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냥 옷이 아니에요 - 총보다 강한 실

실은 어떻게 역사를 만들었는가
글 입력 2020.03.2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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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인류의 역사는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와 같이 도구의 재료를 통해 구분된다.


진화생물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를 통해서 민족과 문명 발달 이룩의 과정을 총기와 병균과 금속을 통한 발전사로 분석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경우 인간이 인지혁명, 농업혁명을 거쳐 현재의 과학혁명에 이르기까지 역사 발전 과정의 요인으로 불, 뒷담화, 농업, 신화, 돈, 모순, 과학을 주장하기도 했다.

 

『총보다 강한 실』은 인류 역사에 대한 주류적인 입장과는 사뭇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저자는 청동기, 철기로 구분되기 이전부터 우리 인간과 함께 했던 오랜 인류의 유산인 '실'을 통해 역사를 바라본다.


일상 속에서 가장 익숙한 존재임과 동시에 그만큼 잘 알고 있지 못하는 '실'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직물이 인류 발달 역사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 논한다. 태어난 직후 아이의 몸을 감싸는 천으로 시작해 죽음을 맞이하는 수의까지, 실이 인간 생애 전반과 함께 하는 것임을 떠올린다면 우리의 역사를 색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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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직물과 인류사에 대한 13가지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동굴 속에서 발견된 섬유를 시작으로 고대 이집트 문명의 방직 역사, 중국의 비단과 실크로드, 유럽 왕족의 사치스러운 의복 생활, 의류 산업에 희생되었던 강제 노예들과 가난한 여성들의 이야기, 합성섬유와 현대 의복 기술까지. 기존의 역사적 논의에서는 조명되지 않았던 스토리들을 실과 관련시켜 상당히 구체적이고 방대한 영역에 걸쳐 서술한다.


저자는 실이 만들어낸 인류 역사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언어와 전설, 기술과 사회적 관계 등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은 실들로 촘촘히 엮여 있다."


하지만 희생이 없는 성공은 없기 때문일까. 직물 산업 발달과 기술의 진보에는 필연적으로 불평등과 착취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의복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와 시대적 사례를 통해서 현상 뒤에 감춰진 아픔과 희생의 이야기들까지 살펴볼 수 있다.


원제가 '황금빛 실 (The Golden Thread)'인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화려하고 거대한 의복 역사와 함께 그 이면에 담긴 소수자들의 이야기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더불어 '지금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왜 입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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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feelslikefilm

 

 

전통적 천연 직물들이 산업혁명을 거쳐 싸고 실용적인 합성섬유로 대체되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엄청난 편의를 누리고 있다.


다양한 의복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맘껏 표현하기 쉬워졌지만 아쉽게도 그 옷들이 어떤 것으로 만들어지고, 어떠한 방식으로 생산되는지에 대해 알기가 어렵게 되어버렸다. 우리가 날마다 입고 사용하는 직물들에 대해서 현대의 소비자들은 무지할 수밖에 없다. 현 자본주의 상황에서는 특히 사람들이 거대 의류 산업의 프로파간다에 취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려내는 13가지 이야기 중 10장의 <공장의 노동자들 : 레이온의 어두운 과거>를 읽다 보면 현대 직물 생태계에 대한 민낯이 드러나 불편한 마음이 든다. 저자는 여러 장에 걸쳐 의복 발전사 이면에 존재한 여러 희생들, 대표적으로 흑인 강제 노역, 계급 차별, 인종 착취 등과 관한 문제적 사례를 언급한다.


이와 더불어 현대 의복 산업에서 지속되고 있는 사태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현대의 패스트 패션이 그 문제의 중심에 있다. 직물 노동자들의 고충과 열약한 노동환경 같은 것들은 소비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평범한 사람의 상태란 날마다 자기 피부에 닿는 직물의 생산공정에 대해 거의 무지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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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ys

 

 

16세기 최초의 합성섬유였던 레이온은 공장 대형화와 함께 의류 산업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목재 펄프에 존재하는 셀룰로오스를 섬유로 바꾸는 방법으로 이를 위해서는 산도 ph가 매우 높은 가성소다로 처리해야 한다.


화학물질로 인한 의학적 위험이 문제가 되었지만 결과물에 비해 값이 싸고 편리해서 소비자들의 욕구가 높았다. 생산 초반부터 고도의 기계화로 인해 공장, 도시 노동자들과 초국적 기업들과 연관되어 산업이 더욱 빠른 속도로 확장되었다.

 

이황화탄소가 산업에 활용되면서 공장 노동자들에게는 이에 대한 부작용이 뚜렷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주로 정신 착란 현상을 일으키고 어지럼증, 구토 증상 등이 눈에 띄게 두드러졌는데 아주 짧은 시간의 노출에도 불구하고 신체에 악영향을 끼치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학 물질 중독 증상이 의류 산업 발달 초기에 드러난 직업병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이는 세계적인 문제였고 아직까지도 그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레이온 고장 노동자들은 가난하고 학력이 낮았기 때문에 일자리를 유지해야 하는 절박함 속에서 건강을 희생시키더라도 일을 계속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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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원진 레이온 사태 ©한겨레

 

 

오늘날의 패스트 패션 산업은 과거의 희생을 계속해서 되풀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자라, H&M, 유니클로와 같은 대형 브랜드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면서 현재 합성섬유 시장 점유율은 세계 섬유 시장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합성섬유를 생산하는 공정은 심각한 환경 오염 문제와 열악한 노동자 인권과 관련되어 있기에 무시할 수 없다. 환경 측면에서 볼 때, 폴리에스테르 의류는 사실상 플라스틱과 같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생산 과정 중 발생한 폐기물을 공장에서 불법적으로 방류하는 상황들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대형 패션 브랜드 공정은 보통 인도네시아나 방글라데시, 중국에서 이뤄지는데 이들은 임금이 낮고 노동 환경이 나쁜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5년 방글라데시의 공장 붕괴 사고가 이를 대표하는 사건이다. 시장의 빠른 회전 속도와 값싼 가격 때문에 의류 업체들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환경에 더 쉽게 이끌릴 수밖에 없다.


여전히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막대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여성 공장 노동자들 중 생활임금을 버는 수준이 2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가 패스트 패션과 대형 프랜차이즈 패션을 많이 소비하는 만큼, 공장 노동 인권 착취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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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Rana plaza 붕괴 사건 ©Flickr

 

 

직물 산업의 폭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의류에 대해 디자인과 패션의 영역만 떠올리게 된다. 이는 사람들이 옷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반영하는 현상일 것이다.


직물의 최종적 외형인 상품과 외관적인 매력에 대해서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직물의 원재료와 생산 과정, 역사와 기원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생산되는 직물이 단 며칠 만에 소비되고 버려지며 이 모든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현상에 대해 반성적 태도를 갖게 된다.

 

만약 직물과 천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상당히 제한적인 환경에 갇혀서 생활해야 했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실의 영향력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쩌면 인류가 만들어낸 실이지만 실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이 더 클 것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물질과 문화에 대해서 사소한 관심을 갖자고 말한다. 개인이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문화를 소비하기 시작할 때가 거대한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총보다 강한 실
-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


지은이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옮긴이 : 안진이

출판사 : 윌북

분야
역사 / 세계사

규격
145*220mm

쪽 수 : 440쪽

발행일
2020년 02월 10일

정가 : 17,800원

ISBN
979-11-5581-258-7 (03900)





저역자 소개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Kassia St Clair)
 
기자, 작가. 2007년 브리스톨 대학교를 졸업하고, 옥스퍼드에서 18세기 여성 복식사와 무도회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책과 미술' 담당 편집자로 일했다. 그의 첫 책 『컬러의 말』은 12여 개국에 번역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두 번째 책 『총보다 강한 실』에서 그는 그동안 다뤄진 적 없었던 '실의 역사'에 주목한다.
 
이 책은 그의 저널리스트적 집요함과 연구자로서의 전문성이 더해진, 감각적인 필치의 역사서이다. 발간 후 영국 BBC의 Radio 4에서 이 주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영국 《선데이 타임스》 올해의 책, 서머싯 몸 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댈러스 미술관,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소호하우스 같은 국제 행사장에서 색과 직물, 실의 역사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안진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혼의 순례자 반 고흐』, 『헤르만 헤르츠버거의 건축 수업』, 『타임 푸어』, 『마음가면』, 『포스트자본주의: 새로운 시작』,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컬러의 힘: 내 삶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언어』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김지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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