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아, 내 여행의 종착지는 이국이 아닌 당신이었구나 [여행]

애인과 함께했던 홋카이도 여행기
글 입력 2020.03.2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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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악-깍"

 

까마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홋카이도 땅에 우리는 발을 디뎠다. 동남아의 더위는 두렵고 그렇다고 태평양을 건너 저 멀리 낯선 대륙으로 떠날 금전적 시간적 여유는 없던 애인과 나는 설국의 도시가 뿜어내는 왠지 모를 로맨틱함에 이끌려 무작정 항공권을 결제했고 어느새 와버린 것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행을 떠나기 전, 큰 설렘은 품지 못했다. 전에는 여행을 간다고 치면, 특히 해외여행이라면, 며칠 전부터 보따리장수마냥 짐을 싸고 푸르기를 반복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은 최소화되었고 짐은 간소화됐다. 그동안의 경험치로 인해 일종의 삶의 요령이 생긴 것인데 이와 더불어 일본은 진즉에 몇 번 여행했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했던 것 같다.


기대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여행지가 내게 주는 신비감의 크기가 비교적 작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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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홋카이도 땅에 발을 디딘 우린, 가장 먼저 삿포로시를 찾았고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곤 계속해서 의아스러워했다. "뭔가 이상한데? 우리가 알던 일본 맞아?" "홋카이도는 원래 이런 곳인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너무 사전 지식과 준비 없이 온 건가?" 싶을 정도로 삿포로 거리의 드문 인적은 한산함을 넘어 유령도시마냥 을씨년스럽고 스산했기에 당혹스러웠다.

 

분명 집도 있고 상점도 있고 심지어 고층 건물까지도 우릴 둘러싸고 있는데 대체 사람의 온기는, 까마귀 지저귐과 차도 소리 외에 사람의 소리는 어디 있단 말인가. (여행 이틀 차에 알게 되었는데, 삿포로는 지역 특성상 지상이 아닌 지하로 주로 통행한다고 한다. 따라서, 지하도가 굉장히 발달하였고 지상과 지하 모두 바둑판 모양을 띄고 있어 길 찾기가 용이하다고 한다. 실제로 이틀차에 이용한 지하도엔 북적임이 끊이지 않았다)

 

무인도에 낙오된 것만 같은 상황에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지만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이와 같은 생각을 잠시 접어두게 만들었다.


하얬다. 태어나 처음 보는 광활한 순백이었다. 설원은 하늘과 땅의 경계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눈이 부시게 희푸렀고 쌓인 눈 위는 걸음을 뗄 때마다 뽀득뽀득 듣기 좋은 소리를 냈으며 몇 발자국 내디디고 뒤돌아보면 돌아보지 말라는 듯 지나온 길을 감출 만큼 눈이 내렸다.


그러다, 해가 저물면, 깊은 바다 빛 하늘에 은은한 가로등과 자판기의 빛이 거리를 밝혔고 슈가파우더 같은 눈발이 사락사락 흩날렸다. 마치 에이지 오하시의 자판기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틀림없이 우리의 상상과 같았다. 과연 설국의 도시는 로맨틱했다.


적어도 보기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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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행은, 가만히 감상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시각을 포함한 온 감각을 동원하여 생경한 곳에 흡수되는 것이 진정 여행 아니던가.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그곳을 걷고, 만지고, 듣고, 뭐든 시도해보아야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보기엔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이 도시는 어찌나 눈이 많이 오는지. 어찌나 해가 빨리 지는지. 어찌나 뼈가 시릴 만큼 추운지. 쌓인 눈 위로는 한 걸음 한 걸음 떼기가 고역이었고 가죽 부츠를 신고 온 애인과 달리 운동화를 신은 내 발은 외출 후 30분이 지나면 양말까지 젖어오기 시작했으며 끝없이 내리는 눈에 머리는 흡사 홀딱 젖은 생쥐 꼴이 되기에 십상이었다. 외출하기 전이면, 온몸에 부착형 핫팩을 붙여야 했고 옷을 몇 겹이고 껴입어야 했다. 낮은 온도 탓에 쉬이 방전되는 휴대폰을 위해 보조배터리도 두세 개 챙겼고 눈을 피하기 위한 우산도 필수였다.

 

여행은 우리의 상상과 달랐고 애인과 나는 눈과 추위에 지쳐갔다. 혼자 왔다면, 여행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빙판길에서 몇 번이고 자빠져도 괜찮냐며 날 일으켜 세우던 그와 함께였고 쌓인 눈 위로, 눈 녹은 물웅덩이로 길이 없으면, 먼저 가서 내게 손을 뻗어주던 그와 함께였고 내 발이 시릴까 내내 안절부절못하던, 당장 신발을 한 켤레 사주겠다고 말하던 그와 함께였고 자신의 어깻죽지에 눈이 쌓여 갈 때도 우산은 나를 향해 들어주던 그와 함께였고 내가 먹고 싶고 하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은 잊지 않고 꼭 그렇게 해주었던 그와 함께였기에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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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한 우리지만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행 중 우리는 몇 번 투닥거렸고 그러다 한 번은 크게 부딪혔다. 기차를 타고 오타루를 향해 가던 중이었는데, 시간이 꽤 늦어 마음이 촉박하던 때였다. 그런 와중에 애인이 저녁으로 먹기로 한 카이센동을 먹을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난 한국에서부터 정해온 메뉴인데 이제 와 갑작스레 말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럼 네가 가고 싶은 곳을 어서 정하라고 짜증스럽게 말하고 말았다. 그런 나를 보더니, 그는 그냥 먹겠다고 말했고 그렇게 우린 감도는 냉랭함 속에 오타루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려, 나는 못 먹겠다고 말해놓고 그냥 먹겠다고 하면 나더러 어떡하냐며, 지금 식당 문 닫았을 시간인데 어떡하냐고 재차 다그쳤다. 그는 억울했는지 늦잠을 자서 일정이 늦춰진 건 자신 때문만은 아니지 않냐고, 식당은 안 닫았을 수도 있으니 일단 가보자고, 대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언성을 높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늘 내게 져주던 그가 언성을 높인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일까, 그의 말이 틀린 것 하나 없었기 때문일까, 어린 애처럼 칭얼거리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였을까. 결국, 한없이 다정한 그는 울고 있는 날 달래었고 그 식당에 데려가 주었다. 그리고 다툼이 무색하게 식당은 성업 중이었다.

 

하루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우리가 다투었던 그때를 곱씹어 보았다. 돌이켜볼수록 내가 어리석었다. 애인은 나와 연애하기 전부터, 애초에 바다냄새 나는 날것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내 입맛에 맞추어 준 것일 뿐인데 나는 어떻게 그 사실을 망각했을까, 내내 고민하다 어렵사리 꺼낸 말일 텐데 왜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걸까. 과거의 내가 그저 원망스러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다독여준 그에게 새삼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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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4일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바라볼 상대는 애인뿐이어서였을까. 그에게 온전히, 담뿍 잠길 수 있었다.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 더욱 여지없이 분명해지는 시간이었다. 그가 얼마나 다정한지, 얼마나 배려 깊고 사려 깊은지. 또 얼마나 사랑스럽고, 그로 인해 날 웃게 만드는지 말이다.


때때로, 문득문득 새롭기도 했다. 그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실은 내 오만에 불과했던 것이다. 내가 알던 그는 그의 수많은 페이지 중 일부일 뿐. 낯선 곳, 처음 겪는 상황에서 그는 또 다른 페이지를 내게 보여주었고 난 그에 대한 독서를 끝마칠 때까지 그와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 내 여행의 종착지는 그였나보다.

 





모든 사진은 직접 촬영하였습니다.

 




[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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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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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83174
    • 에디터님 글 너무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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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안나
    • 2083174동력이 되는 말씀 너무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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