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이 캔 스피크', 또 하나의 시선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주제
글 입력 2020.03.2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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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주인공 옥분(나문희)은 시장에서 수선점을 운영 중인 할머니로, 매일같이 구청에 출석하며 약 8천 건의 민원을 넣어 구청 직원들 사이에서 '도깨비 할매'로 불린다.

 

그러던 어느 날, 옥분은 우연히 구청에 새로 온 직원인 민재(이제훈)의 영어실력을 확인하게 된 후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하고, 자초지종 후에 민재에게 영어 과외를 받게 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그들은 영어 과외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옥분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감춰왔던 것을 세상에 이야기한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이용수 할머니의 미 의회 위안부 사죄 결의안 채택 청문회 사례를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밝혀진 것과 같이, 옥분은 과거 일본군의 성 노예 피해자로 민재에게 배운 영어와 친구 정심이 건네준 연설문으로 직접 미국 의회에서 증언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아이 캔 스피크>는 영화의 스토리를 통해 너무 무겁지 않게, 그렇지만 그 의미가 절대 변질되지 않도록 위안부 문제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회문제를 많은 이들에게 상기시켰다.

 


 

일상이 된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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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옥분은 노년층 인물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 거의 단독 주연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는 많지 않다. 그렇게 흔치 않은 노인 주인공의 이야기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 이외에도, 사회적 약자의 생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옥분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민재'. 민재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영화 초반에는 다소 옥분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옥분이 매일같이 수십 건에 달하는 민원을 제출하는 민원인으로서 구청 직원들과 사람들의 원성을 자아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중후반부에 이르러 민재가 옥분의 민원서류를 확인하는 장면에서, 옥분의 민원에는 옥분 자기 자신만을 위한 민원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어떠한 악의를 가지거나 개인적 이익을 위해 구청 직원들을 귀찮게 한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들에 맞서 다수의 편의를 되찾으려 한 것이다. 이는 여기저기 참견하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할머니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참견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것은 '관심'이 될 수 있다.

 

또, 영어학원에서 옥분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이들은 수업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옥분을 두고 '민폐'라고 칭한다. 필자는 이것이 <아이 캔 스피크>가 드러낸 우리 사회 은연중에 깔려있는 '노인 혐오'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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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층의 말과 행동을 우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보는 젊은 사람들. 이것은 영화의 흐름을 위해 다소 극단적으로 그려졌을 수 있다. 또 실제로 노년층들의 말과 행동이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과 영화가 상통하는 점이 있다. 아무도 노인의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 것. 노년층이 가진 생각을 진정한 마음으로 물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고령화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젊은이들은 더 이상 노인을 공경하지 않고 그들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도태된 사람으로 폄하 받고 무시당하는 노인들. 그러나 과거 노인들은 지혜롭고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존재들이었다.

 

언제부터 이런 사회가 되어버린 걸까? 물론 젊은이들이 이유 없이 노년층과 대화하려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관습에 익숙해 새로운 사회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젊은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노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와 소통이 없다면 젊은이와 노인 사이의 크고 두꺼운 벽은 사라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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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민재는 소통한다. 나이 든 여성인 옥분과 정반대인 젊은 남성 민재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서로 진솔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가족 같은 사이가 된다.


서로의 다름을 핑계로 멀리하지 않고, 오히려 그 다름으로 인해 상호보완적 관계로 발전한 것이다. 옥분은 민재를 가족 같은 보살핌으로, 민재는 선생님처럼 옥분에게 지식을 나눔으로써 관계가 회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아이 캔 스피크>는 문제와 해결방안을 자연스럽게 내용에 녹여냈다.


여담으로 위에서 언급한 옥분이 영어학원 수업 시간에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고 소외당하는 것을 보고 아래 영상이 떠올랐다. 주어진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이 사회에 노년층이 자연스럽게 섞일 수 없었다는 점 때문에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반복되어선 안될 역사



성 노예가 얼마나 반인륜적인 행위인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피해자들에게는 평생 잊히지 않을 일이라는 것. 우리는 이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과 고통으로 인해 분노해왔고 진심 어린 사과를 바랐었다.

 

강제 성 노예, 강제 노역 등의 이미 말도 안 되는 고통을 겪은 피해자에게 가해국은 증거를 운운했고 '자원'했다는 거짓된 정보를 퍼뜨려 피해자들에게 더욱 고통을 주었다. 그래서 옥분은 더 피하고, 모른 체 살았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너무 아팠기 때문에. 참으라고, 숨기라고 하는 게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렇게 숨긴 상처는 곪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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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모든 일을 끄집어내고, 분노하면 머리가 아프다. 한 번이 아니라 수백 번, 수천 번 화내고 외쳐야 그것이 세상에 알려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화내지 않고 모르는 척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사과, 그리고 적절한 처벌. 이미 상처받은 피해자들에게 늦게라도 할 수 있는 위로는 그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화내고 소리쳐야 한다.

 

그래서 말할 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지금이 바로 옥분이 보여준 용기에 모두가 동참할 때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말하자.

 

"아이 캔 스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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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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