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 없는 자의 기도 [문학]

부끄러운 자작시
글 입력 2020.04.1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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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가 그의 시, <가을날>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을까?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게끔 되는 것일까?

 

이런 쓸쓸한 질문을 지금 하는 까닭이란, 오직 내가 그렇게 불안스레 헤매는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표류라는 추상적 감각은 참 오래됐고, 나는 아직도 마침내 안길 곳을 찾고 있거나, 혹은 그 노스텔지어가 보이는 어느 미래에까지 견디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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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잃고서 이런 시를 쓰는 것인지......

 

그 답변조차 아득해진 만큼 방황이 오래다. 애석하게도, 잃어버린 나는 동주와 같이 아름답지는 못할 것만 같다.


 

 

- 윤동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 주머니를 더듬으며 길을 나아간다. '담 저쪽에 남은 나'는  내 잃어버린 무언가이고, 내가 걷는 까닭은 다만 그뿐일 것이다. 잃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서 일단 걸어냄이,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내가 찾는 천사의 낯은 미리 그리어 가져볼 수가 없는 것이라, 그렇게 홀로 오래 남아 불안스레 헤매이며, 찾거나 찾아내거나 혹은 기다리거나 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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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불안하게 방황하는 이, 지금 오래도록 혼자 남아 있던 이의 마음들이 그 어떠한가. 더러 침묵을 견디고, 또 더러 여태 참아온 침묵들 기어코 터져 나올 것이니, 그 분출되어 울리고 퍼지는 마음들은 어떨 것이냐.


너무 강한 사랑을 안고 태어났기에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한들 높은 것이라는, 백석의 사랑과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그 모든 마음들은 어떨 것이냐. 나는 그냥 이런 것들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운다. 본 적 없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이 마음들은 그리하여, 어떻게 해야 좋은가 하는.


무신론자인 나이건마는, 이렇듯 작아지고도 더욱 작아진 밤에는 결국 안길 품을 찾게끔 되다. 내 어머니의 품이 이제는 너무 좁아, 커버린 이 아들은 그녀를 안아 내고선 다른 안길 곳을 찾아야만 하기에.

 

귀가해 돌아온 방에 때 늦은 한기가 감돌고 있으면, 나는 기어코 발 뻗어 들어와선 결국 기도를 하다. 늦은 밤 다시 돌아 나와 향해갈 곳은 없음에, 기도를 하다. 듣는 이가 없는 기도를 한다. 그러면 이 어두운 속을 공허하게 또한 농밀하게 울리어 퍼지는 음성, 그 메아리를 내가 다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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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남도 부족함도 없게 하소서


- 자작시



넘쳐남도 부족함도 없게 하소서


오직 가운데의 가운데,

가장자리를 머물게 하소서


흔들림 없게 하시옵고

정처할 집엔 뿌리를 드리우소서.

 

밀물도 썰물도 없고

곧, 바람도 없는 그 앞

침묵하는 바다를 드디어 주소서.

 

기다리는 내게

  

기다림을 잊는 때까지

기다릴 나를 살피옵소서.

 


이런 이상한 기도를 했다. 분명히는 알 수 없겠으나, 아마 어딘가에서 본 유명한 구절들이 콜라주 된 것일 게다. 부끄럽다. 그럼에도 시는 더욱 나아가니, "이제 넘쳐남도 부족함도 없게 하소서" 누구에게 청하는 것이었을까, 나는? 듣는 이 아무도 없어 더욱 부끄러울 기도를 올리었다.

 

부족함을 사르소서. 개간하는 손, 보습 쥐일 손이 더 없음을 잘 알면서도, 나는 누구에게 이렇듯 다정한 청을 건네는 것이었을까. 결핍 속을 오래도록 표류하는 마음 위로 드디어 예쁜 체념 하나가 영글면, 더욱 침묵하게 되는 것이랬다.


바라건대는 오래도록 정처할 수 있기를. 정지한 속에서 아무런 꿈도 없이, 더욱 멈추어만 있을 수 있기를. 드디어 나는 꿈속에, 바위 하나를 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이 없는 자의 밤은 어떻고 어떠해야 하는가.

나는 드디어 이런 질문 하나를 가져 보았다.

아마 한동안은 더, 이 안을 감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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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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