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든 기적의 시작은 - 너의 이름은, 2017 [영화]

글 입력 2020.04.1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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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의 이름은

your name, 2017

 

감독 : 신카이 마코토

배우 : 카미키 류노스케, 카미시라이 모네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와 시골에 사는 소녀 ‘미츠하’는 어느 날부터인가 서로의 몸이 바뀌는 신기한 꿈을 꾸게 된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 자신들에게 닥친 일이 꿈이 아닌 현실이란 걸 알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소통하기 시작한다. 한편 언제부터인가 서로의 몸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긴 타키는 희미해지는 기억을 더듬어 미츠하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

 

그날의 장면을 떠올린다.


아이들의 환한 미소와 살고 싶었던 그녀는 아픈 환자들의 곁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2014년도에 수학여행을 갔는데 저희가 탄 배가 침몰한 사건이 있었어요. 응급구조과는 사람을 초기에 구할 수 있다고 해서 하게 됐어요. 저도 그 사고 속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 그걸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벚꽃이 피면 그녀는 아프다고 했다. "애들이 가장 많이 생각나요. 처음엔 벚꽃 같은 거 보면 그냥 이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벚꽃만 보면, 그럴 때면....... 벚꽃이 피어있을 때였으니까 벚꽃만 보면....... 걔네들도 지금 있었으면 대학 생활 즐기면서 이렇게 벚꽃 피는 거 보면서 좋아하고 사진도 찍고 그랬을 텐데......."

 

그녀의 항해는 아직 진행 중이다. 잠시 쉬어가기도 하겠지만 절대 내리진 않는다. 시게마츠 기요시의 소설 <십자가>의 말마따나 그녀가 숨을 쉬는 동안엔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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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그러니까 그 일은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음의 이름으로 우리의 삶에 틈입한다. 도쿄에 살던 타키와 시골에 살던 미츠하가 아무런 이유 없이 어느 날부터인가 몸이 바뀌기 시작한 것처럼. 그럴 때면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도망치는 사람과 도망치지 않는 사람. 말하자면 <너의 이름은>은 후자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란,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돌이키고자 애쓰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3년 전쯤 개봉하여 일본 영화로서는 드물게 국내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 <너의 이름은> 아직까지도 일본 영화를 말할 때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작품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서정적인 풍경은 호사스럽고, 계단을 오르는 장면 혹은 문이 열리고 닫힐 때의 앵글과 같은 연출의 재치들은 장면 사이사이에 기묘한 리듬감을 부여한다. 두 사람의 몸이 바뀌는 등의 모티브를 유머에서부터 주제를 이야기하는 방식에까지 알뜰하게 사용하는 모습은 영리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이례적인 흥행을 단순히 그런 재미에서만 찾는다면 그건 지나친 오판이 아닐까. 모두가 무리 없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 작품에도 단점들은 분명 있다. 여성 캐릭터를 성적으로 대상화하려는 습관, 무엇보다 그것을 유머로 활용하는 불편한 욕망 등은 분명 보는 내내 불편하다. 그러니까 내게 묻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이름은>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라면, 그건 아마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보듬으려는 ’간절함’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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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아기자기하고 귀여워보이던 이 영화는 1시간쯤 지나면 급격하게 무거워진다. 타키는 어느 날부터인가 몸이 바뀌지 않는 자신을 보며 의아해한다. 궁금증이 생긴 타키는 꿈속의 기억을 더듬어 이토모리 마을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몇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3년 전, 이곳엔 운석이 떨어지는 커다란 사고가 있었음을.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을.


미츠하는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다시 말해, 꿈속에서 서로의 몸을 공유하던 타키와 미츠하 사이에는 3년이라는 시간차가 존재했다. 그런 이유로 앞서 미츠하가 타키를 먼저 찾아갔을 때 그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었다. 타키와 미츠하의 몸이 더 이상 바뀌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서로의 몸이 바뀌지 않던 그 날로부터 정확히 3년 전, 이토모리 마을엔 운석이 떨어졌고, 미츠하는 죽었다. 몸이 바뀔 상대가 없었기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 ‘타키’가 ‘미츠하’를 잊기 시작하는 시점은 그의 시간으로부터 정확히 3년 전, 마을에 떨어진 운석으로 미츠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난 이후이다. 이토모리 마을 근방의 이웃들은 한때 그들이 자주 오갔을지도 모르는 그 마을을, 3년이 지난 시점에서 꿈속의 기억을 더듬어 완성한 타키의 그림을 보고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그의 그림을 알아보는 건 오로지 ‘이토모리 마을 출신의 가게 주인’뿐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삼풍이 무너지고, 대구가 불타던 날은 벌써 우리의 기억에서 아득하다. 아직 잊지 않았다고 우리는 주장하겠지만, 우리가 그들을 떠올리는 건 또다시 수많은 누군가가 죽음을 당했을 때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바닷속으로 사라진 ‘그날’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3 수험생 시절, 교실의 TV를 통해 본 그날의 모습은 분명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 충격을 뒤로 하고 나 역시도 평소에는 그날을 잊고 살기에 바쁘다. 하지만 그 희생자들에게, 혹은 그 가족들에게 ‘그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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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미츠하의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축제의 의미는 전해지지 않고, 형태만 남았지.” 이토모리 마을은 1200년 전 운석으로 인해 생긴 분지에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아마도 추측하건대 1200년 전에도 똑같은 재앙은 반복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미야미츠 신사의 의식과 마을의 축제는 아마도 그때 희생된 사람들을 위로하려던 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200년 후의 마을 사람들은 축제와 의식의 이유를 기억하지 못한 채 그저 형태만 이어나간다. 그리고 그 결과, 1200년 만에 또다시 반복된 재난 앞에서 마을 사람들은 죽게 된다. 기억하지 않는 대가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의 ‘기적’은 매우 흥미롭다. 타키와 미츠하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도록 만든 첫 번째 기적은 미츠하의 모계에서부터 내려온 전통인지는 몰라도, 그런 두 사람이 재회하도록 만든 두 번째 기적은 철저히 그들의 의지의 산물이다.


타키는 얼굴도,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래서 굳이 만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누군가를 찾아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더듬어 그곳으로 향하는 무모한 여정을 떠난다.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뒤바꾼 기적의 시작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짐작만 할 뿐인 그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 잊혀 가는 기억을 붙잡아 기어코 자신의 자리로 끌어오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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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미래가 아닌 과거야.’ 노년의 사립탐정은 어떤 사연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자신의 불안한 과거를 찾아 기어코 여정을 떠난다. 오늘의 우리는 그간 밟아온 우리의 발자취가 만든다. 싫어도 마주해야 하는 게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겨워도 반복해야 하는 게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는, 성장은, 그리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무스비. 우린 아직 ‘그날’과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기적의 시작은 ‘잊지 않는 것부터’라는 것이다.

 


[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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