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녕, 말라카! [여행]

가장 밝은 밤을 내어줘서 고마워
글 입력 2020.04.0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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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콕 박혀 있는 나날이 길어지면서 새롭게 추가된 생활루틴이 있다. 바로 하루에 한 번씩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보는 것이다.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니 사진으로나마 갑갑함을 해소하곤 한다. 여행 사진을 볼 때면 여행을 떠날 당시의 설렘과 여행의 끝자락에서 느꼈던 눈물 젖은 아쉬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내 몸은 여러 감정이 뒤 섞인 채 그 여행지에 머물러 있다. 현실은 좁은 방 한구석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괴감이 들거나 흔히 말하는 ‘현자 타임’을 느끼진 않는다. 내가 예쁘게 나왔는지, 구도가 알맞은지에 집중했던 과거와 달리 시간이 지난 지금은 여행지가 어떤 분위기를 품은 곳이었는지를 생각할 수 있어서 좋다. 이에 종종 사진에 담긴 여행지의 매력에 다시금 압도된 적도 있다.

 

지난해 떠난 ‘말라카’에서의 여행 사진을 볼 때가 그랬다. 말레이시아의 경주라고 불리는 이곳은, 규모가 크지 않은 아주 작은 도시이다. 볼거리가 풍부하진 않아 1박 2일 만에 금방 둘러본 곳이었지만 그곳만이 지니고 있던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은 내가 이곳을 여행한 게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신비한 공간으로 남아있다. 이에 이번 오피니언에서는 말라카에서 느꼈던 나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하고자 한다.

 


 

# 밤에도 활기찬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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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는 야경이 예쁘기로 유명하다. 이곳의 건물과 강변엔 각양각색의 조명이 수 놓여 있다. 그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을 위한 트라이쇼나 거리에 줄지어 선 야시장의 불빛 또한 말라카의 야경에 한몫한다. 이제껏 내가 걸어왔던 거리는 밤이 되면 어둑해지고 쓸쓸해졌는데, 말라카만큼은 긴긴밤 내내 환하게 빛났다.

 

질리지 않게 빛나는 조명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지금이 몇 시인지, 밤이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때 이 화려한 밤을 핸드폰 카메라로 담기 위해 무수히 많은 노력을 했었다. 나름 예쁜 사진을 몇 장 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사진을 보면 그때의 황홀한 풍경이 제대로 담기지 못했다고 느낀다.

 

우수하지 못한 핸드폰의 화질도 그 이유겠지만, 무엇보다 말라카의 야경이 밝은 조명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관광객과 상인들이 하모니를 이룬 북적북적함과 그 북적북적함에 멜로디를 넣어준 버스킹이 말라카의 야경을 완성했다. 다양한 나라의 언어들이 부유하다가 어느 순간 경쾌한 음악 소리에 하나같이 정착한다. 말라카 강변을 따라가다 보면 그 소리는 잔잔한 강물의 흐름에 묻히듯 조용해졌다.

 


 

# 아픈 역사를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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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는 50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말레이시아의 수도였으며 동서 교역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그 활기는 1511년 포르투갈, 1641년 네덜란드, 1824년 영국의 침략을 차례로 받게 되면서 무너져 내린다. 서양 세력의 침략은 현재 말라카 곳곳에 남겨져 있는데, 그 대표적인 흔적이 바로 세인트 폴 교회(성 바오로 성당)이다.

 

이곳은 포르투갈인들이 예배당으로 지었으나 이후 기독교를 박해한 네덜란드와 영국의 침공으로 벽체만 남아있다. 네덜란드가 점령했던 시기엔 네덜란드 귀족들의 묘소로 사용됐다 한다. 오랜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듯 벽체는 닳고 닳았지만, 어느 것보다 견고한 형태로 남아있다. 헐린 건물은 수많은 세력으로부터 침략을 받은 말레이시아인들의 상처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더 마음 아프게 느껴진다.

 


 

# 마음을 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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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를 품고 있는 말레이시아인만큼 말라카 또한 사원이 많다. 대표적인 사원이 해상모스크와 쳉훈텡 사원이다.

 

먼저 방문한 곳은 쳉훈텡 사원이었다. 쳉훈텡 사원은 말라카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식 불교 사원이라고 한다. 사원의 근처에는 향을 파는 상점들이 많다. 향 고유의 향기와 이를 태우고 남의 잔재가 풍기는 탄 냄새가 어우러져 묘한 느낌을 풍긴다.


사원에 들어가 보니 많은 사람이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니 나 또한 기도를 안 할 수 없었다. 잠깐 구경만 하고 가자는 친구를 붙잡았다. 그러곤 향을 피워 부처를 향해 기도했다.


총 세 가지 소원을 빌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잘한 행동이었다. 부처님이 나의 절실한 마음을 엿보았는지 그중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셨기 때문이다. 나머지 두 가지 소원은 아직 들어주지 않으셨다. 이 또한 들어주시리라 믿고 열심히 내 몫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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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해상모스크의 경우, 저녁 무렵 사원이 문을 닫은 후 방문해서 기도를 드리지 못했다. 그런 나의 아쉬움을 아는지, 혹은 채 다 하지 못한 기도가 마음에 걸린 신도들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저녁 무렵 모스크에선 우리를 위로하기 위한 아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상모스크와 아잔은 해 질 녘 일몰과 함께 고즈넉한 분위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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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에서의 사진을 다 본 후 나는 왜 말라카라는 도시를 가장 강력하게 기억하게 됐는지 생각했다. 말라카는 시끌벅적한 동시에 조용하고 마냥 밝아 보이면서도 어두운 곳이었다. 그런 상반된 매력을 동시에 품은 곳이기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말라카에서의 밤은 이제껏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밝았던 밤이었다. 그래서 그날의 밤은 내게 마치 선물처럼 남아있다. 어쩌면 같은 일상만 반복했던 내게 형형색색의 눈부신, 혹은 새로운 변화를 기도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다시 세상이 활기차게 될 그 날, 다시 여행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말라카에서의 추억을 계속 새기고 있어야겠다.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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