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울 첼란과 죽음의 푸가 [도서]

죽음의 푸가를 읽고
글 입력 2020.04.0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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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첼란의 생애와 작품의 관계성


 

파울 첼란은 루마니아에서 유대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2차 세계대전 때 끌려가 강제 노역을 했다. 그는 가스실 처형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지만, 이후 끔찍한 기억에 고통스러워하며 삶을 이어 간다. 그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보이는 모든 후유증이 나타났다. 그 때문에 그의 문학 자체가 쓰라림의 기억이다. 그의 작품에는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과 회한이 배어 있다. 그는 깊고 오랜 내면화의 침전을 거친 기억, 정화된 고통의 깊이를 보여주는 문학을 추구했다.

 

파울 첼란은 2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라는 참혹한 비극을 감당해야 했던 유대인이다. 그러나 그는 그가 겪은 고통을 아름답고 밀도 높은 시어로 표현한다. 전후 독일 문단에서는 아우슈비츠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서정시 자체를 쓸 수 없다는 의식이 만연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세계적인 유대인 학살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과 함께 인간에게 친숙했던 세계가 무너져 버렸다. 참혹한 전쟁을 겪은 후의 인간에게 다시 세상을 시적으로 노래할 마음이 생기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인간의 문제와 문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보았던 파울 첼란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겪은 참혹한 시대를 극도로 상징적이고도 초현실적인 시어로 그려 내며 아우슈비츠를 바탕으로 한 서정시를 쓰는 데 성공한다. 이 때문에 첼란은 전후 독일 문단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대체로 장르 구분 없이 여러 종류의 글을 쓰는 독일의 다른 문인들과는 달리 첼란은 거의 시집만을 남겼다. ‘양귀비’로 표현되는 망각과 기억이 교차하는 첫 시집 『양귀비와 기억』은 은유성이 짙은 언어와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들로, 다음 시집 『문턱에서 문턱으로』는 모색의 어둠으로 채워져 있다. 또한, 다른 작품에서는 소통과 차단이 동시에 일어나는 언어처럼 굳어진 세계나 어렴풋한 신의 존재 등을 노래한다. 그의 시는 후기로 갈수록 길이가 몹시 짧아지는데 거의 소통 불가능한 암호로 응축된다. 첼란의 시가 이해하기 어렵고 역설적이라 하더라도 그의 언어는 극단적인 시대 체험에 뿌리를 두고 침묵의 경계까지 가 있다. 실어(失語)에 다다르고 실제로 정신 착란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첼란의 삶이 느껴지는 시어와 그에 담긴 존재에 전례 없는 깊이와 높이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시 「죽음의 푸가」에는 여러 이미지가 존재한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이는 죽임을 당하는 이들의 지상에서의 괴로움을 전달하는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비좁다’는 한 마디 뒤에 회한이 서려 있어 첼란의 시어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첼란은 시가 어떤 눈앞의 사회적인 목적에 사용되는 수단이 되는 것을 반대한다. 독자는 그의 시에 나오는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대명사-너, 당신, 그, 그들-가 가리키는 것을 스스로 창조하거나 찾아야 하며, 첼란 스스로 말하였듯이 그의 언어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고 읽고 또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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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푸가로 바라본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


 

처음 「죽음의 푸가」를 읽으면 시의 형태가 매우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몇 안 되는 서술 내용이 반복되어 언어 유희적 인상을 풍긴다. 이러한 껄끄러움과 소재의 정면성 때문에 시의 유명에 비해 그다지 구체적으로 해설이 되어있지 않있다. 그 이유는 시가 윤무(輪舞)의 무도곡을 언어로 재현한 음악성 때문이다. ‘죽음의 푸가’에서 ‘푸가’는 여러 개의 성부가 있어 그 하나가 울린 주제를 다른 성부가 화답하며 변주하는 식으로 구성되는 음악 형식이다.

 

푸가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주제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음악 형식으로 이 시에서는 하나의 주제가 계속 반복된다. 그러나 반복은 차이를 내포하며 변주되고 있다. 시는 내용상 마신다, 판다는 동사의 주체인 ‘우리’와 쓴다, 논다 등의 주체인 ‘그’가 대립하고 있다. 집단(수용소의 유대인)과 개인(독일인)의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하게 보일 수 있는 대립이 푸가라는 형식을 빌려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거듭 반복되는 가운데 간간이 섞여 있는 어렴풋한 줄거리를 간추려 보면 시의 내용은 대략 죽임을 당한 ‘우리’와 우리를 죽게 한 그의 대한 기술이다. 시에서는 ‘우리는 마신다’가 스무 번이나 반복된다. 아침, 점심, 저녁때 없이 마신다는 이 검은 우유는 죽음을 비유한다. 즉, ‘우리는 마신다’는 수많은 반복은 다수가 그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시에서 ‘우리’를 설명하는 동사는 ‘마신다’와 ‘판다’ 뿐이다. 주어진 검은 우유를 마시고 명령에 따라 무덤을 파는 것이 이 집단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이다. 즉, 죽임을 당하는 이들의 수동성이 강조되고 있다. 반면에 ‘그’를 설명하는 서술어는 ‘산다. 쓰다, 유희하다, 나서다…’ 등 많다. 또한 사용된 서술어가 잔인한 행위를 묘사하는 것이 있다. 즉, 시 속의 ‘그’는 독일 바깥 어느 집단 수용소의 잔인한 소장의 모습이다.

 

시의 말미에 두 인물을 나란히 세워 놓은 것은 서정적인 여운을 남기면서 또한 동시에 숙명적으로 얽히고설킨 독일과 유대인 두 민족의 상(像)을 생각나게 한다.

 

이처럼 첼란의 가장 잘 알려진 시인 「죽음의 푸가」는 그의 강제 수용소의 체험을 노래한다. 전후 독일 문단에서는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고 말한 이후, 아우슈비츠에 관한 것은 고사하고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이 비평의 상식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죽음의 푸가」가 세상에 알려지자 그 후 아도르노는 자신의 말을 정정하였다.

 

 

“첼란의 시는 침묵을 통해 극도의 경악을 말하고자 한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어떠한 서정시도 쓰일 수 없다는 말은 잘못이었다.”

 

- 아도르노


 

첼란의 시는 고통을 표현하고 고통을 언어로 감당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쓸 수 있겠냐는 아도르노의 말은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된 유대인과 함께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이 친숙했던 세계가 무너진 후 인간이 다시 이 세상에 대하여 시적인 또는 노래할 마음을 가지는 것이 어려움을 의미한다. 만약 말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아픈 역사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그것을 시적인 이미지와 비유, 운율이 있는 언어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제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는 시대와 역사에 대한 반성과 언어와 예술에 대한 철저한 문제 제기를 전제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첼란은 자신의 시를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로서 인식하고 있으므로, 즉 예술의 문제가 시대나 역사의 문제와 서로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문제는 표현의 다면성을 지니고 예술적, 사회적 및 철학적, 신학적 문제를 하나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 예로, 파울 첼란의 초기 시에는 꿈의 모티브가 문제 해결의 시도로서 자주 나타난다. 이 꿈의 세계는 단순히 현실로부터의 세계가 아니라 부정적인 현실과 맞서는 다른 세계이다. 이러한 꿈과 현실의 대립은 시집의 제목인 ‘양귀비와 기억’에 나타나 있다. 양귀비는 마약의 원료로 그 힘으로 환상과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이에 반해 기억은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고통과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시인 자신의 체험, 즉 파시즘의 폭력에 대해 말한다. 그의 시는 다분히 이런 전기적인 것에 근거를 둔다.

 

 

그들은 태초로부터

이어져 온 죄에서 벗어난다,

 여름같이, 부당하게 존재하는

 어느 말을 통하여 죄에서 벗어난다.

 

 너는 안다, 말 하나에-

 주검 하나

 

<밤으로 삐죽거리는>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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