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서구사회의 동양인을 향한 인종차별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이 조금 바뀌었다. 물론 유럽 여행자들이 유럽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말하는 많은 사연들과 서구사회의 유명 스타들이 동양인을 비하하는 양쪽 눈을 찢는 포즈로 사진을 찍어 생긴 논란들을 보고 동양인 차별에 대한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서구 국가들의 차별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감정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책 『다소 곤란한 감정』에는 ‘싫다(아무튼)’라는 감정을 설명하는 꼭지가 있다.
미움‧혐오를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설명할 땐 ‘기분 꿀꿀한데 한 녀석만 걸려라’로 요약된 장면이 꼭 제시된다. 그러나 생리적 혐오감은 타인이 밉고 싫은 요인‧원인을 찾고 싶지 않다는, 더 나아가 그런 걸 굳이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회적 정서를 포괄한다. 왜 그리 싫어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묻는 상대 그리고 제3자마저 싫어하는 것이다.
이 같은 생리적 혐오감의 활황 가운데 오늘도 미움‧싫음‧증오‧혐오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지적 탐문이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아무튼 증오’ ‘아무튼 혐오’ ‘아무튼 미움’이 공기처럼 퍼져나가는 중이다. 오늘도 생리적 혐오감에 사로잡힌 누군가가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한다. 왜 당신을 미워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이 무지한 자. 당신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자신의 미움은 무해하다고.
인용한 부분을 읽으며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아무튼 싫다’ 속에 담긴 차별의 전염성에 대해 놀랐다. ‘아무튼’이라는 말에 담긴 독불장군 같은 특성은 교묘하게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고, 그 차별과 혐오에 물음표를 가지는 사람까지 싫어하게 만든다.
직접 겪지 않으면 차별은 남 얘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우리 모두가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차별을 방관하는 것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나에 대한 차별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혐오와 차별의 감정이 공기처럼 퍼져나가는 중이다. 끔찍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말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있는 국가에서도 어려운 시기에 고개를 슬며시 드는 인종차별 문제를 보며 시대를 역행하지 않는 개개인의 인식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쪼록 차별로 인해 아픈 사람이 없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아픈 사람이 없는 건강한 세상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