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 없는 자의 기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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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가 그의 시, <가을날>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을까?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게끔 되는 것일까?
이런 쓸쓸한 질문을 지금 하는 까닭이란, 오직 내가 그렇게 불안스레 헤매는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표류라는 추상적 감각은 참 오래됐고, 나는 아직도 마침내 안길 곳을 찾고 있거나, 혹은 그 노스텔지어가 보이는 어느 미래에까지 견디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잃고서 이런 시를 쓰는 것인지......
그 답변조차 아득해진 만큼 방황이 오래다. 애석하게도, 잃어버린 나는 동주와 같이 아름답지는 못할 것만 같다.
길
- 윤동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 주머니를 더듬으며 길을 나아간다. '담 저쪽에 남은 나'는 내 잃어버린 무언가이고, 내가 걷는 까닭은 다만 그뿐일 것이다. 잃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서 일단 걸어냄이,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내가 찾는 천사의 낯은 미리 그리어 가져볼 수가 없는 것이라, 그렇게 홀로 오래 남아 불안스레 헤매이며, 찾거나 찾아내거나 혹은 기다리거나 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니.
지금 불안하게 방황하는 이, 지금 오래도록 혼자 남아 있던 이의 마음들이 그 어떠한가. 더러 침묵을 견디고, 또 더러 여태 참아온 침묵들 기어코 터져 나올 것이니, 그 분출되어 울리고 퍼지는 마음들은 어떨 것이냐.
너무 강한 사랑을 안고 태어났기에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한들 높은 것이라는, 백석의 사랑과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그 모든 마음들은 어떨 것이냐. 나는 그냥 이런 것들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운다. 본 적 없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이 마음들은 그리하여, 어떻게 해야 좋은가 하는.
무신론자인 나이건마는, 이렇듯 작아지고도 더욱 작아진 밤에는 결국 안길 품을 찾게끔 되다. 내 어머니의 품이 이제는 너무 좁아, 커버린 이 아들은 그녀를 안아 내고선 다른 안길 곳을 찾아야만 하기에.
귀가해 돌아온 방에 때 늦은 한기가 감돌고 있으면, 나는 기어코 발 뻗어 들어와선 결국 기도를 하다. 늦은 밤 다시 돌아 나와 향해갈 곳은 없음에, 기도를 하다. 듣는 이가 없는 기도를 한다. 그러면 이 어두운 속을 공허하게 또한 농밀하게 울리어 퍼지는 음성, 그 메아리를 내가 다시 듣는다.
넘쳐남도 부족함도 없게 하소서
- 자작시
넘쳐남도 부족함도 없게 하소서
오직 가운데의 가운데,
가장자리를 머물게 하소서
흔들림 없게 하시옵고
정처할 집엔 뿌리를 드리우소서.
밀물도 썰물도 없고
곧, 바람도 없는 그 앞
침묵하는 바다를 드디어 주소서.
기다리는 내게
기다림을 잊는 때까지
기다릴 나를 살피옵소서.
이런 이상한 기도를 했다. 분명히는 알 수 없겠으나, 아마 어딘가에서 본 유명한 구절들이 콜라주 된 것일 게다. 부끄럽다. 그럼에도 시는 더욱 나아가니, "이제 넘쳐남도 부족함도 없게 하소서" 누구에게 청하는 것이었을까, 나는? 듣는 이 아무도 없어 더욱 부끄러울 기도를 올리었다.
부족함을 사르소서. 개간하는 손, 보습 쥐일 손이 더 없음을 잘 알면서도, 나는 누구에게 이렇듯 다정한 청을 건네는 것이었을까. 결핍 속을 오래도록 표류하는 마음 위로 드디어 예쁜 체념 하나가 영글면, 더욱 침묵하게 되는 것이랬다.
바라건대는 오래도록 정처할 수 있기를. 정지한 속에서 아무런 꿈도 없이, 더욱 멈추어만 있을 수 있기를. 드디어 나는 꿈속에, 바위 하나를 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이 없는 자의 밤은 어떻고 어떠해야 하는가.
나는 드디어 이런 질문 하나를 가져 보았다.
아마 한동안은 더, 이 안을 감돌아야 할 것이다.
[서상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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