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20년에 종이 신문을 대하는 법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4.0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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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종이 신문을 읽고 있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신문을 꾸준히 구독해본 일이 없었다. 내게 신문 기사란 어떤 이미지였나? 하루가 지나가면 폐지가 되는, 열심히 일을 해서 만든 결과물이 결과적으로는 한 발 느린, 진보와 보수 대립의 결정체. 이것이 내게는 신문이었다. 클릭 몇 번으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기사를 두고 2020년에 굳이 종이를 왜 구독해야 할까? 종이 책을 찬양하면서도 기사만은 종이로 보지 않기를 원했던 나다.

 

생각해보면 인터넷 기사도 그리 열심히 보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흔히 보는 가십거리 그 이상도 그 이하에도 속하지 않은 평범한 이슈들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었고, 심도 있는 기사들을 찾아 나서지도 않았다. 혼잡한 세상 속 취향이나 견고히 하고, 마음의 양식이나 쌓자며 정작 세상 돌아가는 일은 그저 남들만큼만 알고자 했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자 했지만 신문을 만드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막연히 상상하던 신문사의 이미지는 몇 년을 소위 ‘언론 고시’라고 불리는 시험을 준비해도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온갖 이야기들을 매일 쳐내도 한순간에 작업물은 폐지 처리가 되고, 성향을 구분 지어 욕을 듣고 마는 곳. 그런 곳에 있노라면 글을 쓰는 보람이 생겨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던 내가 신문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매거진에 입사를 하고 회사에서 구독하는 신문을 꾸준히 아침마다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보던 인터넷 기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느껴 번거롭기도 했다. 심지어 이미 속보로 업데이트되어 지나간 이야기를 1면으로 보는 날도 생기니 ‘역시 신문은 느려’라고 생각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그 시간들이 쌓여갈수록 나에게 변화가 일어남을 느꼈다. 세상을 보는 눈에 대해서 말이다. 신문을 진지하게 매일 구독해보니 내가 얼마나 얄팍한 눈으로 인터넷 신문 기사를 읽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사실 인터넷 기사는 내가 직접 ‘클릭’을 해야만 자세한 기사를 읽을 수 있다. 그마저도 제목은 클릭을 유도한 자극적인 문장들로 가득해 내용은 빈약한 경우가 허다하다.

 

 

 

종이로 구독하기에 느낄 수 있는 것들


 

종이 신문은 오늘의 세상을 담기 위해 하루치의 최선을 다하여 지면을 구성한다. 항상 32면을 채워 아침마다 배달되어 전한다. 신문의 가장 좋은 점은 내가 보기 싫은 혹은 관심 없는 세상의 소식도 함께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 정치는 내게 어렵고 지나치기 쉬운 소식 중 하나였다. 그런데 매일 조금씩 기사를 읽다 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고 있는지 몸으로 체감이 되었다.

 

어려웠던 사회적 이슈들이 많았다. 사람들의 입에 분명 오르락내리락하는데 그런 게 있구나, 정도로만 알던 일들이 참 많았다. 그럴 때마다 궁금해져 인터넷을 찾아보면 진영 논리를 통해 자신만의 해석을 내리는 정치인들과 욕이 달린 댓글을 본 채 사건을 파악했다.

 

그러나 신문을 매일 보니 달랐다. 사건이 발생한 즉시 아침마다 팩트를 전달한다. 보기 싫은 기사도, 어려운 기사도 신문의 1면부터 32면까지 훑어보다 보면 무엇이 오늘의 가장 중점적인 이슈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건의 진전을 매일 느낄 수 있다. ‘코로나19’를 가지고 어떤 기사는 종교를, 어떤 기사는 교육을, 어떤 기사는 선거를 다룬다.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의 맥락을 신문은 중요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어쩌면 뉴스에 실릴 일은 세계 곳곳에서 1초마다 일어나고 있다. 모든 것이 소식이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사건이라 하면 사건이다. 그러나 신문에서는 자신들만의 시각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큐레이션’을 하는 것이다. 에디터로 일을 해보니 느꼈다. 똑같은 대상을 보고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어떤 말투로 전달하고,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읽는 이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신문은 진영 논리가 분명하여 사람들의 뭇매를 받기도 한다. 특히 ‘사설’은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신문을 떠올리면 한국인에겐 보수와 진보 성향의 신문으로 나뉘기 마련이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똑같은 사건을 가지고도 다른 시각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힘을 길러준다.

 

신문으로 팩트를 그저 받아들인다. 세상의 읽어낸다. 이슈가 되지만 어려웠던 주요 사건들의 흐름을 살펴본다. 내가 기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잘 짜인 하나의 매체를 매일 본다. 이것이 내가 신문을 대하는 태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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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가 만연하다. 하루아침에도 무수히 많은 기사들이 올라오고, 누구나 뉴스를 생성해낼 수 있다. 심지어 이제는 개인 유튜브도 언론사의 뉴스와 비슷한 성질을 띄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시대로 도래한 것이다. 언론사 역시 일간 신문을 만들어내긴 하지만 실시간으로 영상 매체와 인터넷 기사를 통해 업데이트하기 바쁘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신문을 왜 읽어야 하는가? 나는 세상을 보는 흐름을 기르기 위해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스스로 협소하게 선택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분야를 접하기 위해서, 일관된 어조로 일정한 간격과 호흡으로 꾸준히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 내가 그랬듯 말이다. 20대가 되고 나서 좁은 시야로는 그만큼의 크기 속에서 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 저 너머론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모든 사건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보자.

 

어느 때보다 빠르고 간편하게 스마트폰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종이 책을 찬양하는 것처럼, 종이 신문으로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있다. 그 점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에 신문이 폐간되지 않고 여전히 굳건한 것이리라. 짧게 만들어지는 것들은 그만큼 짧게 소비된다. 인스턴트식으로 소비되는 짧은 기사도 허다하다.

 

나는 종이 신문 덕분에 논리를 길렀고, 글을 보는 능력은 한 층 더 향상시켰다. 모든 기사가 좋은 기사는 아니다. 그럴 땐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써보기도 한다. 어쨌든 앞으로도 어느 신문이든 꾸준히 구독하고자 한다. 사회에서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보다 단단한 글과 내면을 위해서 종이 신문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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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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