차이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까. 그것은 ‘조직에 대한 애정’ 문제로 표출된다. 흔히들 ‘애사심’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앞서 말한 구글이나 알파벳 같은 기업의 애사심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회사를 향해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충분한 휴식과 보상은 물론, 개인의 자기계발 기회까지 제공하는 회사를 보며 직원들은 자연스레 회사의 성장은 곧 나의 성장이라는 동일한 목표의식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이는 그/녀 자신이 근무를 하는 데 있어서 의욕의 동기가 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주 40시간제를 운영하는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약 250시간을 덜 일하는 미국인들이 시간당 노동 생산성이 한국인의 두 배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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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한민국에서 ‘애사심’은 회사가 직원들을 향해 가지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문화는 한국 사회 특유의 뿌리 깊은 공동체 문화, 군대식 문화에서 기인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는 이러한 문화가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을 겪은 것도 아니고, 새마을 운동 당시의 ‘잘 살아보세’ 같은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던 세대도 아니다. 오히려 학창시절부터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대학을 위하여 경쟁과 개인주의에 익숙한 세대다. 그런 세대에게 전체주의에나 어울릴 법한 공동체 문화를 강요하는 것부터가 애초부터 어불성설이었다.

 

주 52시간제가 실시된 후, 국내의 한 게임업체에서는 이상한 제도가 도입되었다. 자리를 15분 이상 비울 경우, 그 시간을 비근무시간으로 처리해버린다. 이를 근무시간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나마도 화장실 정도만 인정해 준다. 이러한 분 단위의 근태 관리 환경 속에서 직원들은 마치 감옥에 갇힌 것 같다는 답답함을 토로한다. 전자발찌를 차고 사는 것 같다는 직원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회사 측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제도를 통해 효율적인 업무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워라밸이 증진될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내가 대신 묻고 싶은 심정이다. 이곳은 회사인가요, 군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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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대한민국 (그것도 젊은) 직장인들에게는 자신이 속한 조직에게 애정이 없다. 연한 일이다. 과도한 시간과 낮은 연봉. 비합리적인 조직문화와 잊을만하면 번번이 일어나는 인격모욕까지. 거기다가 앞서 말한 게임회사의 사례처럼 ‘워라밸’을 이유로 회사가 나의 삶을 옥죈다면? 그런 회사에 애사심을 가질 수 있을까? 작년에 우리 학교에 와서 취업과 관련된 특강을 하고 간 선배도 이런 말을 했을 정도다. 회사는 여러분들의 꿈을 이뤄주는 공간이 아니에요. 거긴 그냥 돈을 버는 곳이죠.

 

문제는 인간은 돈을 버는 공간이 회사에서조차 자신의 꿈이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매슬로우는 ‘욕구위계이론’이라는 것을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크게 다섯 단계로 나뉜다. 가장 밑바닥에는 생리적 욕구가 있으며 그 위로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차곡차곡 쌓인다. 상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기 위해서는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어야 한다. 즉, 생리적 욕구가 우선 충족되어야만 안전의 욕구도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다수 직장은 기껏해야 사회적 욕구까지만 채워줄 뿐이다. 먹고사는 문제(생리적 욕구)만 간신히 해결해 주는 회사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인들은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4단계, 5단계 욕구를 향해 극심한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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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우리에게 직장은 자연스레 ‘돈’만 버는 곳이 된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회사, 아무리 열심히 일해봤자 내가 아닌 사장의 주머니만 성장하는 회사일뿐이다. 그래도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해 이러한 문화가 조금이나마 개선되기를 바랐건만 오히려 생색만 많아졌다. 주 52시간제를 실시하면 뭐 하나. 여전히 퇴근하려면 부장님의 눈치를 봐야 하는데. 워라밸이 실현되면 뭐 하나. 화장실 가는 것조차 사유서에 적어 보고해야 하는데. 이렇듯 성장을 공유하지 않는 불행한 환경 속에서 이익을 쫓는 인간의 본능은 결국 한 가지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나한테 도움도 되지 않는 회사 따위, 최대한 적게 일하고 돈이나 많이 벌어가자.” 제도의 악용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업의 문화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기업과 근로자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정부의 다양한 정책들이 난항을 겪고 있는 진짜 이유다.

 

주 52시간제, 워라밸 문화, 최저임금 인상 등은 그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진짜 목적은 이러한 제도를 통한 근본적인 조직 문화를 개선하여 기업과 근로자가 서로 협력관계를 맺고 윈윈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수단과 목적의 위치가 서로 뒤바뀐 것처럼 보인다. 정말 중요한 건 화사에서 일하는 동안 직원이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소비자인 직원조차 만족을 못 시킨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만족을 시키겠는가. 또한 나아가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라는 인식을 명확히 갖게 해야 한다. 이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돈을 더 많이 주는 식의 기계적인 사고 따위로는 해결할 수 없다. 토대 위에 상부구조,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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