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죽음과 진실이 가진 무게를 측정해 보며, 뮤지컬 '최후진술'

"참 너같은 뮤지컬 본다"에 대한 대답
글 입력 2020.04.03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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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너같은 뮤지컬 본다"에 대한 대답


 


"저 오늘 뮤지컬 보러가요"

"무슨 뮤지컬?"

"최후진술이요. 갈릴레오 갈릴레이, 지동설 이야기예요"

"참 너같은 거 본다"



아는 언니가 한 말이다. 참 너같은 거 본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꾸만 곱씹어 보게 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뮤지컬과 나는 어떤 접점이 있을까. 나는 그와 어떤 점이 비슷할까.

 

뮤지컬 <최후진술>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한 죄로 이단으로 몰리자 의견을 뒤집게 되는데 이때 목숨과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이야기다. 코페르니쿠스나 셰익스피어처럼 시대와 장르를 뛰어 넘는 위인들이 만나며 갈릴레이는 최후에 진실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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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갈릴레이에게 진실은 존재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진실. 단지 진실을 말할 용기를 쥐어 짜낼 힘이 필요할 뿐이다.


목숨과 진실 중에 단연코 진실을 외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비굴하다고 말하기엔 남은 내 인생이 소중하다. 후대에는 알량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말을 바꾼 변절자라고 할지라도 당사자에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알량한 진실 나부랭이에 목숨을 걸 순 없다. 충분히 이해한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니까.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죽음은 왜 나쁜 걸까. 우린 왜 목숨을 잃을 상황에서 비참하리만큼 슬프고 비굴해지는걸까. '죽음이 왜 나쁜가요?'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기란 쉽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살아있는 이가 슬픈 것이지 죽는 이가 슬픈 게 아니다. 그를 두고 가는 게 슬프지만 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픔은 죽음의 '고통'이 나쁜 것이지 죽음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사지가 조각나며 고통스럽게 죽을 수도 있지만 잠을 자듯 죽는 것도 있다. 상대적이다. 절대적으로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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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다 보고 나서 갈릴레이가 그토록 비굴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상황에 놓였던 수많은 위인들이 느꼈을 감정을 알고 싶었다. 죽음과 진실 사이에서 끝없이 고통 받았을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진실을 택했을까.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셸리 케이건은 덤덤하게 죽음을 설명한다. 죽음 그 자체가 절대적인 악은 아니며, 앞으로 누릴 수 있는 좋은 것을 앗아가기에 나쁜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것을 박탈하기에 죽음은 나쁘다. 그렇다면 죽음은 두렵지 않은 것인가. 인간에게 아무것도 아닌, 어떠한 자연의 과정으로만 받아들여야 할까.

 

책에서는 그렇기에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죽음을 마주할 때 후회와 수치가 없기 위해서 우리는 삶의 의미, 진실을 이야기할 용기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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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는 죽음과 진실을 앞에 두고 둘 사이의 무게를 측량해 본다. 신을 찬양하는 속편을 쓴다면 찾아올 안락한 삶과 부끄러움, 최후에 진실을 말했을 때 느낄 당당함과 두려움. 그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여정 끝에 죽음과 직면한다. 그리고 남은 '나 자신'을 결정 짓는 최후 진술을 한다.

 


(전략)

 

난 무엇이 두려운 걸까

더 잃을 것도 없는데

난 무엇을 바라는 걸까

더 얻을 것도 없는데


용감하지는 못해도

아름답지는 않아도

살아남아서

끝까지 증명하고 싶었어

목숨을 구걸한 이유를


난 무엇을 꿈 꾸는 걸까

왜 아직도 불안한 걸까

난 누구를 질투하는가

왜 아직도 잊지를 못할까


아무나 붙잡고 말하고 싶었어

미안하다고

이해해달라고

하고 싶은 말이

할 수 있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다고


이젠 내게 시간이 없어

지금이 마지막 기회

나 이제 말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뮤지컬 <최후진술> 넘버13. '그래도 지구는 돈다' 중



그의 삶이 별처럼 빛나는 이유는,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이 아니라 두려워했음에도 삶의 의미를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누군가는 '알량한 진실이 뭐가 그리 좋다고'말할 그 진실 앞에서 용기를 낸다.

 

가벼운 톤으로 시대를 초월한 말투와 행동을 하며 영웅같은 말 한 마디 하지 못하는 그가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유는 그가 쥐어짰을 용기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기 때문이다.

 

근래에 택시기사가 분신자살 한 사건이 있었다. 잔잔한 가십이 되어 사라졌다. 죽음이 너무도 가벼이 여겨지는 세상에서 진실은 빛을 잃는다.

 

이 유쾌한 여정을 보며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은 죽음을 나쁜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내 인생을 죽음에게 빼앗길 때 슬퍼할 것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을 것인가. 죽음과 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결국 텅 빈 삶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삶의 의미를 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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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코지 당할까, 내게 불이익이 있을까 두려워하며 인스타에 소신을 밝히지 못했을 떄가 있었다. 안온하게만 써 누구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는 글이었다. 삶에 나태했다. 그러나 N번방 사건이 발생한 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페미니스트라는 걸 동료들에게 알려도 될까. 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잠깐 기자일을 했을 때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좌표가 찍혀 댓글 테러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고문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또 다시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자문하다가 결국엔 글을 썼다. 갈릴레이처럼 제대로 된 책은 아니었고, 최후진술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진실을 선택했다. 죽음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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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거 본다고 말한 언니에게 답해주고 싶다. 아직은 아니지만, 꼭 <최후진술>같은 인간이 되고 싶다고. 죽음의 무게를 알고, 그럼에도 진실을 선택하는 사람이고 싶다고. 때론 돌 맞을지언정 내 최후진술은 진실하고 싶다고.


 


 


최후진술

- Final Testimony -


일자 : 2020.03.13 ~ 2020.05.31

시간
화, 목, 금 오후 8시
수 오후 4시, 8시
토 오후 3시, 7시
일 오후 2시, 6시
월 공연 없음

장소 : 예스24스테이지 2관

티켓가격

R석 66,000원

S석 44,000원

 
기획/제작
장인엔터테인먼트 / 극단장인

관람연령
만 8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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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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