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튼 싫다’는 생각 속에 담긴 차별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4.03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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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칩거한지 벌써 두 달째. 이제 집에서만 생활하는 새로운 일상은 답답함의 수준을 초월했다. 코로나19 이후의 새 일상은 집 안에만 있으면서 어떻게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한다.
 
집에서의 일상은 새로운 루틴으로 적응되어 가는 요즘이지만, 밖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없기에 답답함은 누적되어 짜증과 피로로 나타난다. 보고 싶은 전시회도, 공연도, 영화는커녕 집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무서운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팍팍한 일상 속에 우리를 더욱 힘 빠지게 하는 소식이 들려온다. 코로나19로 인한 동양인 차별에 관한 뉴스다. 미국에서는 한인 여성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행당했고, 호주에서는 코로나를 옮기고 다니지 말라며 한국 남성이 폭행당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스크를 써도 동양인이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냐고 인종차별을 하는 것을 보면, 중요한 건 마스크 유무가 아니다. 그냥 ‘동양인’이기 때문에 차별하는 것이다.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도 동양인 차별과 관련된 소식이 귀에 잘 들어오는 건 아마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해외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인종차별을 당할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은 피부로 와닿는 차별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서구사회의 동양인을 향한 인종차별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이 조금 바뀌었다. 물론 유럽 여행자들이 유럽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말하는 많은 사연들과 서구사회의 유명 스타들이 동양인을 비하하는 양쪽 눈을 찢는 포즈로 사진을 찍어 생긴 논란들을 보고 동양인 차별에 대한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서구 국가들의 차별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판단의 근거는 일찍이 서구 사회에서 진행되어온 인종차별에 대한 투쟁이었다. (물론 그것이 동양인 차별에 대한 투쟁은 아니었지만) 또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서구사회이기에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 또한 인식 수준이 높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위기를 거치며 각 사회의 차별에 대한 인식 수준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공포도 크겠지만, 사회에 내재돼있던 혐오와 차별이 더해져 사회의 민낯이 드러난다. 이러한 상황은 차별이 사회 속에 잠자고 있다가 얼마든지 깨어나 반복될 수 있다는 슬픈 가능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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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식 작가님의 『다소 곤란한 감정』

 

 

감정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책 『다소 곤란한 감정』에는 ‘싫다(아무튼)’라는 감정을 설명하는 꼭지가 있다.

 

 

미움‧혐오를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설명할 땐 ‘기분 꿀꿀한데 한 녀석만 걸려라’로 요약된 장면이 꼭 제시된다. 그러나 생리적 혐오감은 타인이 밉고 싫은 요인‧원인을 찾고 싶지 않다는, 더 나아가 그런 걸 굳이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회적 정서를 포괄한다. 왜 그리 싫어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묻는 상대 그리고 제3자마저 싫어하는 것이다.

 

이 같은 생리적 혐오감의 활황 가운데 오늘도 미움‧싫음‧증오‧혐오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지적 탐문이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아무튼 증오’ ‘아무튼 혐오’ ‘아무튼 미움’이 공기처럼 퍼져나가는 중이다. 오늘도 생리적 혐오감에 사로잡힌 누군가가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한다. 왜 당신을 미워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이 무지한 자. 당신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자신의 미움은 무해하다고.


 

인용한 부분을 읽으며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아무튼 싫다’ 속에 담긴 차별의 전염성에 대해 놀랐다. ‘아무튼’이라는 말에 담긴 독불장군 같은 특성은 교묘하게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고, 그 차별과 혐오에 물음표를 가지는 사람까지 싫어하게 만든다.

 

직접 겪지 않으면 차별은 남 얘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우리 모두가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차별을 방관하는 것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나에 대한 차별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혐오와 차별의 감정이 공기처럼 퍼져나가는 중이다. 끔찍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말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있는 국가에서도 어려운 시기에 고개를 슬며시 드는 인종차별 문제를 보며 시대를 역행하지 않는 개개인의 인식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쪼록 차별로 인해 아픈 사람이 없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아픈 사람이 없는 건강한 세상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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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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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박지영
    • 오스트리아 마스크 착용도 하고 법적 사회적 거리 1m 이상 떨어진 dm 마켓에서  자판대에 있는 물건  잡으려는데 할머니가 더 떨어지라면서 야단 치는데... 내가 서양인이었어도 그럴까 싶다.  좀 화가나서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너무 한다 사람들. 왜 동양인인 나만 이런 대우를 받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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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연
    • 2020.04.20 22: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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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
    • 박지영세상이 어려울 때 사람들의 마음도 더더욱 험해지는 것 같아요. 이럴 때일수록 혐오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쪼록 마음 잘 추스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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