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살아있는 클래식 입문 서적, - 도서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글 입력 2020.04.1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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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표지 정면.jpg


 

1. 살아있는 음악책


 

1972년, 저자 이채훈은 베토벤의 <운명>을 통해 음악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저자는 어린 시절 누나를 잃었다. 클래식을 사랑하고 안드레센 동화를 읽어주던 누나에게는 주변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뇌가 있었다. 21살, 저자의 누나는 어느 날 방문을 잠그고 연탄을 피워 놓은 채 수면제를 먹었다. 안타까운 상실을 겪은 어린 소년에게는 누나가 용돈을 사서 모았던 축음기와 LP 음반이 남았다. 그 중 하나인 브루노 발터의 베토벤의 <운명>은 소년의 삶을 뒤흔들어 놓았다. 마침내 안타까운 이별과 어린 소년의 섬세한 감수성이 운명적인 만남으로 이어졌다.

 

모차르트를 남몰래 사랑하고, 말러를 통해 학창 시절을 보낸 소년은 어느덧 MBC PD로 일하게 된다. 이어 30년 가까이 MBC PD로 일하면서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를 맡아 제주 4·3, 여순사건, 보도연맹 등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추적했다. 그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모차르트, 천 번의 입맞춤>, <비엔나의 선율, 마음에서 마음으로>, <정상의 음악가족 정트리오>, <21세기 음악의 주역 장영주> 등 음악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였다고 기억한다. 언론인으로서 저자는 방송대상, 통일언론상, 삼성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저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MBC 총파업 사건이 터진 후 방송국을 떠났다. 그 후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칼럼을 쓰고, <이채훈의 킬링 클래식>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다양한 청중들을 위해 강연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이 책은 대중에게 클래식을 소개하는 목적으로 쓰인 그의 시도 중 하나다.

 

철학과 대학생, PD, 저술가와 같은 화려한 이력에도, 이 책에서 주로 드러나는 저자의 정체성은 ‘음악 애호가’이다. 물론 이 책의 페이지 사이 사이에는 섬세한 마음을 가진 어린 소년의 얼굴도 비추고, 오랜 시간 대중을 상대로 영상물을 제작해온 PD의 얼굴도 비춘다. 물론 두 요소는 이 책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책의 ‘정신’은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소년은 아마추어 예술가이기 전에 음악을 사랑하는 소년이고, 대중에게 선보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언론인이기 전에, 필하모닉 취재 현장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음악을 사랑하는 PD이다.

 

음악에 대한 저자의 사랑과 삶으로 완성된 이 책을 살아 숨 쉬는 무언가로 만든다. 책은 시대순으로 음악가들의 노래와 설명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음악과 관련된 저자의 일화들이 삽입된다. 나에게는 이런 책의 서술방식이 다 자란 소년이 지난 기억을 회고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QR 코드로 책을 읽는 중에 음악을 들을 수 있고,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가 시간대를 표시해 놓았다. 이 책은 실시간으로 음악을 들려주고, 이야기를 전하기에 살아있는 음악애호가처럼 독자들에게 음악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음악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기술이 만나 만들어진 결과물이 바로 이 책,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이다.


 
 

2. 작품, 삶에 바치는 작곡가의 열렬한 자기고백



앞서 기술했듯, 이 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자의 일화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책이 다루고 있는 클래식의 시대는 크게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현대음악로 나누어져 있다. 클래식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익숙하고 굵직한 이름들을 만나게 된다. 삶의 기쁨과 슬픔을 각자의 재료로 빚어낸 작품들은 모두 숨 막히게 아름답다. 음악의 감동은 단순한 텍스트만으로는 전달되지 않으니, 본 리뷰에서는 기억에 남는 작곡가에 대한 간단한 인상 정도만 공유해보려 한다.

 

우선 처음으로 제시되는 바로크 시대는 ‘일그러진 진주’, 즉 제대로 가공되지 않은 보석을 의미하며, 당시 바로크 시대는 중세의 교회 음악을 뛰어넘는 다양한 음악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였다. 당시의 실험은 오늘날의 ‘클래식’이라 부르는 음악 장르의 기초를 만들어냈다. 25세에 신부 서품을 받은 비발디는 피에타의 소녀들과 함께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했다. 이 빨강 머리 신부는 500곡 가량의 아름다운 협주곡을 썼다. 이 책의 첫 장에서 소개된 작곡가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성당에 웅장하게 울려 퍼진 <글로리아>가 감동적이었고,어린 소녀들과 함께 성당에서 음악을 한다는 신부의 삶이 사랑스러워 작곡가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다.

 

<아마데우스> 영화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한 모차르트는 내가 상상한 것과 비슷했다. 내가 어린 시절 읽은 동화책에는 아버지와의 일화는 보통 초반에만 잠깐 언급되곤 했었는데, 그의 삶에서 아버지와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던 것 같다. 또, 이 책에 있어서 모차르트는 말러와 함께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뜨거운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작곡가였다. 사실, 이 책을 ‘모차르트와 말러의 입문서’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당연하지만 저자의 ‘영업력’은 정말 대단했다. 어른의 추론보다 당당한 봉봉 과자가 좋다는 가사를 쓸 수 있는 이 예술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모차르트에 이어 극적인 삶을 산 작곡가, 베토벤이 소개된다. 모차르트의 위대함은 일반 대중 뿐만 아니라 후에 이어지는 음악가의 작곡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교향곡의 혁명으로써, 교향곡의 메시지의 중심을 두어 드마틱한 구조를 도입하고, 표현력을 강화하기 위해 악기 편성을 확대하고 성악을 사용하기도 한 진정한 표현의 예술가였다. 이후 작곡가들은 독창적인 어법으로 베토벤을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았다. 위대한 작곡가의 마지막 작품에는 비극적인 삶에서도 찾아낸 삶의 긍정을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 가장 즐겁게 들었던 차이콥스키의 삶도 소개되어 있었다.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은 동화책보다 음악으로 먼저 접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어렴풋이 엄마가 차이콥스키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말해주긴 했지만, 사실 우리의 유년 시절부터 게이라는 사실은 별 큰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시대에서 동성애자라는 것은 음독자살을 권할 일이었다. 사랑 자체가 비극이었던 삶에서, 이토록 사랑스러운 작품들이 발굴된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책을 통해 말러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말러의 작품에는 웅장한 주제가 등장한다. 죽음, 부활, 우주와 같은 추상적 이야기는 잇따른 다양한 죽음의 체험으로 인한 것이었다. 결혼 생활로 작품 활동을 중지하게 된 부인 알마에게는 좋은 남편은 아니었지만, 예술가로서의 말러는 위대하다. 책에서는 교향곡 1번 <거인>을 중심으로 기술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2번 <부활>을 인상 깊게 들었다.

 

<부활>에는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녹아들어 있다. 교향곡 2번 <부활>은 ‘거인’ 조차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과 사후 세계의 존재를 물으며 시작한다. 영웅의 행복한 삶을 이야기하는 부분, 충격적인 불협화음으로 울려 퍼지는 절망의 울부짖음인 공포의 팡파레로 이어진다. 하지만 말러는 아래와 같은 결론으로 작품을 이어간다. “심판은 없으며, 죄도, 정의도 없으며, 어떤 것도 위대하지 않고, 어떤 것도 작지 않다. 징벌도 없으며 보상도 없다. 압도적인 사랑만이 우리의 존재를 비출 뿐이다.” 죽음의 끝을 존재의 찬가로 마무리하는 말러의 작품에 ‘부활’이라는 이름은 적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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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

 

 
 

3.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감상하기 쉬운 클래식



내게 클래식은 친숙하면서 먼 음악이다.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성당에서 합창단의 지휘를 맡는 등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취향 덕에 나는 클래식을 들을 기회는 많았지만, 교향곡의 구조나 복잡한 음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어렴풋이 클래식의 아름다움은 알고 있지만, 정확히 어느 부분이 좋은지, 어떻게 전개되는지 감상하고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엄마가 가르쳐줄 때 적극적으로 배우면 좋았을 것을, 복잡함에 압도된 나는 결국 클래식과 좀 더 어색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유년시절부터 모호하게 접한 클래식의 기억은 늘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학창시절에는 클래식의 대안으로써 뉴에이지 음악을 자주 들었었다. 마침 내가 중학생일 때 한국은 뉴에이지 붐이 일었다. 뉴에이지는 클래식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구조가 복잡하지 않고, 짧은데다가, 주제도 뚜렷했다.

 

하지만 어떤 음악을 들어도, 클래식 특유의 감동을 찾기는 어려웠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들으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과는 반대로 뉴에이지는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지루해졌다. 이후 클래식을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 강해져 책을 기웃거리고,의도적으로 연주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은 쉽게 다가오지는 않았고, 연주회의 음악은 감동적이지만 여전히 어렵게 다가왔다. 이것이 책을 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다. 작곡가의 이름만 둥둥 떠다니는 클래식을 좀 더 이해하고, 더 깊게 감상하고 싶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클래식에 대해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학창시절 음악 수업 시간에 우연히 들은 ‘사계’의 일부로 클래식에 입문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내 믿음을 뒷받침한다. 내가 음악 시간에 접한 사계는 비교적 뚜렷한 이미지와 서사와 구조의 반복이 있었다. 당시 음악 선생님의 설명으로 클래식을 처음 접한 친구들이 감동 받은 표정으로 앉아 있곤 했다.

 

뚜렷한 형태로 제시되는 클래식이 대중의 관심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린시절 엄마가 때로 나에게 ‘이야기가 있는 클래식’을 들려주곤 했다. 지금도 간혹 떠오르는 금난새 작곡가가 클래식에 붙인 이야기, 디즈니가 제작한 판타지아, 모 일본회사에서 3d그래픽으로 표현한 클래식 음악들은 참 재미있었다. 물론 이런 제시는 클래식의 해석을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클래식 초보자에게 이런 시도는 매우 의미가 깊다.

 

분명 클래식은 어렵다. 이 책은 근본적으로 ‘음학’이 아닌, ‘음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책을 모두 읽는다고 해서 왜 이 음악이 아름다운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자는 책을 읽음으로써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더 발견할 수 있다. 대중으로써 이 책이 갖는 진정한 가치는 어려운 클래식에 형체를 부여한다는 점에 있다. 최소한 나는 그러한 방식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외출 전 햇볕이 드는 소파 위에서 이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이채훈의 클래식이’ 우주의 아름다움과 합쳐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앞으로도 내가 책을 읽은 따뜻한 봄의 어느 때로 기억될 것 같다. 내리쬐는 햇볕과, 밖으로 보이는 연한 색깔의 벚꽃잎들이, 오선지에 놓여진 음계처럼 느껴졌다. 이 따뜻한 봄, 나는 누구에게든 비발디의 사계로 클래식을 소개하는 이 책을 소개해주고싶다.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 Story of The Classic -


지은이 : 이채훈

출판사 : 혜다

분야
서양음악(클래식)
예술에세이

규격
145*215

쪽 수 : 356쪽

발행일
2020년 04월 10일

정가 : 16,000원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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