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약한 갈릴레이의 '최후진술'

마지막 순간에 말하고 싶은 진심
글 입력 2020.04.0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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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최후진술”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일생을 담은 뮤지컬 중에 가장 독특하다. 보통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주인공인 극에서 그가 어떻게 별을 관측하게 되었고 지동설을 입증할 수 있었는지를 표현한다면 “최후진술”은 인간의 나약함과 신념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아무 말은 처음이라며 랄랄라 거리는 넘버를 들을 때는 배가 아프도록 웃고, 서로 사랑하라는 신의 말에는 객석 모두가 춤을 춘다. 대망의 17세기에 차와 스마트폰과 비행기가 나타나는가 하면 어느 순간 진지한 이야기를 해 몰입시킨다. 그러나 마냥 가볍다고 말하기엔 진중하다.

 


별을 사랑한 대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시를 사랑한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

전 세계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던 동갑내기 두 인물이 천국 가는 길에서 만나다!

163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지지한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로마교회의 종교재판을 받게 된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는 살기 위해 자진하여 맹세한다. 지동설을 부정하고 천동설을 지지하는 내용의 ‘속편’을 저술하겠다고!

속편을 쓰기 위해 피렌체의 옛집으로 돌아온 갈릴레오는 생의 마지막 여행길에 오르고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만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그의 최후진술은?

 

 

자, 이게 줄거리다. 줄거리를 보아도 이해하기 어렵고, 사실상 극을 보아도 이게 무슨 극인지 바로 알기 힘들다. 어떤 극일지 감이 온다면 대단하지만, 아쉽게도 높은 확률로 당신의 추측은 틀릴 것이다. 초반 10분 만에 해당 줄거리의 내용이 모두 진행되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신선하고 나쁘게 말하면 이게 대체 뭔가 싶은 공연은 처음 관람하는 사람의 후기가 기대될 정도다. 그러나 ‘아무 말’이나 하는 것 같다가도 주제를 향해 목적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간다는 점이 “최후진술”의 매력이다.
 
“최후진술”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사후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천국과 지옥에 가기 전 마지막 재판을 하러 여정을 떠난다. 시공간이 사라진 배경에서 천동설과 지동설을 주장한 여러 학자를 만나고, 그의 삶에서 큰 의미를 주었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재미있는 부분은 그를 인도하는 가이드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점. 윌리엄 셰익스피어 역할의 배우는 이외에도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와 고대 신학자, 과학자, 수학자는 물론 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 밀턴 등을 연기한다. 모두 갈릴레이 갈릴레오에게 중요한 인물이며,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으로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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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주장하는 천동설을 부정해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린 코페르니쿠스는 능글맞게 갈릴레오를 약 올리고, 죄책감에 천국행 배에서 내린 프톨레마이오스는 생전 주장했던 것과 반대로 지동설을 주장한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우리가 아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느냐며. 천동설을 주장하는 교회는 나중에 두고두고 부끄러워할 것이라는 말까지 한다.

 


그런데 비행기가 왜 그렇게 작아?

네 상상력이 작아서 그래. 이곳은 네가 상상하는 것만큼 펼쳐지니까.

 

 

재미있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생전 천동설을 주장했든 지동설을 주장했든 사후 갈릴레오가 만난 철학자는 지동설을 지지한다. 상상하는 것만큼 길이 열리는 이곳에서 생전 주장이 어떠하였든 모두가 지동설을 지지한다는 것은, 갈릴레오가 여전히 지동설을 믿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여정 중에 마주친 강도는 신학자이며 과학자이자 수학자이다. 고대에 천동설을 주장했던 많은 사람을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어 그들의 주장을 대변한다. 코페르니쿠스나 프톨레마이오스를 만났을 때는 교회의 뜻에 따라 천동설을 지지하던 갈릴레이가 천동설을 주장하는 강도의 아무 말은 강하게 반박한다. 그들의 삼단논법에 혀를 차며 ‘삼단논법이 너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 말하는 갈릴레오의 모습은 천동설을 주장하겠다는 말과 대비된다.
 
존 밀턴을 만났을 땐 좀 더 두드러진다. 생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프톨레마이오스 코페르니쿠스와 두 가지 주요한 우주 책에 관한 대화’를 작성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죄로 재판대에 선다. 재판에서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부정하고 천동설을 지지하는 속편을 쓰겠다고 말한다. 눈이 어두워져 글을 쓰기 어려워질 때 그의 이론에 감명받은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이 나타난다. 갈릴레오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대화’ 속편을 마음대로 수정해도 된다고 말한다. 존 밀턴은 무척 실망하며 글을 마음대로 수정해도 된다고 하는 작가는 없다고 주장한다. 자칫하면 작가의 진심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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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는 종교재판소에서 자신의 과학적 신념을 굽히지 않아 공개적으로 화형당한 인물이다. 또한 갈릴레오에게 큰 인상을 남긴 존재이기도 하다. 갈릴레오는 그를 사탄의 제자라고 부르지만, 차마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브루노를 자신과 다르게 용감하고 아름다운 존재라고 회상한다. 브루노의 당당한 기개와 달리 갈릴레오는 언제나 도망치고 싶고 숨고 싶어 한다.

 


난 무엇이 두려운 걸까? 더 잃을 것도 없는데. 난 무엇을 바라는 걸까? 더 얻을 것도 없는데. 용감하지는 못해도 아름답지는 않아도 살아남아서 끝까지 증명하고 싶었어. 목숨을 구걸한 이유를. 난 무엇을 꿈꾸는 걸까? 왜 아직도 불안한 걸까? 난 누구를 질투하는가. 왜 아직도 잊지를 못할까?

아무나 붙잡고 말하고 싶었어. 미안하다고 이해해달라고. 하고 싶은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거 같다고. 이젠 시간이 없어.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나 이제 말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이 끝난 후 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는 야사는 유명하다. 만일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지구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사실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럼에도 다시 지동설을 주장할 거고, 그렇게 우주가 알고 태양이 알고 지구가 아는 결국 밝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돈다’는 말이 주는 진리 불변의 법칙이 이토록 와닿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두려워하고 겁낸다. 유명한 철학자나 과학자, 소설가, 부모님과 친구, 당신 자신까지도 모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두려움에 옳은 말하기를 망설이거나 말을 했음에도 취소하거나 수정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재판장에서는 천동설을 지지하겠다고 주장하면서 나와서는 작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돈다’고 말하는 갈릴레오는 모두를 닮았다. 소심하고 나약하고 하찮다.
 
뮤지컬 “최후진술”에서는 나약하고 소심하고 하찮은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그대로 표현한다. 그렇기에 그가 마지막 순간에 진실을 말하는 장면이 더욱 뭉클하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도는 것처럼. 그렇게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앞에 천국과 지옥은 사라진다. 오로지 그가 사랑하던 별과 망원경만 남는다. 모두가 부정하고 어쩌면 나조차 부정할 지라도 신념, 진리, 옳은 행위가 변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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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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