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모두 주기율표속의 원소였다, 뮤지컬 ‘마리퀴리’ [공연예술]

원소 같은 삶을 살았던 마리 퀴리의 이야기
글 입력 2020.04.1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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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듐이 아닌 마리 퀴리라는 또다른 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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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초반부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마리가 라듐과 닮았다는 것이었다. 라듐은 스스로를 붕괴시켜 더 큰 에너지를 얻는다. 마리 또한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온 체력과 지식을 동원하여 새로운 원소를 발견해냈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편리한 생활을 얻고, 병을 치료받을 수 있었다.


더불어, 라듐은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는 양면적인 특성을 지녔는데, 마리가 살아온 인생이 그렇다. 극 초반 그녀의 존재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존재했고, 마리가 업적을 낸 이후에도 그녀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생겼다. 하지만, 그녀가 많은 이들의 삶을 구하고 희망을 준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공통점을 지녀서인지 마리는 라듐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라듐 사업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녀는 라듐이 그 어두운 면을 보인 후에도 정신적 지주이자 절친한 사이인 안느에게조차 있는 그대로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고자 한다.


그 결과 직공소 직원들을 포함해 라듐으로 인해 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하게 된다. 절망한 마리에게 안느는 말한다. ‘너는 라듐이 아니야, 라듐이 아니라도 충분히 혼자서 빛나는 사람이야,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건 라듐이 때문이 아니라 마리 그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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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의 말은 필자의 마음을 묵직하게 울렸다. 사람들은 마리처럼 자주 착각을 하고 실수를 저지른다. 자신이 해낸 업적, 혹은 행동 하나만으로 자기 자신을 평가하려는 실수. 한번의 실수, 한번의 행운에 자기 자신의 가치를 매기는 것은 그 하나의 것에 집착하여 자기 자신을 잃게 만든다. 마리가 라듐이 아닌 마리인 것처럼 우리는 기존에 존재하는 어떠한 원소가 아닌 또다른 원소이다. 우리 그 자체이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위하는 방법은 이것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주기율표, 앙상블, 흙까지…..뮤지컬 마리퀴리 속 연출


 

뮤지컬 ‘마리 퀴리’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단연 연출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필자는 이번 시즌의 ‘마리 퀴리’의 연출은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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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마리의 그림자와 주기율표를 이용하여 주제의식을 드러낸 점이다. 극 중 마리가 무대 앞쪽으로 나와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마리의 위로 바로 떨어지는 조명에 의해 마리의 그림자가 여러 개로 갈라져 보인다.


이는 극의 주제의식인 ‘자기 자신에 대한 온전한 사랑’이 비단 마리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생각해볼 만한 시사점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 그림자들은 안느일수도, 피에르일 수도, 공작소 직원들일 수도 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며 고통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마리의 그림자들은 그들에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성찰 해보게끔 한다.


또한, 극 후반 조명을 통해 주기율표를 만들고. 등장인물들이 각각의 원소 칸 위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연출은 우리 자신이 어떤 원소의 대체물이나 그 원소를 닮은 인물이 아닌 우리의 존재 그 자체로 빛나는 독자적인 원소임을 알려줌으로써 극의 주제의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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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는 앙상블의 역할을 다각도로 활용하였다는 점이었다. 보통의 뮤지컬에서 앙상블이 코러스 정도의 역할 만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뮤지컬 ‘마리 퀴리’에서 앙상블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한다. 마리의 딸이기도 하고, 마리의 치료를 받는 눈이 안보이는 소녀이기도 하며, 마리의 존재를 불편해하는 신사들, 혹은 직공소 직원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각자의 스토리를 지닌 채 각자만의 방식으로 극을 이끌어 나간다. 이는 ‘마리 퀴리’의 주제의식과도 일맥상통한다. 더불어, 마리의 앞을 가로막는 사회적 장벽 등 눈으로 보이지 않는 허상적인 개념에 있어서도 앙상블의 군무, 혹은 동작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좀 더 생생한 연출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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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주제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소재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마리와 안느의 첫 만남에서 그들이 교환했던 주기율표와 흙이 바로 그 소재이다. 마리의 주기율표는 상술했던 바와 같이 극의 주요한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안느가 마리에게 준 그녀의 고향에서 가져온 흙은 어디에 있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곳을 알려주는 것으로, 일종의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는 마리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하나의 원소로 거듭나기 까지의 과정에서 마리에게 있어서 안느가 그랬듯 든든한 지지대 역할을 해준다. 이렇게 주제를 표현해주는 소재를 주축으로 하여 상징적으로 극을 이끌어 나가면서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마담 퀴리가 아닌 마리, 아내가 아닌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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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를 보면서 새삼 마리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마리가 새로운 원소를 처음으로 발견한 후 수상을 할 때 시상자는 수상자가 ‘피에르 퀴리와 마담 퀴리’라고 한다. 이 부분에서 처음으로 마리의 호칭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리 퀴리’라는 호칭 또한 남편인 피에르의 성을 따른 것이고, 그녀의 본명인 ‘마리 살로메아 스크워도프스카’ 또한 그녀의 아버지의 성을 따른 것이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온전한 마리의 호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세에도 꾸준히 불리게 된 ‘마리 퀴리’라는 호칭이 뮤지컬 에서처럼 자신의 업적을 온전히 자기 자신의 것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그녀의 인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뮤지컬에서 이만큼이나 여성의 서사를 단독적으로 다룬 경우가 드뭄에도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퀴리 부인’이라는 그녀의 호칭처럼 마리가 새로운 원소의 발견과 과학적 탐구에 온 힘을 다했음에도 그녀의 노력 그 자체 보다는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에 더욱 집중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마리는 여성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자이다. 여성 치고 대단한 업적을 세운 것이 아니라 열성적인 과학자로서 본분을 다한 것이다. 필자는 그녀의 업적이 ‘퀴리 부인’이라는 호칭으로 가려지는 것이 안타깝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아쉬운 점이 존재하더라도 인간으로서 그녀의 일생과 고민, 업적을 있는 그대로 다룬 뮤지컬 ‘마리 퀴리’가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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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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