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지나온 기적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영화]

우리는 그 기적들을 지나쳐왔을까, 통과해왔을까
글 입력 2020.04.1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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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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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기적. 본질은 비슷하지만, 연장선의 차이는 큰 단어들. 예상치 못한 일을 두고 우리는 어떻게 믿고 있을까? 어떻게 믿고 싶은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고레에다 히로카즈, 2011)의 주인공, 코이치(마에다 코우키)는 우연한 부모의 이혼을 기적처럼 되돌리고 싶어한다. 예전처럼 네 식구가 한 가정을 이루어 살기를 바란다. 그렇게 소원하게 된 것이 바로 화산 폭발. 코이치는 동네 화산이 폭발하여 자신이 엄마와 함께 동생 류노스케(마에다 오시로)가 있는 아빠의 집으로 이사 가기를 기도한다.

 

그러던 중 열차가 처음 스쳐 지날 때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생각난 코이치. 그는 동생 류노스케,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소원을 빌러 가기로 계획한다. 열차표를 마련하기 위해 자판기 밑을 뒤지고, 장난감을 팔며 돈을 모으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그 간절함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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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용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학교를 조퇴하기 위해서는 외할아버지(하시즈메 이사오)의 도움이, 꾀병을 들키지 않으려면 간호 선생님의 도움이, 타지에서 문제없이 하룻밤을 보내고 첫 기차를 보려면 잠자리를 제공해 줄 동네 주민의 도움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어른들의 도움을 받는데 성공하고, 서로 스치는 두 열차를 보고 소원을 빈다. 그런데 각자의 소원을 목청껏 외치는 아이들 사이에서 정작 이 모든 계획의 중심이었던 코이치는 침묵한다.

 

영화에는 전반적으로 코이치의 외할아버지가 중시하는 ‘전통’과, 코이치의 아버지인 켄지(오다기리 죠)가 중시하는 ‘세계’의 대립이 나타난다. 그리고 결국 전통에서 세계, 즉 보수에서 개방으로의 시대 흐름 변화를 보여준다. 가루칸떡을 만드는 할아버지는 가루칸떡의 대중성을 위해 분홍색으로 만들어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한다. 전통의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관점에선 이혼보다 가정의 결속이 더 바람직하다.

 

반면, 아버지 켄지는 켄지는 보다 자유로운 생각의 소유자이다. 켄지는 자신과 전아내의 재결합을 제안하는 아들 코이치에게 개인적인 생각을 하기보단 세계같이 더 큰 일에 관심을 두라고 말한다. 즉, 부모의 재결합을 바라는 것은 코이치의 개인적인 상황만을 염두에 두는 지엽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는 보다 넓은 관점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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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시작으로 영화는 무책임과 자유로움의 경계에서 켄지를 보호한다. 이전까지 위험할 정도의 양육방식으로 무책임함을 보이던 켄지다. 그런 그는 바로 직전 신에서 자식과 손자 대신 조상님을 택한 외할아버지와 나란히 위치하게 된다. 아들에게 삶의 조언을 던지는 아버지의 모습이 외할아버지와 대조되며 상대적으로 켄지의 무책임함이 희석된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켄지의 부실은 그를 찍는 쇼트의 변화로 더 강력히 무시된다. 코이치와의 통화 초반, 롱 숏으로 잡히던 켄지는 ‘세계’를 언급하고 나자 바스트 숏으로 확대된다. 이와 같은 쇼트의 변화로 켄지는 나름의 의미를 갖고 살아가는 그럴듯한 어른의 모습을 입는다.

 

아버지의 충고를 들은 이후에도 코이치는 전통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수영을 포기할지언정, 소원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득 허옇고 밍밍한 가루칸떡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할 무렵, 코이치는 전통이 아닌 세계를 선택한다. 소원을 빌지 않는다. 영화는 이렇게 한 단계 성장한 코이치와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에 속하는 아버지가 세계를 전통보다 중시하는 것을 통해 시대 의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코이치가 소원을 빌지 않은 이유가 그의 시야에 들어온 ‘세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비현실적으로 친절한 어른들, 동화 같았던 하룻밤, 그리는대로 닥친 현실. 성공적으로 끝난 이 여정의 근원이 기적임을 그는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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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존중’을 강조한다. 영화 속 어른들은 그 누구도 아이들을 꾸짖거나, 경시하지 않는다. 기적을 바라는 아이들의 순수한 계획을, 그것의 이행을, 모두 존중한다. 아무도 이를 방해하거나 막지 않는다. 덕분에 아이들은 무사히 소원을 빌러 갔다. 소원을 빈 후, 강아지 마블의 부활을 기원한 친구 마코토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코이치는 시각을 넓혔으며, 여배우가 꿈인 메구미는 꿈의 실현을 위한 동력을 얻었다. 결국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믿음과 존중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다.

 

문제는 영화에서 이 존중의 시선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에 있다. 순수함으로 가득 찬 이 영화에도 불필요한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빠지지 않았다. 선생님을 향한 선망은 굳이 그의 다리를 주시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카메라는 선생님의 다리만을 화면 가득 담는다. 선생님을, 여성의 다리를 철저히 성적 대상화 한다.


더 한 것은 일순 지나가는 메구미(타이라 유우나)를 향한 성인 남성의 말이다. ‘엄마를 꼭 닮은 저 눈이 죽이네’. 어디서든 당장 멈춰져야 하는 성적대상화, 그리고 여성혐오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성장을 다루는 ‘깨끗한’ 영화마저 이 습관적인 더러움을 담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 와중에도 희망으로 가득 찬 아이들의 모습에, 조용히 자리 잡은 여성 혐오적 시선은 불쾌함보다 안타까움을 유발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코끝에 희미한 냄새들이 진동한다. 아이들의 풋풋한 땀냄새, 정신없는 어릴 적 기억 속의 쇳내. 그렇게 아이들의 설렘, 순수함, 불안함만은 모두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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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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