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너지지 않는 장벽, 분리될 수 없는 우리 - 장벽의 시대 [도서]

팀 마샬 저 「장벽의 시대」
글 입력 2020.04.1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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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든 연결된다. 어떨 때는 간절하게 믿고 싶고 어떨 때는 몸서리치게 부정하고 싶은 이 사실을 새삼스럽게 체감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재난 상황 속에서도 발휘되는 ‘선한 영향력’을 볼 땐 전자의 감정으로 그것이 나에게도 와 닿길 바라고, 전쟁과도 같은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땐 후자의 감정으로 스스로를 거기서 떼어내려고 한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상, 그 지칭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연결된다. 뿔뿔이 흩어져 먼 거리로 떨어져 있거나 심지어 고립된 누군가와도, ‘우리’는 적어도 하나의 교집합을 갖는다.


연결에 관한 이러한 양가감정은 인간에게 분리와 통합의 욕구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한다. ‘우리가 어떤 민족이냐’며 서로 결속하려고 하지만 정작 그 ‘민족’에 완벽히 포함되는 사람은 얼마 없다. 우리는 누군가가 동족인 이유보다 동족이 아닌 이유를 더 잘 댈 수 있다. 이렇듯 인간을 가르는 구분선은 아무도 완벽히 설명할 수 없으며 사실상 허구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강력하게 사람을, 국가를, 땅을, 민족을, 역사를 나눈다. 기이하게도 그것은 분리를 원하는 자보다 통합을 원하는 자에 의해 더욱 견고해진다. 더 원만한 통합을 위해서는 더 강한 분리가 필요하기에, 세계화와 정보화가 눈부시게 도래한 작금의 세계에서도 그 구분선은 막강하게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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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순이 함축된 것이 바로 장벽이다. 이 책은 단순히 비유적 대상이 아닌 물리적 실체로서의 장벽과 그것으로 점철된 세계를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만져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무리 없이 일상을 구성할 수 있는 시대가 무색할 정도로, 그 물리적 실재만으로 인간을 분류하고 규정할 수 있는 장벽에 숨겨진 정치적 위력을 드러낸다.


장벽만으로 장벽을 사이에 둔 지역 사회들의 단면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장벽은 배제와 포함의 상징이며, 특정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배제와 포함은 그 장소가 어떤 권력에 의해 활용되고 개발되었는지에 대한 역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지역이 어떤 힘을 위해, 혹은 어떤 힘에 의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며 이는 곧 그 힘을 작동시키는 정치의 구조를 표상한다.


이 책은 중국, 미국,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중동, 인도, 아프리카, 유럽, 영국 등 크게 여덟 곳에 자리하고 있는 장벽을 다루며 각각의 장벽에 투사되거나 장벽으로 인해 파생되는 역사와 현상을 정치·사회학적인 관점으로 숙찰한다. 장벽에 대한 관찰 자료이자 기록물이며, 역사서이고 지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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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가장 잘 알려진 장벽 중 하나, 중국의 만리장성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만리장성이 만들어낸 경계는 스텝 지대와 경작 지대, 유목과 농경, 야만과 문명 등의 이분법을 탄생시켰고 이에 따라 우월한 중국인과 열등한 ‘오랑캐’를 위계적으로 구분하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게 중화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전쟁으로부터 땅을 지키기 위해 세워졌던 방벽은 전쟁이 사라진 지금에도 남아 중국을 지키는 요소로 기능한다. 문제는 그렇게 지켜지는 중국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내부 분열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 당국은 전 지역에 통제를 걸어 정보의 흐름을 막는 ‘만리방화벽’을 설치한다. SNS에 개인의 생각 한 줄 적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한 중국은 만리장성과 방화벽으로 둘러싸여진 채 스스로 고립됨으로써 ‘지켜진다.’

 


그들은 교차적인 이해관계가 실현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인민들을 계속 갈라놓아서 계급, 지리 또는 그 무엇에 따라 조직화할 수 없게 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 51p



희한하다. 갈라놓음으로써 분열을 막는다. 분리와 통합이 동시에 이뤄진다. 중국을 둘러싼 기다란 성벽과 방화벽은 조금의 다름마저 벽 외부로 밀어내버리기 때문에 싸움도 없다. 그러나 저자는 그 사이에서 조금씩 삐져나오는 불합리가 노출되면서 나날이 가중되는 세대 갈등과 빈부 격차를 포착한다. 비를 맞지 않고 푸석하게 굳은 땅처럼 위태롭게 중국을 ‘지키는’ 장벽은 작은 충격에도 크게 흔들리고 부서진다. 중국의 장벽이 정말 중국을 지키고 있는 것일지, 사실은 드넓은 풍경을 가리고만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다음 장에서 중국과 상반되는 상황으로 소개되는 미국의 경우를 보자. 중국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강제적으로 막아 인민들을 고립시킨다면, 미국은 내부로부터의 적대감을 키워 스스로 외부와 대치하게 한다. 미국이 아닌 곳에 불관용의 시선을 견지하게 함으로써 자발적인 고립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소개되는 장벽은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장벽이다. 미국인과 비미국인을 분리하기 위해 세워진 이 장벽은 ‘다양성의 국가’ 미국에도 배제와 포함의 메커니즘이 어김없이 이뤄지고 있으며 차별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장벽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많다.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함이며, 불법 마약과 총기 유통을 제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러한 순기능은 작동되지 않는다. 미국 기업은 불법 이민자들을 그들의 적은 인건비와 부실한 법적 권리를 이용해 활발히 고용하며 불법 마약과 총기는 느슨한 규제 속에 어렵지 않게 장벽 사이를 오간다. 장벽의 순기능을 작동시키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전무한 상태에서, 저자의 말처럼 ‘장벽은 무언가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무언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자발적인 고립 속 환상이 꿈꿔지는 동안 문제는 그 어떤 개선도 없이 곪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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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인종주의를 기준으로 내부와 외부를 구분했다면, 중동에서는 종교로 인한 분열이 국가 혹은 지역 간 장벽을 이룬다. 종교의 차이는 문화의 차이로 이어지며 그것은 지역의 분열을 야기하고, 지역에 따른 복지나 서비스의 편향이 발생하면 부와 교육 등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와 그렇지 않은 지대가 구분 지어진다는 설명이다. 이 장벽을 더욱이 무너뜨리기 어려운 이유는 종교라는 변수 때문이다. 종교적 자존감이 타자를 정복하거나 죽여야 할 불신자로만 바라보는 관점을 배양하여 통합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장벽을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타자를 거부할 이유를 찾는다. 그 이유를 찾는 것조차 포기하고 신에게 맡긴 경우에, 장벽의 해결은 걷잡을 수 없이 아득해진다.


그에 못지않게 해결 불가능한 장벽이 세워지는 경우는 장벽이 외부의 권력에 의해 세워질 때다. 저자는 그 예로 인도와 방글라데시,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에 딱 떨어지게 그어진 국경선들을 이야기한다. 오로지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필요에 의해 그어진 국경선은 역사와 문화, 종교와 정치가 축적된 공동체를 한순간에 찢어버렸다.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는 민족은 갈라졌고 그에 따라 문제를 해결할 주체가 사라졌다.


각지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그어진 국경선 때문에 고립된 방글라데시의 영토는 기후 변화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고, 이는 인도로의 대량 이주를 야기할 것이며, 난민과 이주민 보호가 제도적으로 미약한 인도에 의해 방글라데시인들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의 원인 제공자들은 이미 손을 놓고 도망갔다. 갈라진 상처를 감내해야 할 사람들에게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서 말이다.


책은 유럽에 세워진 장벽을 이야기하며 끝이 난다. 독일에 세워진 베를린 장벽부터 EU의 분열, 영국의 브렉시트까지 폭넓게 논한다. 특히 한국에 세워져 있는 가장 큰 물리적 장벽과 닮아 있는 베를린 장벽은 한반도 통일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 항상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보이는 독일 역시 경제적 격차로 인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으며 장벽의 물리적 붕괴가 저절로 실질적 통일을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저자 역시 강조한다.


이미 허물어진 장벽과 그럼에도 허물어지지 않은 분열이 책의 후반부에서 논해졌다는 것은 의미 있다. 이 책은 장벽의 물리적 실체가 갖는 위력에 대해 시종 이야기하지만 사실 물리적 실체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남는 후유증을 해결하는 것까지가 장벽에 온전히 대응하는 자세여야 하기 때문이다. 장벽이 역사가 축적된 땅을 갈라놓았다면 앞으로의 역사 역시 갈라진 채로 뻗어갈 가능성이 높으며 그것을 봉합할 책임은 후세대에 그대로 남겨진다. 베를린 장벽으로부터 한국 사회가 궁극적으로 깨달아야 할 점은 상대적으로 원만해 보이는 통일 과정이 아니라 그 후에 치러야 했던 홍역의 양상일지도 모른다. 시대를 초월하여 이뤄진 분열을 해결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밝지 않은 전망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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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확장된 채 여전히 공고히 자리하고 있는 장벽, 신의 뜻에 맡겨버린 장벽, 외부의 압력에 의해 세워진 장벽, 허물어졌으나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남긴 장벽 등 세상에는 여전히 물리적인 위압을 작동하는 장벽이 많다. 세워진 배경도, 양상도 판이하지만 모두 결속과 통합을 세워졌다는 점이, 거기엔 티끌 하나 없이 순수한 선의와 평화를 향한 소망 역시 함께 쌓였다는 점이 장벽의 해결을 더욱 요원케 만든다.


그러나 모든 결속과 통합이 평화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 욕심 하나 없는 선의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상이 갖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오늘날까지 장벽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사실상 장벽의 해결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모든 장벽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저자 역시 장벽을 없애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만 장벽 사이를 드나들 수 있는 가교의 필요성을 논한다. 장벽의 실질적인 해소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장벽 너머에 내가 온전히 다 알 수 없는, 그럼에도 그 자체로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올바른 분리와 통합의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인간은 분리와 통합을 동시에 원하는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 몰라도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장벽의 모순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붕괴할 수 없는, 그럼에도 이해할 수 있는 장벽을 맞닥뜨려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간절하게 믿고 싶어지는 날이 올 때, 우리의 직시는 반드시 빛을 발할 것이다. 장벽은 그렇게, 해소될 것이다.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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