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원한 뒷모습 [문학]

이성복 시인과 나의, '서해'
글 입력 2020.03.2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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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 이성복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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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지난 오피니언에서, ‘서해’라는 키워드를 사용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해’라는 낱말이 내게 가지는 의미에 관해서 설명해보고 싶어졌다. 그러자, 1년 전 써두었던 일기가 먼지를 털고 말간 낯을 드민다.

 

 

 

옛 기억


 

- 2019년 6월 1일, 토요일. 오전 09:38

 

지금은 토요일 이른 아침이다. 내 할 일이 바빠 오늘도 서둘러 집을 나섰다. 주말 아침엔 서울이 텅 빈 듯한 느낌이라 참 좋다. 그러나 텅 비어버린 곳엔 당신도 계시지 않아 조금 섭섭하기도 하다. 같은 순간 지금, 어디에 계실지를 궁금해한다.

 

아직은 달궈지지 않은 대기를 마시며 새벽 옥상에서 스트레칭을 했다. 피로 같은 쓸쓸함을 털어내었다. 구름이 칠 할 정도 끼인 하늘에 선선한 예감이 떠 있어 기분이 좋다. 오늘은 덥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이 바람, 구름 너머에 언제나 당신이 숨어 계심을 느끼고 있다.

 

자전거로 학교에 온다. 버스를 타고 20분가량 걸리는 길을, 자전거로 되짚어서 온다. 창문으로 짜인 프레임 바깥의 세상을 직접 맡으니 같은 길도 다르게 다가옴을 알게 된다. 풀 내음보단 매연에 가까운, 이 길은 그럼에도 싱그러운 길이다. 예감과 상상으로 가득한 학교 오는 길은 늘 그렇다. 우연히 마주칠 수 있을까?

 

나는 조금씩 당신의 바다로 다가간다. 가는 길은 즐거운 길. 그러나 언제나 마지막 발걸음을 뗄 수는 없었다. 바다의 직전까지, 나는 이끌리듯 가곤 그 앞에서 멈춤을 반복했다.


내 거기 완전히 닿기 전까지 당신은 언제나 그곳에 계신다. 조금씩 가닿다가 마침내 마지막 벽 앞에 섰다. 이 벽의 바깥에 앉아서, 그 너머를 상상한다. 당신은 이 벽 너머에 계실까. 알 수 없다. 문 열어 확인하면 당신은 물보라로 사라지기에, 나는 계속 서성이다 이내 돌아섰다.


여태 줄곧, 나는 그곳 조금 떨어져 둥지를 틀었고, 그렇게 약속 없는 기다림을 시작하곤 했다. 당신이 이 앞을 지나시는 때까지 줄곧. 그렇게 오지 않은 당신은 언제까지고 그곳에 계시는 것이 내게 된다. 내가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을 때문이다.

 

주말에는 당신이 이곳 오지 않으실 줄을 안다. 그래서 오늘은, 기어코 문 열어 서해에 오고 말았다. 당신이 없으실 것을 굳게 믿고 다시 오시는 전까지 잠깐 들렀다 가고자 하였다. 당신 계시는 때엔, 내 차마 이 문을 열지 못하기에. 나는 당신 계실 곳을 남겨 드려야 하는 까닭에서일까. 아니, 혹여라도 당신을 직접 뵈면 나는 도망쳐버리기 때문이다. 비타500 한 병 건네어 드려볼까 하는 소심한 용기는 싹트다가도, 이내 그 앞에만 서면 파도에 쓸리어 나가곤 했다. 기다림은, 기다림만으로 거기 가만있었다.

 

학교 중앙도서관의 열람실은 `Forest Zone`과 `Ocean Zone` 둘이 있다. 오늘 나 앉은 이곳은 온통 파란색으로 인테리어가 된 바다이다. 나의 당신은 자주 이 바다에 계심을 내 안다. 그래서 이 아침 문득, 이성복 시인의 '서해'가 생각이 난 것이겠거니.


시인은 왜 당신의 계실 곳을 남겨둔 것일까. 그 까닭은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해 가닿은 서해에 당신이 계시지 않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더는 당신을 그려낼 곳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더는 내 안의 세계 어디에서도 당신을 그려낼 수 없음이 두려운 것이다. 마음속에 당신 계실 곳을 남겨두면, 나는 영원히 그곳에 당신이 계실 줄로 믿고 이곳 지금을 살아낼 수 있다. 먼 어드메 희망을 품고서야 비로소 인간은 살아 나아갈 수 있기에.

 

당신은 그곳에 계실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하고, 믿을 수가 있다. 직접 문 열어 그린 환상을 깨트리지 않는 한. 문 열어 확인하기 전까지 당신은, 그곳에 계실 수도 계시지 않을 수도 있다. 관측되기 전까지 이 두 상반된 가능성의 상태는 중첩되어, 모순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믿기로 했다. 알 수 없으니, 믿을 수 있다. 영원히 찾아뵙지 못할 당신은, 그렇게 이 안에. 당신은 서해 어드메에서 영원할 듯, 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을 해풍에 나부낀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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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서해는, 영원한 상상의 공간이다. 그곳은 완전히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으로, 아직 어떤 현실성도 침해하지 않았기에 유지될 수 있는 내적인 심상 공간이다. 그 공간은, 나의 모든 소망이 투영될 수 있는 곳, 아직 어떤 현실성도 침해하지 않았기에 내 간절히 바라는 모든 것들의 환영이 춤을 추는 공간이다. 간절한 모든 것이 절로 형상화되는 공간이다.


서해에 도착해 그곳에 당신이 없다는 사실을 기어이 알게 되면, 상상 속에는 어떤 인과율이 들어와 그 상상을 흩어내 버린다. 모르기에 할 수 있었던 축복을, 앎은 흩어낸다.

 

그러므로 그곳을 가지 않겠다는 나의 마음은 당신을 오래도록 그리고자 하는 의지, 그 반증이 된다. 아니, 어쩌면 당신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음을 잘 아는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의지가 아닌 체념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볼 수도 잊을 수도 없기에 짜이는 그림이라면. 그려냄이 아닌 그려짐이라면.

 

당신의 실재하신 공간이 어디인지는 중요치 않다. 아니, 나는 그를 몰라야겠다. 당신이 계신 곳을 내가 들으면, 나의 상상은 유지될 수 없기에. 어디 계신지 모를 수밖에 없었다는 무력감은, 이제 모르겠다는 의지로 탈바꿈된다. 내가 그를 들은들, 만날 수 없을 일이라면.


내가 바라보는 것은 만날 수 없어 형상화된 당신, 필요로 하는 것은 그럴 만 한 가상의 공간뿐이다. 가보지 않은 곳 그리고, 있음 직한 곳. 내내 어여쁘실 당신을 휘감는, 당신과 퍽 닮은 곳.

 

그래서, 1년이 지난 지금 내 안에는 그녀가 남아 계신가. 오랜만에 떠올려 본다.

 

잊힘으로 사라졌다가 문득 이렇게 돌아오시니, 곧바로 그 영상이 생생하다. 내가 그려둔, 해풍의 뒷모습이. 과연 당신은 내 안 서해 어드메에서 영원할 듯, 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으로 계시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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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당신이 모르시기에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이 부끄러운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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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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