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책을 더 책답게 - 출판저널 516호 [도서]

글 입력 2020.04.0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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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어쩌면 책을 고르는 것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책을 읽지 않다가도 우연히 발견한 책의 한 구절로 강한 독서 욕구가 치밀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주저 없이 최소한의 준비만 한 후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거나 책을 주문한다. 그렇게 손에 쥔 책은 장르와 무관하게 대부분 하루면 다 읽는다.

 

책 한 권을 읽은 후 그 여운을 찬찬히 머금어볼 틈도 없이 치고 들어오는 생각은 '다음은 무얼 읽어야 할까'였다. '읽으면 좋을까'가 아닌 '읽어야 할까'. 책을 읽으며 강박이 생겼다. (책의 두께와 내용에 따라 다르지만) 책을 하루 안에 다 읽지 않거나, 다음에 읽을 책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이상한 불안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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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느라 밤을 새운 적도 있다. 우스운 것은 결국 어느 책도 사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말 그대로 '필(feel)'이 오지 않아서, 좀 더 세부적으로 말하면 비슷한 책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제목, 목차 심지어는 표지 디자인까지 유사했다. 얼마 전 리뷰를 작성한 에세이를 읽기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이유 탓에 에세이 읽기를 지양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우연히 흥미를 이끄는 구절을 발견해서 책을 사서 읽는 것과 달리 각을 잡고 '좋은 책'을 선별해내기란 내게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출판저널>에서 나와 유사한 경험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 바로 16회 세계문학상 당선자 오수완이다. 20대 말부터 매년 100년 남짓을 읽어오던 오수완 작가는 2019년 책 한 권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해에게 '독서 안식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안식년에 쓴 '내 글'은 세계문학상에 당선되었다.


나는 작가만큼 다독을 하는사람은 아니지만, 머지않은 날 '독서 안식년' 혹은 '독서 안식월'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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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의 공포에 삶의 욕구로 반응했습니다. 삶의 욕구는 낱말의 욕구였습니다. 오직 낱말의 소용돌이만이 내 상태를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낱말의 소용돌이는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글로 표현했습니다."


- 137p

 

 

헤르타 뮐러가 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했던 연설문의 일부다. 종종 글을 쓸 때 단어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분명히 이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전을 뒤져도 100퍼센트 마음에 드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결국 현존하는 단어들과 합의 후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가장 가까운 의미를 지닌 것을 선택한다.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낱말의 소용돌이를 통해 삶의 욕구를 담아내는 낱말을 만든다. 조어는 내게 창조적이면서도 혁명적으로 다가왔다. '숨그네', '뼈와 가죽의 시간', '절대 영도', '심장삽'과 같은 단어들은 그 의미를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분명히 새로우며 밀도 높고 강렬한 의미가 담겨 있음에 분명했다. 이렇게 단어들로조합된 또 하나의 단어의 외침은 단어(單語)가 아니라 다어(多語)처럼 우렁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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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연중특별기획에서 소개하는 팬덤북스 박세현 대표 인터뷰 또한 인상적이다. 최근 공교롭게도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전공과는 조금 다른 방향인, 책과 관련된 일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만큼 글과 책은 내가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것이다.


박세현 대표의 인터뷰는 출판업에 종사하는 것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트랜스 미디어 시대출판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책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출판업에 완전히 무지하다고도 할 수 있는 내게 새로운 비전을제시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출판저널>이라는 매거진을 처음 접한 후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독자와 책의 상호작용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 놓은 것이었다. 이 덕분에 많은 글들을 자연스레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인터뷰, 칼럼, 좌담 형식 등 다양한 형태의 글들은 각각의 주제와 만나 흥미를 더했고, 책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또 매거진 중간중간 등장하는 도서들과 책 끄트머리에 소개된 신간 도서 소개를 하나 둘 흥미롭게 읽어보다가 메모장에 다섯 권 정도를 적어두기도 했다.

 

책이라는 것은 때로는 정보 전달의 수단이 아닌 하나의 주제가 된다. 어느 날 주인공이 된 책은 신이 나서 숨겨둔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출판저널>은 책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어질 수많은 책들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책문화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그렇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다시 쓰고 또읽으면, 그때 비로소 책은 더 책 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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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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