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셔터의 권력, 사진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4.2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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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寫眞). 이 한자어를 그대로 풀이한 의미는 바로 ‘진실을 베끼다’이다. 사람의 작은 발로 누빌 수 있는 세계는 한정적이다. 또한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직접 누빈 세계의 일부마저도 과거로 재편되게 마련이고, 영원히 원형 보존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맘에 짙게 새기고 싶은 장면을 볼 때마다 카메라를 들곤 한다. 프레임을 설정하고 셔터를 누른다. 그렇게 찍힌 사진은 쉽게 방문하지 못하는 먼 나라의 풍경이 담겨 있기도 하며,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순간과 기억이 붙잡혀 있기도 하다.


이 기계가 아니었더라면 결코 구현해낼 수 없는 정밀함과 생생함. 카메라의 발명으로 인해 당시 미술계는 혼돈에 빠진 채 제3의 길을 모색했던 이유를 이해할 법도 하다. 이처럼 우리는 세계를 그대로 베껴내는 카메라에 의해 시공간을 초월하여 보고 느끼며 사진을 근거로 사실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진실을 판별한다. 그러나 사진이 정말 그 표면적인 의미처럼 진실을 베낄까? 이는 따져보아야 할 문제이다.

 


Nguyen_Van_Lem_big.jpg
General Nguyen Ngoc Loan executing a Viet Cong prisoner in Saigon (1968년 2월 1일)

 

 

손이 묶여 더 이상 저항을 할 수 없는 베트콩의 머리를 총알이 관통하는 순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카메라에 의해 포착되었다. 그 응축된 괴로움에 반해 처형하는 이의 표정과 손은 너무나도 담담하다. 아무리 전쟁 상황이라도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것인가. 이 사진을 본 전세계 사람들이 경악했고, 그 경악스러움은 전쟁의 야만성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다. 뒤이어 전세계에서 반전 여론과 시위가 들끓었다.

 

하지만 진실은 이 사진의 프레임 밖에 존재했다. 구정 공세 당시 남베트남 군인들이 건물에 숨어 있던 베트콩 한 명을 생포했다. 거리에서 즉결 처형된 베트콩은 처형 직전 수많은 여성을 강간하고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던 것으로, 국장의 부하와 가족을 죽인 당사자였다. 경찰국장 응우옌 응옥로안 국장은 국가의 치안과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자로서 바로 단죄했다. 이 순간을 AP 통신 사진기자 에디 애덤스가 카메라로 포착한 것이다.

  

그 어떤 진실도 베끼지 못한, 껍데기에 불과한 이 사진이 ‘사이공식 처형’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유명해짐과 동시에 사격의 주인공, 로안 국장은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힘들었다. 아무런 절차 없이 그 자리에서 처형을 단행한 그는 프레임 안에서 앞뒤 따지지 않는 막무가내형 살인자이자,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1975년 사이공이 북베트남군에게 함락될 때 미국으로 피신한 국장은 이후 망명하여 버지니아주로 이주해 식당을 열었지만, 사진 속 주인공이라는 정체가 밝혀지자 지역 주민들의 협박과 시위대의 분노에 의해 식당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 사진을 찍은 애덤스는 불명예와 모욕으로 점철된 로안 국장의 생애와 정반대의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스타덤에 올랐고, 기자로서 누릴 수 있는 명예를 대변하는 퓰리처상까지 수상했다. 1969년 사건 보도사진 부분에서 이 사진으로 말이다. 그러는 동안 그는 사진의 이면에 담긴 진실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다. 애덤스가 공식적으로 이 사진에 관해 이야기한 것은 1998년 7월 27일 자 타임지에 기고한 글에서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로안 국장이 사망한 지 2주가 안 된 시점이었다. 기고문을 인용한 인트로에서 던졌던 물음에 대해 답을 해준다.


 

“The General killed the Viet Cong; I killed the general with my camera. Still photographs are the most powerful weapon in the world. People believe them; but photographs do lie, even without manipulation. They are only half-truths. What the photograph didn’t say was, “What would you do if you were the General at that time and place on that hot day, and you caught the so-called bad guy after he blew away one, two or three American soldiers?”

 

 

"국장은 베트콩을 죽였다. 나는 카메라로 장군을 죽였다.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사람들은 사진을 믿고 있지만, 사진은 조작 없이도 거짓말한다. 사진은 반쪽짜리 진실이다. (후략)"

 

 

다음은 고종의 모습을 담은 두 사진이다. 동일한 인물을 피사체로 삼고 있지만, 사진에서 각기 느껴지는 인상과 분위기는 자못 다르다. 1884년 퍼시벌 로웰이 촬영한 고종의 최초 사진에서, 고종은 옷의 부피로 짐작할 수 있듯 풍채가 좋아 보이며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는 표정 역시 자애로워 보인다. 반면 러시아 군복을 입고 찍은 오른쪽 사진의 고종은 시선 처리가 불분명하며 왜소한 몸이 부각되어 보인다. 게다가 시선 처리가 불명확한 탓에 한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통치자로서의 존엄은 격하된 것만 같다. 사진의 촬영자는 일본인이었다.

 


Emperor_Gojong_of_the_Korean_Empire_by_Percival_Lowell,_1884.png고종황제.jpg

 

 

당시 일본은 의도적인 프레임 안을 구성함으로써 사진을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조선은 미개한 문명을 지녔고, 이 나라의 통치자로부터는 어떠한 발전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서양 문물을 일찍이 받아들인 우월한 일본이 조선을 구원해줘야 한다는 의미를 암묵적으로 내포한 것이다. 두 사진의 차이를 통해 알 수 있듯 고의적으로 사진을 선동의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는 정당하다는 메시지를 납득시키고자 했다. 아래는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조선 식민 지배를 좀 더 수월히 이행하고자 조선총독부가 조선 전역을 돌면서 찍은 사진 중 하나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주민들의 상의를 탈의시킨 뒤 촬영한 결과물은 일본이 과연 조선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길 원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ㅇㅇ.png
이미지 출처: JTBC 뉴스

 


사진은 그간 많은 진실을 폭로해왔다. 터키 해안가에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이 발견된 후, 많은 이들은 이슬람 테러 단체로 인해 자신의 국가를 버릴 수 없었던 시리아 난민들의 배경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험난한 실상을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또 최루탄에 피격당해 쓰러진 이한열 열사를 이종창 씨가 부축하는 동안 로이터 통신 기자에게 포착된 단 한 장의 사진은 당시 정부의 부정성과 잔혹함을 증명해주었고, 그간 정부와 언론에 의해 은폐되고 왜곡되었던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단숨에 폭로하였다.

 

그러나 본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진은 때로 많은 진실 앞에서 입을 다물곤 한다. 이는 한정된 프레임 안에서 현실을 담아낼 수밖에 없는 사진의 본질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각색의 기술』(홍재범, 연극과 인간, 2014)에 따르면 "사진 찍기는 주체 밖의 객관적 현실을 취사선택하여 일정한 크기의 틀 안에 집어넣는 것이라는 점에서 현실을 자신의 의도대로 재창조하려는 권력의지의 한 표현일 수 있다." 권력의지가 동반되지 않는 순간에도 사진은 의도와 관계없이 두 사람의 인생을 극단의 국면으로 결정 짓는 가공할 만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며 사람들의 적극적 행위를 불러일으킬 만큼의 납득 가능성과 선동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또 다른 이름의 권력이며, 우리 역시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한 진실을 왜곡시킬 수 있는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물론 프레임을 의도적으로 조정하는 것 자체로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니다. 멋스러운 카페에서 보낸 시간을 기록하려면 흘린 커피를 닦은 휴지나 마스크는 프레임 밖으로 치워야 하고, 열심히 글을 쓰는 나의 성실함을 포착하려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그 찰나에 셔터를 눌러야 한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그저 사진은 항상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뿐이다. 당신이 본 수많은 사진에는 이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길, 더 나아가 무거운 현실을 담아낸 사진을 마주할 때는 진실의 경계가 어디인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길 바란다.

  




[우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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