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와 천장 사이] 02. 영원이란 필연적 실패, 그리고 상실

영원에 대한 기대와 상실감
글 입력 2020.04.0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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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와 천장 사이] 02. 영원이란 필연적 실패, 그리고 상실


 

대학가마다 학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술집들이 몇 군데가 있을 것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 근처에도 이곳을 모른다면 학교 학생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술집이 몇 군데가 있다. 그런 가게들은 대부분 20년 이상을 운영해온 가게들이다.


많은 이들이 학교를 거쳐가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온 한결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힙하고 감성적인 소위 ‘인스타그램 감성’의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하는 곳은 바로 이런 술집들이다. 친정집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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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비대면 강의가 연장되며 학교 쪽에는 방문할 일이 없었는데, 그 사이 학교 술집 골목 입구를 20년 동안 지켜온 한 호프집이 곧 마지막 영업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갈 때마다 맞아 주시던 사장님 얼굴이 선한데 얼마 후면 다시는 그곳을 갈 수도, 사장님을 뵐 수도 없다는 생각에 바로 눈물이 났다.


생각해보면 사장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는데도, 그곳만큼은 계속해서 자리를 지킬 거라는 착각과 같은 기대를 해서일까. 가게 하나가 문을 닫는 것뿐인데 상실감이 크게 느껴졌다.

 

*

 

단골 술집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의 기대와 상실은 나의 세계에 큰 영향을 줬다. 모든 것이 조용해지는 밤이면 지나가버린 이름들과 시절들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감히 영원을 바랐던 나의 오만함을 탓하고, 다시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들을 세어보고, 기어코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곱씹다 보면 밤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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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실은 일상을 뒤흔들 수 있을 만큼의 세기로 찾아온다. 젠가 게임에서 벽돌 하나를 뽑아내면 탑 전체가 무너져버리는 것과 같은 그런 상실을 겪은 이후에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누군가와 이전과 같은 얼굴로 마주 볼 수 없음을 알아버렸을 때, 사랑하는 친구가 많이 아파 입원했을 때, 오랫동안 응원해온 가수를 다시 볼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어졌을 때, 10년을 함께한 반려견을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내주었을 때.

 

영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원의 반 토막까지는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심 없는 기대와 필연적으로 그것이 깨어지며 오는 상실감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종류의 감정이다.

 

*

 

일전에 <뉴필로소퍼 vol.9 – 삶을 죽음에게 묻다>를 읽고는 이런 리뷰를 적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예기치 못한 상실을 겪은 나는 그처럼 현명하게 상실을 극복하지 못했다. 저런 질문들은 오히려 나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다. 나는 떠나간 존재들을 놓아주지 못하고 슬퍼하며, 동시에 내 곁에 남아있는 이들이 언제 떠나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에 떨며 살았다. 그 감정들은 너무나도 나를 크게 괴롭혀 더 이상 소중한 존재들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했다.

 

<뉴필로소퍼 vol.9 – 삶을 죽음에게 묻다> 리뷰 中



한때는 무엇이든 기대하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 필연적으로 실망하게 되니 애초에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건강하고 성숙한 인간관계라고 생각하며 나의 사고방식의 변화를 우쭐하게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소중한 무언가를 잃고 난 후에야, 내가 가장 크고 무거운 기대를 버리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것. 이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큰 기대라는 것을 왜 그 때에는 알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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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어떤 상실은 잃어버린 줄도 모른 채로 찾아온다. 문득 뒤돌아 보았을 때 어느 시절을 완전히 지나왔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그때에는 분명 나라고 부를 수 있었던 사람이 낯설게만 느껴질 때 묘한 기분이 찾아온다.


한 사람은 그가 살아온 시간이 축적되면서 만들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한 번씩 과거와 단절되는, 그러니까 과거의 나를 상실하는 순간도 존재하는 듯하다. 사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유명한 노래 가사처럼, 나는 그리고 우리는 순간순간과 이별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삶의 속도에 발맞추려 애쓰다 잃어버린 것조차 깨닫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강 中

 


찰나를 남기려는 글, 그림, 사진, 영상 등의 수많은 기록물과, 영원 절대적인 무언가를 찾으려는 여러 종교와 철학, 영원에 가닿기를 꿈꾸는 수많은 예술 작품들. 한없이 유한하여 그렇기에 한없이 유약한 존재인 인간은 끊임없이 순간을 붙잡아 영원으로 가져가려는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필연적으로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시간이라는 기다란 직선 위에 서 있는 이상 인간은 영원히 영원에 이를 수 없다. 아이유의 노래 '시간의 바깥'처럼 시간의 바깥에 어떤 신비한 세계가 있다면 그곳은 모든 것이 영원히 머무르는 곳일까. 가끔은 그곳에서 잃어버린 모두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꿈꾸기도 해본다.

 

어떤 마음으로 상실을 대해야 하는지는 어느 날은 알 것 같다가도 또 다른 날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Carpe Diem 같은 말을 인용하며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고 말하기에는 영원을 꿈꾸며 상실을 두려워하는 일이 아직은 더 익숙하다. 모든 것이 찰나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절대적으로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언제쯤이면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까. 그것을 마주한다면 정말로 강해질 수 있을까.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존재와 부재의 경계가 모호한 곳이 있다. 모든 것이 움트는 봄에 이곳에서 사라진 존재들을 떠올리고 다시 묻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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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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