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갈릴레오 갈릴레이, 최후진술 하시겠습니까 [공연]

그래도 지구는 돈다
글 입력 2020.03.3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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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죽음을 겨우 면했던 종교 재판 후 집으로 가며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했다는 말,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가 정말로 나오자마자 이 말을 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발견한 진실을 살기 위해 숨길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과 갈릴레이의 안타까운 심정을 대변해주는 듯한 그의 말은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 있었다.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들은 정말 대단하기만 한 사람들인 줄로만 알고, 그들을 한 명의 인간이기 이전에 좋은 업적을 남긴 역사로만 이해했던 그때에는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했던 위인이라고 단지 그렇게만 생각했다.


물론, 갈릴레이가 지금에 와서도 대단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나 그 역시 자신의 목숨이 소중했고 죽음이 두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양심에 손을 얹고 부끄럽지 않은 말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하물며 그것이 갈릴레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작품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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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최후진술>은 창작뮤지컬 브랜드를 연이어 탄생시키며 대학로 뮤지컬 계의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는 이희준 작가, 박정아 작곡가가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우리에게 지동설로 널리 알려진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종교 재판과 그의 '최후진술'을 뮤지컬적인 서사로 재탄생시킨 공연으로, 갈릴레오 갈릴레이, 윌리엄 셰익스피어 등 역사 속 인물들을 새롭게 해석한 독특한 캐릭터들과 신선한 스토리로 극의 재미와 몰입도를 높인다.

 

<최후진술>은 지동설을 부정하고 천동설을 지지하는 내용의 ‘속편’을 쓰기 위해 피렌체의 옛집으로 돌아온 갈릴레오가 생의 마지막 여행길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만나며 시작된다.


별을 노래하는 극작가의 마음과 별을 바라보는 과학자의 마음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최후진술>은 과학과 예술, 수학과 문학 등 이분법으로 나눠진 현실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는 작품이 될 것이다.


별들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무대와 시적인 가사는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재미와 감동을 전한다.




종교 재판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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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는 사실 본인의 삶에 매우 충실했던 과학자인자 독실한 가톨릭 신도였다. 태양의 흑점과 목성의 위성을 발견했으며, 현대에 와서는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남긴 업적이 많은 인물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게 된 것도 순전히 그 때문이었으나, 이를 종교 권력에 대한 반발이라 여긴 로마 교황청에 의해 마지막 생을 가택에서만 보내게 되었다.


극에서는 갈릴레이가 집에서 잠에 들었다가 눈을 뜨니 저승길에 와 있었다는 설정으로, 그가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는 생전 자신의 선택에 대해 어떤 말을 하게 될지 관객들은 지켜보게 된다.

 

극의 초반부까지는 알고 있는 사실 속 갈릴레이의 모습보다 확연히 많이 지쳐 보이고,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모습이 유명한 과학자의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결국엔 살기 위해 지금껏 발견해온 진실을 부정함과 동시에 과학자로서의 양심도 외면했다고 스스로 생각한 때문이었다.


넘버에서는 그런 그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었다. 신을 사랑하고 믿지만, 그 신앙이 과학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계속해서 고통받고 있었다. 종교 재판 후 갈릴레이의 모습은 비참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물론 픽션임에도 힘들어하는 갈릴레이의 마음이 이해되어 안타까웠다.


 

 

갈릴레이와 셰익스피어가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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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극 중 설정의 전부였고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갈릴레이의 이야기에 그쳤다면 조금 심심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천국에 갈 것이냐, 지옥에 갈 것인가를 두고 사후 최대의 선택을 해야 하는 클라이막스에서 갈릴레이가 계속해서 내면적 고통과 환상만으로 자신의 결정을 뒤엎었다면, 극의 흐름이 단조로워 아마 극적인 재미가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극장을 나서며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셰익스피어가 갈릴레이의 인도자이자 친구로 등장해 이야기에 활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갈릴레이와 동갑이고, 그보다는 먼저 죽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지만 저승길에서 만난 두 거장의 우정은 보는 재미가 있었다. 둘다 생전에 이루지 못한 과업이 있다는 생각에 미련과 동시에 애증이 짙게 남아 있었으며, 각자 글과 과학에 품고 있던 깊은 사랑이라는 공감대가 있어 서로를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최후의 재판으로 갈릴레이를 데려가는 인도자로서 길을 동행하며 윌리엄과 갈릴레이는 유쾌하지만 진중하게 우정을 쌓아갔다.

 

 


죽음과 양심 사이; 마지막 길 위에서



갈릴레이는 최후의 재판으로 가는 길에 신을 한번 만난다. 저승으로 가기전 소원을 이룰 기회를 얻게 되면서 자신의 딸을 만나 아버지로서 잘해주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을 고백한다. 그와 동시에 아버지이기보다 과학자였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고민에 빠진다.


매일 들여다 보았던 생전의 망원경과 밤하늘에서 빛나던 별을 볼 수 있는 창문이 있는 방과 몸을 뉘일 침대하나면 만족스러웠던 시절, 별에 관한 책을 쓰며 환희에 찼던 순간, 그러나 지동설을 주장하다 사형된 동지에 대한 미안함 등 수많은 감정이 갈릴레이를 스친다.

 

신을 사랑하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과학자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자신이 인정하기 가장 어려웠을 것이다. 초반부에는 조금 비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득이 되었는지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도 고개 숙인 갈릴레이의 모습에 후반부로 갈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윌리엄도 그런 갈릴레이에게 계속해서 용기를 주며 그의 양심 선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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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

 

결국 갈릴레이는 이 말을 저승에 가서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갈릴레이가 천국과 지옥 중 어느 곳으로 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재판을 받으러 가는 여정에서 이미 스스로에게 쏟아냈던 수많은 물음의 답을 찾아내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생전의 비참함과 슬픔이 조금씩 그에게서 사라지고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신과 과학, 둘 다 자신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자 진실한 사랑의 대상이었음을 마지막에서야 마음 속에서 꺼내 말할 수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


상상력으로 빚어진 역사적인 두 인물의 만남도 신선했지만, 다소 아쉬웠던 갈릴레이의 마지막이 최후의 재판에서나마 비록 연극임에도 잔잔한 감동을 주어 좋았다. 극의 몰입도를 높여준 다양한 장르의 캐릭터 강한 넘버와 갈릴레이의 상징처럼 무대 곳곳에 자리하던 별들도 인상깊게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대의 이야기에 대한 글을 다음의 말로 마무리하면 왠지 잘 어울릴 것 같다.

 


이슈는 시대가 버려야할 혹은 인정해야 할 가치를 미리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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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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