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 만약은 없다 [도서]

만약은 없다는 말: 죽음에 관하여, 알지 못하는 세계: 삶에 관하여
글 입력 2020.04.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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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를 응급의학과 의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서이다. 책은 총 2부로 구성된다. 1부는 만약은 없다는 말: 죽음에 관하여, 2부는 알지 못하는 세계: 삶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담겨있다. 죽음을 다룬 부분은 무겁고 충격적인 이야기, 삶을 다룬 부분은 시트콤에 나올 법한 유머러스한 이야기이다. 최근 죽음을 가까운 곳에서 경험한 적이 있어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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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오히려 살고자 하는 열망처럼 보였다. 그는 가면을 쓰고 나간 사람이 아니라, 가면을 쓰고 들어온 사람이었다.


 

책의 첫 번째 이야기부터 충격적이었다. 몇 년간 우울증으로 치료받던 50대 남성이 어느날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응급실로 실려온다. 의식 없던 상태에서 깨어난 남성은 의사의 질문에 편안히 대답하며 시종일관 침착한 태도이다. 의료진은 그러한 그의 태도에 안심하였고 정신과 진료 결과도 희망적이었기에 그는 퇴원하였다.


두 시간 뒤 한 시신이 응급실로 이송된다. 얼굴 위에 덮인 천을 열어보니 아까 퇴원했던 남성이다. 그는 평온하게 가족들과 집으로 이동하였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파트 복도에서 투신 자살을 택하였다. 죽음을 향한 그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흐름이라 당황스럽기도 했고 충격적이었다. 책에는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몇 나온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만약 주위에 자살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그들을 구해야할까. 많은 생각이 든다.

 


자신이 투쟁해서 얻어온 생을 조금이라도 누리고 싶은, 지극히 평범하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일상을 살아보고자 하는 욕심, 어차피 그것을 비난한다고 해도,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한 말기암 환자가 있다. 항암 치료와 긴 투병 생활로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라 입원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집으로 향한다. 그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날 50대 여성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어온다. 그는 의식도 호흡도 없는 채로 왔고 사망하였다. 뒤이어 맞은 편에서 충돌한 차량의 탑승자가 도착하였다. 그는 전 날 퇴원한 남성이었다. 그는 집에서 지독한 통증을 느끼고 본인이 직접 운전해 병원으로 향한다. 운전하던 도중 도저히 운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맞은 편에서 오던 차량과 충돌하였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죽기 전 마지막 일상을 누린 그를 누가 비난할 수 있는가. 그가 마지막으로 욕심내 누린 하루를 비난해야 하는가. 그에게는 곧 떠나버릴 세상일 뿐이며 죽음 후에 남겨질 세상에 관해 망자는 관심이 없다. 그 세상이 자신 때문에 몇 명이고 죽어버릴 세상이라고 할 지라도.

 

이 이야기를 보며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암 환자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도 생겼다. 무고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내 주위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화도나고 평생 원망하고 비난하며 살 것같다. 하지만 글을 보고 우리는 그런 이들을 비난해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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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지루해질 때마다 자신의 어깨 근처를 어루만지며 죽음과 가까웠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자신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 사람과 자신을 연결해주었던 흉터가 여기 있다고, 그렇게 여길 수있는 상흔을 만드는 게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날이었다. 그 통곡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한 팔이 통째로 삶긴 건설공이 왔고, 그가 남은 팔로 허공을 휘적이는 동안 만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해 뒤통수를 차에 받혀 죽은 가장이 왔고, 또 새로운 통곡으로 결계가 쳐진 공간에 가스를 마신 청년이 들어와 결국 눕지도, 서 있지도, 앉아 있지도 못해 숨을 쉬지도 못할 만큼 가혹하고 악독한 슬픔이 밀려오던 날. 내 몸을 바닥에 비비고 짓이겨 꺼버리고 싶던 밤.


응급실의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 등 많은 매체에서 다루어진다. 하지만 현실은 가상보다 더 참혹하고 급박하다. 살면서 응급실에 딱 두 번 가보았는데 한 번은 내가 아파서 간 것이라 주위를 살필 겨를이 없었고 다른 한 번은 친구의 보호자 자격으로 가서 혼자 있었기에 몇 시간 동안 응급실을 천천히 관망 할 수 있었다. 응급환자가 없어 조용하고 한산한 응급실이었지만 의료인들은 정말 지쳐 보였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표정이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원래도 의료인을 향한 존경심이 있었지만 책을 읽고 나니 더욱 그들의 노고가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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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서 얼음물을 뒤집어 쓴 사람들은 차가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깔깔대며 밝게 웃었고, 그 다음 참가자가 될 친구들의 이름을 약 올리듯이 불러댔다. 그곳에서 슬픔이란 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고, 먼 곳에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이나 겪는 일처럼 보였다. 나는 리모컨을 들어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텔레비전을 껐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루게릭병 환자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시작된 릴레이로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한때 유행하였다. 그 당시에 정말 많은 유명인들이 앞다투어 이 챌린지에 참여하였고 좋은 취지로 진행되었기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책에 있는 글을 보고 소름이 확 돋았다. 일각에서는 재미와 감동을 준 릴레이라며 평가를 하지만 병에 대한 관심 촉구와 재미가 동일 선상에 놓여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루게릭병 환우의 투병 이야기를 보니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왜 그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는 루게릭병. 어서 치료제가 나와 고통 받는 사람들이 줄었으면 한다.

 

*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 1부와는 다르게 2부에서는 웃음과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1부의 내용이 주를 이루었기에 1부에 치우친 리뷰를 쓰게 되었는데 1, 2부 모두 좋은 내용들이었다. 소설이 아닌 흡인력 있는 글을 읽어 본 것이 오랜만이라 계속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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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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