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25년간 우울증을 겪은 박물학자의 열두 달 기록 '야생의 위로' [도서]

<야생의 위로>
글 입력 2020.04.0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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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집 안에서만 생활한지도 일주일이 넘어간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무기력하고 조금은 울적해지는 기분이 들어 집 앞 산책은 필수다. 강아지 산책은 가족이 번갈아가면서 하고, 나가더라도 짧은 걷기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야생의 위로> 첫 장을 펼치고 10장을 마저 읽기 전에, 저자 에마 미첼이 기록한 문장들의 냄새를 맡고 싶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겉옷을 챙겼다. 한 손에는 간식으로 먹을 고구마를, 다른 한 손엔 카메라와 공책을 챙겼다.

 

봄이 온 듯, 조금 칙칙했던 집 앞 화단이 햇빛을 마시며 푸른빛을 띄고 있었다. 조금 뒤 쪽으로 가면 인적이 드문 길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강아지 줄을 풀고 각자의 여유 시간을 즐긴다. <야상의 위로> 저자 에마 미첼이 그랬듯 고개를 내민 이름 모를 풀과 꽃, 그 위에 날아드는 날개 달린 친구들의 숨소리에 귀 기울인다. 편안하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움직이듯 포근함이 가득한 마음으로 그들의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들어본다.

 


에마 미첼은 25년간 우울증을 앓았다. 《야생의 위로》는 그가 반평생에 걸쳐 겪어온 우울증에 관한 회고록인 동시에 몇 번의 심각한 우울 증상을 겪는 동안 만난 자연의 위안에 관한 일 년간의 일기다. 미첼은 가벼운 무기력증에서 자살 충동에 이르기까지 우울증의 다양한 양상을 경험하며, 그런 시기마다 자신을 위로했던 자연의 모습을 생생한 글과 그림, 사진으로 옮긴다. 매일 산책길에서 동식물을 관찰하고 스케치하고 사진으로 찍는 과정이 쌓여 가장 힘겨운 날에도 회복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되어 주었다.


- 책 소개 中


 

<야생의 위로>는 동식물과 광물, 지질학을 연구하는 박물학자이자 디자이너, 창작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에마 미첼이 12개월 동안 쓴 일기다. 25년간 우울증을 앓은 에마 미첼은 감정이 밀려올 때마다 산책을 나섰다. 그곳에서 만난 동식물을 관찰하고, 그림에 담았으며 글로 기록했다. 그는 처음 <영국 식물 컬러 소사전>을 발견하고 느꼈던 강렬한 느낌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도판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전원에 나가 있을 때와 같은 안도감을 어느 정도 느낀다’(p22)고 했다.

 

내가 우리 집 맞은편의 숲을 보며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은 단순히 근사한 숲 풍경을 보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실제로 내 심신에 영향을 끼치는 물리적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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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톤치드’나 ‘산림욕’이 낯선 단어는 아니다. 가족여행을 갈 때면 항상 ‘산림욕’이라는 팻말이 세워진 나무 사이를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 길 위에서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있다. 예를 들어 따뜻한 햇살이 등 뒤를 포근하게 안아줄 때 나른한 기분이 든다든지, 흙이나 나무 냄새를 있는 힘껏 들이마실 때 속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에마 미첼은 그것이 단순히 느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말했듯, 이것은 단순 기분이 아니라 실제 우리 뇌와 호르몬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며, 곧 우리 기분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

 

식물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는 인간의 면역계와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며 박테리아 감염을 막아준다. 햇빛을 받을 때 분비 촉진되는 세로토닌이 공격성과 충동, 강박증, 자살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우리는 쉽게 읽을 수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의 기분을 해소시켜주는 엔도르핀과 도파민이라고 하는 뇌 신경전달물질 또한 산책을 통해 촉진시킬 수 있다. 실제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알려진 코르티솔 수치는 산이나 숲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서 낮게 측정됐다.

 

대부분의 식물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감염을 막아주는 휘발성 화합물과 기름을 생성하는데 이런 물질을 통칭하여 '피톤치드'라고 부른다. 산림욕의 효과를 분석한 과학자 집단의 연구에 따르면 피톤치드 흡입은 식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면역계와 내분비계, 순환계와 신경계에도 일부 같은 작용을 한다.

p19

 

세로토닌 분비는 산림욕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더욱 많은 증거를 보여준다. (...) 세로토닌과 인간의 기분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며 자연과의 접촉이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 피부나 망막이 햇빛에 자극을 받으면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되는데 햇빛이 강한 날일수록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그래서 11월에서 3월 사이에 햇빛이 약해지면 어떤 이들은 겨울 우울증 혹은 계절성정서장애를 앓기도 한다.

p19

 

세로토닌 분비를 증가시키는 또 한 가지 놀라운 자연 접촉 경로는 토양이다. 인간이 미코박테륨백케이 같은 양성 토양 박테리아에 접촉하면 박테리아의 세포벽에서 나온 단백질이 특정 뇌세포 군집에서 세로토닌 분비를 증가시킨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잠시 잡초를 뽑으며 보내는 시간이 화단 주위에 심은 꽃에만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p20

 

마지막으로 우리가 산책과 같이 가벼운 운동을 하면 혈류 내에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엔도르핀은 통증을 감소시키며 온화한 황홀감과 은근한 자연적 도취 상태를 불러일으키는 신경전달물질이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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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사이사이 끼워져 있는 그림과 사진은 읽기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 읽기, 보기, 듣기, 냄새 맡기, 쓰다듬기를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나 또한 나무와 풀 그리기를 좋아하는데, 그림을 그릴 때는 온 정신을 집중하여 대상을 관찰한다. 그럴 때면 나무의 가지가 얼마나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있는지, 나뭇잎의 크기, 한 가지에는 몇 개의 나뭇잎이 매달려 있는지, 가지의 굵기, 자라난 방향은 한쪽을 향하는지, 여러 갈래로 뻗어있는지 등의 세세한 부분을 알게 된다. 붙여놓은 듯 똑같아 보이는 가로수들에도 절대로 같은 이들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엠마 미첼의 그림은 그렇게 세밀한 지점을 느끼게 한다. 무엇을 보고 어떻게 그렸는지 그 자취를 더듬어보며 더욱 자연에 빠져들게 한다.

 

단순히 감정을 나열한 글이 아니다. 엠마 미첼은 산책하면서 마주했던 것들에 대한 묘사, 자신의 심리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자신이 겪는 우울감에 대한 묘사 그리고 자연이 어떻게 자신의 우울증의 해소를 도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글과 그림으로 위로받음과 동시에 왜 숲을 걷는 것이 우리에게 그런 느낌을 주는지, 왜 그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한지, <야생의 위로>는 우리에게 책을 통해 '야생'과 '위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안한다.

 

채집한 식물과 화석을 늘어놓고 살펴볼 때 내 마음은 그림을 그리거나 빵을 반죽할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내면의 갈등이 누그러지고 평온이 찾아든다. 나는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선택한 물품을 진열하며 자그마한 임시 박물관을 조성한다. (...) 내가 아는 것은 단지 발견한 것들을 가지런히 늘어놓는 소위 ‘놀링knolling’이라는 행위가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은근한 도취감을 준다는 것이다.

p64


내 마음은 우울증이 갈망하는 자기소멸을 향해 비틀비틀 나아간다. (...) 나무들... 푸르름, 위로. 마음이 완전히 가라앉진 않았지만 파국을 향해 폭주하던 소란은 멈추었다.

p135


자연을 치료 약 삼은 한 해의 경험은 나에게 인간이 온전하려면 자연 풍경 속에 있어야 한다는 확신을 주었다. 태초부터 인간과 땅 사이에는 강력한 유대가 있었다. 우리는 야생의 장소에서 살아가도록 진화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자연과의 단절 때문일지도 모른다. (…) 하지만 나를 비롯해 이 분야를 연구해온 사람들에게 명백한 사실은 다른 요소들이 미치는 영향과 별개로 자연과의 단절이 문제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p253

 

우리가 집이나 사무실, 도시환경을 떠나 숲과 초목과 야생이 존재하는 장소로 옮겨 갈 때면 내면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생리학적·신경학적 변화가 발생한다. 이와 연관된 과학은 아직 발전단계지만, 자연 풍광의 이로운 효과로 정신질환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내가 겪은 놀라운 효력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우울증 진단의 대책으로 자연 산책이라는 관념이 더욱 널리 퍼지기를 소망한다.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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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귀찮아했을 산책을, 이 책을 읽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다. 매일 집 앞의 같은 길을 걸었지만 매일 다른 것들을 봤다. 야생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점점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야생의 위로>에서 엠마 미첼이 그랬던 것처럼 발걸음을 늦추고 공기를 마셨다. 가만히 쪼그려 앉아서 핀 풀과 꽃을 봤다. 노란 민들레가 잔뜩 피어있었다. 나무 아래에 마른 이끼가 있었는데, 손으로 쓰다듬어보니 처음 느끼는 감촉에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가만히 만끽하는 순간이 몇이나 있었나 싶다. 등을 쓰다듬는 햇살의 손길이 따뜻했다. 10시의 결이 달랐고, 2시와 5시의 결이 달랐다.

 

발밑을 가만히 바라보면 그제야 바쁘게 움직이는 작은 친구들이 보였다. 곳곳에 생명이 있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작은 존재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오로지 현재 나의 상태와 내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방 안에서 끝없이 되풀이하던 막막함과 좌절, 갑갑한 마음과 우울, 체념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고민이나 걱정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따뜻하게 데워진 공기 속에서는 매 분, 매 초, 나와 자연의 연결고리와 내면에만 집중됐다. 자연을 단순히 찬양하거나 감성에 젖은 말로 비칠지도 모르겠다만, 뭐라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었다. 그냥 보통의 나른하고 편안한 감정만 느끼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는데, 별것 아닌 것 같은 순간이 엄청난 치유의 시간이 되어줬다. 정말로 '야생의 위로'를 받는 순간이 이었다.


어제는 어김없이 열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무심코 창밖으로 지나가는 나무들을 바라봤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에서 평안함과 평화로움, 안도감이 잔잔하게 스며들었다. <야생의 위로>는 나에게 그런 책이었다. 글과 그림으로 품어낸 엠마 미첼의 산책길에 동참하여 검은지빠귀를 관찰하고, 황갈색애꽃벌의 굴 파는 방법에 대해 궁금해하다보면 하루를 풍요로움으로 보듬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만큼은 느린 산책을, 그리고 <야생의 위로>를 통해 그들과 내 삶을 들여다보고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OCTOBER · 10월 _ 낙엽이 땅을 덮고 개똥지빠귀가 철 따라 이동하다

NOVEMBER · 11월 _ 햇빛이 희미해지고 모든 색채가 흐려지다

DECEMBER · 12월 _ 한 해의 가장 짧은 날들, 찌르레기가 모여들다

JANUARY · 1월 _ 무당벌레가 잠들고 스노드롭 꽃망울이 올라오다

FEBRUARY · 2월 _ 자엽꽃자두가 개화하고 첫 번째 꿀벌이 나타나다

MARCH · 3월 _ 산사나무잎이 돋고 가시자두꽃이 피다

APRIL · 4월 _ 숲바람꽃이 만개하고 제비가 돌아오다

MAY · 5월 _ 나이팅게일이 노래하고 사양채꽃이 피다

JUNE · 6월 _ 뱀눈나비가 날아다니고 꿀벌난초가 만발하다

JULY · 7월 _ 야생당근이 꽃을 피우고 점박이나방이 팔랑거리다

AUGUST · 8월 _ 사양채잎이 돋고 야생 자두가 익어가다

SEPTEMBER · 9월 _ 블랙베리가 무르익고 제비가 떠날 채비를 하다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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