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든 여성은 목을 밟히지 않을 권리가 있다 [영화]

글 입력 2020.03.3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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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 태어나 이토록 소름끼쳤던 적이 또 있었나 싶은 요즘이다. 성년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여성, 그리고 여아들이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지속적이고 끔찍하게 성착취를 당해왔다는 요 근래의 소식들은 내 눈과 귀를 의심케 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은 결코 2020년의 대한민국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식적으로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벗어나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나라에서 일어났다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는 일들이었다.

 

익명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수많은 범죄자들, 피의자보다는 피해자들에게 포커스를 맞춰 대중들의 눈길을 끄려는 일부 자극적인 기사들. 비상식적인 일들은 이미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범죄자는 오히려 뻣뻣이 고개를 들었고, 피해자들은 숨고, 또 숨죽여 울어야만 했다.


그 중에서도 피해자들을 가장 깊은 절망에 빠지게 하는 것은, 유독 성범죄에 한해 너그럽기 그지없는 일련의 법 조항들이었다. 만인 앞에 공평해야 마땅한 법의 얼굴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우리 사회 여성 인권의 현실이 또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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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성으로서의 답답함에 단단히 휩싸여 있던 어느 저녁,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를 만났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의 여성 대법관이자 ‘Notorious RBG’, 즉 ‘악명 높은 루스’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양성 평등 운동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였다.

 

영화는 시작부터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여성 인권의 수준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미국도 불과 1950년대까지는 여성과 여러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사회였다는 것, 그래서 과거 미국의 사법 체계 또한 남성 중심적인 법 조항들을 바탕으로 다수의 권리를 보호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이하 ‘루스’)는 그렇게 유리천장이 합법처럼 여겨지던 사회 속에서도, 조용하고 힘있는 날갯짓을 계속하며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갔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두뇌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음에도, 남성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이유로 온갖 차별을 당했던 그녀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6번의 대법원 법정 변호에서 루스는 진정한 양성 평등을 위해 싸웠다. 비단 여성의 입장에서만 사회의 불합리함을 외치지 않고, 오히려 남성들의 입장에서 일어나는 역차별 사건 등에 대한 변호를 맡으며 진정한 평등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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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능력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 여겼던 당시 대다수의 남성들과 달리, 루스의 비범함을 자신의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 그녀의 남편 마티 역시 인상적이었다. 든든한 조력자들의 응원을 바탕으로, 루스는 계속해서 그녀만의 방식으로 투쟁을 계속해 나갔다.


그리고 60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이르러 마침내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 연방대법관(우리나라의 ‘헌법재판관’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이 된다. 대법관이 된 이후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여성 인권과 인종차별문제에 관해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가장 상식적이고 약자의 편에 선 판결을 지금까지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영화가 끝난 후, 나는 다시 한 번 2020년의 대한민국을 생각했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루스와 같은 영웅들이 변화시켜왔던 미국의 사법 체계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현 사법 체계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었다.


‘때린 사람은 발 뻗고 못 자도 맞은 사람은 다리 뻗고 잔다’는 옛 말은, 적어도 성범죄 판결 앞에서는 완벽하게 틀린 말이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비논리가 익숙해지고, 정의의 의미는 마치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또 다른 개념으로 점철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미국의 오래된 과거가 곧 2020년 대한민국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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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장면에서 루스는 이렇게 말한다. ‘여성의 목을 밟던 발을 치워 달라’고. 여성들이 말하는 진정한 양성평등이란 여성이 남성의 우위에 서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으로서 당연시되는 상호 존중과 이해라는 것을 너무도 적절하게 비유한 것이다. 조용하지만 강인한 어조로 내뱉은 루스의 그 한마디는, 성차별과 양성평등에 대한 핵심을 모두 함축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다시, 보이지 않는 위협들에게 수없이 목을 밟히고 또 밟혔을 모든 피해자들을 생각한다. 피해를 입고도 도리어 죄를 저지른 것처럼 두려움과 불안에 몸서리치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면서, 어딘가에 신이 존재한다면 제발 이들을 고통 속에서 구해달라고 변변찮은 글 몇 줄의 공간을 빌려 기도해본다.


비록 루스와 같은 비범한 누군가가 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녀와 같은 삶을 아주 아주 오랫동안 꿈꾸겠다는 맹세와 같은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부디 지금 세상을 뒤덮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 분노가 또 다시 한 순간 가라앉지 않기를,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또한 오랫동안 나와 함께 분노해주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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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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