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가를 위한 레시피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글 입력 2020.04.2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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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일러스트 공모전을 처음 본 건 마틴 솔즈베리의 <그림책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에서 그림책 작가의 주요 수상 이력을 소개할 때 이탈리아 볼로냐의 대규모 일러스트 공모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일러스트레이션 세계에서 역사가 깊고 권위 있는 공모전이었다.

 

1967년부터 지금까지 53회를 맞은 오랜 역사를 지닌 이 공모전은, 알탄(Altan), 무나리(Munari), 이노첸티(Innocenti), 퀀틴 블레이크(Quentin Blake), 루자티(Luzzati), 숀탠(Shaun Tan) 등의 전문가들이 작품을 심사해왔다. 그만큼 실력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모이는 현장으로, 볼로냐에서 수상은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꿈같은 일이 되었다. 매년 세계 80여개 나라의 작가들이 응모하는데 최종 70여명의 작가들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하며 그 중에서 한 명에게 우승상을 수여한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서는 이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뿐 아니라 어린이 그림책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라가치상’을 수상한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션은 원래 문자로 된 텍스트의 이해를 돕는 삽화정도의 역할을 하거나, 그렇다고 인식돼왔다. 하지만 현대에는 좀 더 넓은 의미로 확장되어 디자인과 순수 예술의 경계에 걸친 모든 그림을 포괄한다. 이번 전시에서 본 그림들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였다. 보자마자 의미를 알 수 있는 확실한 컨셉의 그림도 있었고, 시각적 요소나 스타일이 무작정 좋다는 느낌이, 내용보다 더 강하게 다가오는 그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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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았던, 엠마 슈넬바흐 Emma Schnellbach의 그림. 단순한 면과 선 드로잉이 따뜻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낮은 채도인 것 같은데, 강하게 들어오는 붉은 빛과 푸른 색 면이 튀지 않고 조화롭다. 사람과 집, 나무와 물건의 형태가 자유롭지만 섬세하다. 나무를 올려다보는 사람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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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mi Vola의 그림은 흑백이지만, 곰의 우스꽝스런 표정과 행동, 혹은 곰과 함께인 사람들 때문에 경쾌한 느낌을 준다. 곰은 사람 다리에 붙고, 하수구에 얼굴을 내밀고, 자전거 앞 바구니에 타고 달린다. 낑낑대는 사람이 무색하게, 곰은 바닥에 누워 도무지 일어나려하지 않는다. 지팡이를 쥐고 등이 굽은 할머니 옆에서 함께 걷기도 한다. <나와 함께 견디다>는 제목처럼 견뎌야 하면서도 웃음을 주는 일상의 요소인가? 가족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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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꼭 실물로 봐야해! 라는 느낌을 주는 그림도 있었다. 바로 Jan Bajtilk의 그림. 실제로 보니 색감도 더 쨍하고 섬세하고 화려했다. 그가 왜 에르메스 홈의 상품을 디자인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섬세하고 따뜻하거나 화려하고 아름답기도, 어둡고 심각하지만 꼭 필요한 말을 꿋꿋이 하는 그림들. 그런데, 이 수상작들의 수상 기준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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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그림. 좋은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 혹은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컨셉이나 주제, 혹은 스타일 중에서 특별히 더 비중을 두어야 하는 영역은 어디일까? 관심은 있어도 구체적인 답을 구하거나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적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전시 곳곳에 질문과 답을 적어놓은, 코너가 의외의 도움이 될 수 있다. 심사위원마다 각기 다른 질문에 관한 답을 했다. 전체 질문과 일부의 답을 적어본다.

 

 

Harriët van Reek

Q. 개인적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전시에 선정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여러 자질이 있지만, 이미지가 ‘열려 있는지’ 여부입니다. 독자가 그림에 몰입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는지, 이미지가 보는 이를 자극하여 자신의 상상력을 사용하게 하는지 등입니다. 또,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키는 능력, 독특한 스타일,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하는 자유로움을 봅니다. … 기술도 소중한 자질이지만, 표현과 상상력이 기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다른 이력을 가진 심사위원에 비해 일러스트 작품을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았나요? 혹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지원자의 작품을 판단할 위험이 있나요?

A. 우리가 심사위원으로 임하는 동안, 일러스트레이터와 편집자들은 종종 각자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 공통적이었던 것은, 아주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보는 것’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미술학교에서 가르치는 나로서는, 내 작품과 다른 모든 종류의 다양한 스타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배웠습니다.

 

 

Diego Bianchi

Q. 제출된 작품을 검토할 때, 어떤 반복적인 주제가 있었나요? 발견하고자 하는 주제들이 있었나요?

A. 예를 들어, 애완 동물의 표현 혹은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동물 등입니다. … 그들(식물학이나 식물을 직접 관찰하는)을 모방하는, 피상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한 일을 따라하고 반복하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이러한 자세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Q. 아동을 위한 그림책은 죽음, 질병, 사망, 또는 전쟁 등 어려운 주제들에 접근하려고 노력해야 하나요?

A. 왜 우리는 어린이들과 대화할 때 특정한 주제를 배제해야 하나요? … 아이들이 아직 내재화하지 않은 것은 우리 어른들의 편견입니다. 그들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넓은 범위의 가능성을 제시하도록 합시다.

 

 

Beatrice Vincent

Q. 그림책 연작을 출판하는 출판사는 한편으로는 작가의 창의성과 작품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의 필요성 사이의 중개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취하는 것은 어려운가요?

A. … 우선 나는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시장이 새로운 작품으로 포화되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아름다운 책을 출판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모든 신간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 비록 형식은 고전적이지만 의도에 있어서는 독창적인 작품을 보다 예술적이고 깊이 있는 제품들과 결합하여 제작하려고 합니다.

 

Q. 좋은 일러스트레이터는 항상 동화책의 일러스트도 잘 그린다고 생각하나요?

A.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일러스트가 하나의 예술이며, 예술은 특정한 청중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보편적이라고 믿습니다. 그 차이점은 주제에 있습니다. 어떤 주제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러스트레이터는 이야기를 할 때, 잠재적으로 아동 도서의 일러스트레이터가 됩니다. 일러스트나 그래픽 아트, 현대 미술, 만화 분야의 출신인지, 작품이 비유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Maciej Byliniak

Q. 훌륭한 일러스트레이터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져야 하나요? 혹은 그럴 경우 일종의 자기푲러에 빠질 위험성이 있나요?

A. 훌륭한 일러스트레이터는 무엇보다도 개성이 있어야 합니다. 개성이란 단순히 말해서 특정한 스타일보다 더 나아간 것입니다. … 나는 그 스타일을 일러스트레이터의 개성을 발전시킨 자연스런 결과로 보고 싶습니다. 그 개성은 영향과 매력, 다양한 경험, 미학적 성향과 선호 등 많은 다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물을 보는 개별적인 방식과 독립적인 개인적 판단, 자신의 길을 찾는 노력, 또한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까지 해온 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훌륭한 일러스트레이터는 여러 스타일을 넘나들면서도 일정한 깊은 수준의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 작가일 뿐 아니라 자신만의 예술적인 개성을 갖추어 성숙한 작가라면 말입니다. … 나는 반복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예술가의 능력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창의적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스타일 문제를 어어떻게 다루든 간에,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자기 표절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특한 스타일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특정한 틀에 빠져 경계심이 느슨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 하지만 특정한 스타일을 확립하는 것과 창의성의 위기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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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계속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부터,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좋은 그림을 보면 질투가 나서 순수한 감상은 다른 방향의 생각으로 흘렀다. 나는 어떻게?

 

이런 내게 이번 전시는 마치 맛있는 식탁 같았다. 다양한 종류(스타일)의, 그러나 엄격한 심사와 경쟁을 거쳤기에 맛이 없을 리 없는 음식들이 놓인 잔칫상이었다. 일단은 마음껏 즐겼다. 그러다 곳곳에 있는 레시피도 확인했다. 맛있는 음식의 기준을 참고해서 만들면 되겠구나.

 

그림은 진짜 음식처럼 재료의 계량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아주 좋은 음식을 맛보고 나면 힘이 나는 것처럼 좋은 그림들을 보고 다시 힘을 얻는다. 보지 않고서는 나도 그릴 수 없겠지. 동시대 작가들과 함께 산다는 감각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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