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실과 인류의 광대한 여정에 대하여 : 총보다 강한 실 [도서]

인류의 역사에는 항상 실이 함께 있었다.
글 입력 2020.03.2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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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천이 온몸을 감싸며,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도 수의가 얼굴을 덮는다.”



의식주. 육신 생활을 유지하는 데 가장 필요하고 떠날 수 없는 기본 요소들이다. 그 중, 의복은 우리가 날마다 걸치는 것으로 생활 문화의 중요한 한 단면이며, 한 민족의 의생활을 이해하는 것은 민족과 역사를 이해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의복을 구성하는 직물에 관한 연구는 허영을 위한 대상에 관한 연구라는 뿌리 깊은 편견으로 종종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직물에 관한 관심이 수면에 올라왔을 때 직물의 기원적인 부분보다는 외적인 그 자체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책 <총보다 강한 실> 저자 카시아 세인트클레어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복식사 공부를 한 내용을 바탕으로 직물연구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맞선다. 인류의 시작부터 산업의 발전, 불평등과 착취, 과학의 진보, 인간의 한계 도전의 자리엔 항상 ‘실’이 있었다. 도구의 재료로 역사를 바라보던 관점에서 벗어나 항상 우리의 곁에 있었던 실의 관점을 용인할 준비가 되었다면 이 책을 펼쳐 들어도 좋다. 내가 그랬듯, 어느새 당신은 곧 실과 인류의 광대한 여정에 빠져들 것이다.
 
실과 직물에 관해 총 13가지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가장 인상깊었던 비단과 레이온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비단길을 통과하는 사치품 속 멸망의 씨앗.


직물을 논하는 데 있어 중국의 비단을 논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중국 황제 헌원씨의 젊은 부인이었던 서릉씨가 궁전 안뜰 뽕나무 아래 차를 마시다 누에고치 하나가 찻잔으로 떨어뜨렸는데 단단한 크림색 덩어리 대신 비단실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타래를 이루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비단은 대개 지위를 구분지을 때 사용되었다. 공자가 편찬한 『예기』에 따르면 왕과 관리는 비단 색을 달리하여 신분을 구분하였으며 중국 황제들은 자신의 권위를 더욱 과시하기 위해 화려한 비단을 더욱 선호하였다. 7세기부터는 많은 노동력의 투입이 필요한 노란색 비단은 황제들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하였던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이다.
 
비단은 더 나아가 나라 간 화폐를 대신하였다. 상업적 이윤으로 시작했던 비단교역은 점점 상대 국가들을 내부적으로 혼란케 하는 멸망의 씨앗과도 같았다. 몽골 대초원 지배자였던 흉노족은 한족과 달리 거칠고 잔인했으며 무예가 뛰어난 이들이 많아 한족은 여간 고민이 아니었다. 골치 아픈 이웃과의 수백 년의 세력다툼은 둘 다 힘들게 했다. 어느 날 한족은 고민의 종지부를 찍게 해줄 비밀 무기를 접하게 되고 이는 ‘비단’이었다.
 
 
“중국의 무늬 없는 비단 1필을 흉노족에게 주면 금 몇 덩어리의 가치가 있는 물건들과 바꿀 수 있다. 그리하면 적의 자원이 감소한다. 노새, 당나귀, 낙타가 줄주링 국경선을 넘어들어온다.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며 껑충껑충 뛰는 얼룩무늬 말도 우리 손에 들어온다.” 104p
 
“흉노족의 강성한 힘은 음식과 옷이 한족의 음식이나 옷과 다르다는 데서 나옵니다. 지금부터 당신들이 한족의 비단옷을 얻을 때마다 그 옷을 입고 당신네 말에 오라 덤불과 풀숲 사이로 달려보십시오. 얼마 못 가 당신들의 옷과 각반은 갈기갈기 찢어질 겁니다.” 105p
 
 
비단의 매력에 대해서 중국만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실크로드’라고 불리는 무역로에서 비단의 수출은 전 세계 곳곳으로 이루어졌다. 비단은 허영심이 많은 로마인에게 부를 과시하기 좋은 물품이었다. 당시 로마의 국세 10퍼센트가량이 비단을 수입하는 데 사용될 정도로 로마인들의 과시욕은 비단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처럼, 그 시절 비단은 ‘유혹의 매개체’로 돈있는 자들의 허영심을 키우고 권위있는 자들의 지위를 더 공공히하였다. 하지만 허영심이란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던가. 비단은 점점 그들에게서 멸망의 씨앗을 싹틔웠다.
 
 
 
레이온의 어두운 과거

 

축복 같은 레이온의 탄생에는 어두운 과거가 있다. 레이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황화탄소’에 노출되어 신체적인 문제뿐 아니라 여러 정신질환을 겪었다. 이는 세계적인 문제였고 20세기 중반까지도 계속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노동자들의 피해에 대해 공장주와 관리자들은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했다.

    

 

“어느 날 한 여성 노동자가 기계 앞에서 격렬한 간질병 발작을 일으켰다. 입에는 거품이 부글부글 일었고 몸뚱이는 활처럼 휘어져 중앙 통로의 한쪽에서 반대쪽으로 튕겨 나갔다. 그러나 관리자들과 여자 교도관은 아주 재밌다는 반응이었다.” p294

 

 
전쟁 중에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 공장의 노동자들은 주 60시간씩 일하고 일요일에도 3번 중 2번은 12시간 교대로 일하였다. 온전히 쉬는 날이라고는 한 달에 한 번뿐이었다. 이들의 건강은 점점 악화하였고 공장의 꼭대기 층에서 땅으로 뛰어내리거나 자신들의 목구멍에 돌멩이를 쏘셔 넣는 등 정신질환이 나타나는 행동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옷을 구매하고 몇 주 또는 몇 달 만에 새로운 옷을 구매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쉽게 사고 버렸던 그 직물 뒤에는 이처럼 어두운 진실들이 숨겨져 있었다. 막대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이들을 위해 다양한 개선책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가장 먼저 변화되어야 할 것은 소비자다. 섬유 생산 현장에 일하게 될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일 하는 타인들을 위해 깊은 관심과 개선을 위한 고민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이다.
 
*
 
책 <총보다 강한 실>은 우리가 그동안 너무도 당연시 여겨졌던 ‘실’의 존재를 통해 새롭게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단순히 역사를 자세하게 풀어가는 나열식의 전개 방식이라기보다는 13가지의 이야로 나누어 편성해 지루하지 않다. 더불어 다소 생소한 용어에 대해선 독자들의 수고를 덜기 위해 책 뒤편에 용어해설집이 구성되어 있다.
  
태어남과 동시에 면으로 된 속싸개에 감싸졌던 우리에게 실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항상 같이 해온 실과 직물에 대해 우리는 너무 무관심해왔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안일한 인식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 볼 수 있었다. 당연시 여겨졌던 것들에 대하여 호기심을 갖고 끊임 없이 탐구하기를 바라면서 '실'로 새로이 우리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이 책을 새로운 책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총보다 강한 실
-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


지은이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옮긴이 : 안진이

출판사 : 윌북

분야
역사 / 세계사

규격
145*220mm

쪽 수 : 440쪽

발행일
2020년 02월 10일

정가 : 17,800원

ISBN
979-11-5581-258-7 (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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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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