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성들의 삶에 정답은 없다 : 작은아씨들 [영화]

각자의 선택만이 있을 뿐
글 입력 2020.03.23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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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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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정답’이 있을까. 최근까지도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에 취직해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떡두꺼비 같은 아이를 낳아 잘 기르는 것‘이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행복한 삶의 공식이다. 이 루트를 타면 비로소 행복한 삶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이 사회 기저에 깔려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단순히 사람의 삶을 공식에 대입해 결과를 산출해내기에는 얼마나 변수들이 많았던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0년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여성의 인생에서 행복이란 ’배우가 되거나 가문 있는 부잣집에 시집가는 것‘이 하나의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그 시절, 편견을 깨고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네 자매가 이야기를 담은 영화 <작은 아씨들>. 미국의 작가 올컷(Louisa May Alcott)의 장편소설이 원작이며 1933년 조지 큐 커 감독을 시작으로 머빈 트로이, 질리언 암스트롱 그리고 그레타거윅 감독이 작은 아씨들을 영화로 각색하였다. 오늘은 북미에서는 2019년, 한국에서는 2020년에 개봉한 거윅감독의 <작은 아씨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여성들의 인생에 정답은 없다. 각자의 선택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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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은 아씨들>은 조 마치를 중심으로 네 자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각자 개성도 성격도 가치관도 다른 네 자매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사회적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메그와 에이미는 돈보다는 사랑을, 조는 자신의 커리어를 선택했다.


* 셋째였던 베스는 가난한 아이들을 돕다가 전염병을 옮아 일찍 생을 마감한다. 그 후의 그녀의 인생을 가늠 할 수 없지만, 만약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그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는 인권운동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네 자매 중 가장 적나라하게 기성세대의 가치관과의 내면적인 갈등을 겪은 것 같아 보이는 것은 조와 에이미였다. 물론 다른 자매들 또한 많은 갈등을 겪었을 터이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권하는 이미지가 암묵적으로 규정되어있던 시절, 조와 에이미는 남성들만의 권유물이었던 야망을 지닌 여성이었다. 사회가 바라는 여성의 모습과 자신의 삶과의 괴리 속에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조와 에이미의 모습이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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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마치. 어릴 적부터 워낙 여성스러움(참고로 나는 이 단어가 자아내는 한정적인 여성상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지녔다.) 과는 다소 거리가 먼, 다소곳하기보다는 머리를 헝클이며 이곳저곳 뛰어다니고 자신의 주장을 가감 없이 펼치던 소녀이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독립적이고 당찬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전해오는 압박에 심히 고통을 받는다.
 


"사랑이 여자의 전부라는 말, 지긋지긋해요. 여자도 야심과 꿈이 있다고요. 그렇지만... 사랑없이 사는 건 너무 외로워요."


 
사랑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여성에게 사랑이 전부라는 뻔한 클리셰는 참으로 지긋지긋하다. 남성에게 자신의 삶을 맡기고 싶지 않았던 조는 비혼을 결심하고 글쓰기에 몰두하였지만 우리는 인간이지 않은가. 갑자기 찾아오는 외로움과 비혼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동정의 시선들. 무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른 살 이상의 여성은 노처녀로 분류되며 '어딘가 모자라 결혼을 못하는'이미지로 구축되어 있었다.

2020년인 지금까지도 조언을 가장한 알맹이 없는 충고로 비혼인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도 참 많은데 1800년대의 그녀는 어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시대의 클리셰와 맞서 싸웠다. 결국 그녀는 작가가 되었고 그녀의 자매들의 이야기를 담은 저서 <작은 아씨들>을 출판해 이렇게 많은 여성들에게 용기가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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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보게 된 인물이 아닐까. 한 성격하기 때문에 언니들의 속을 꽤나 썩였던 에이미. 특히 조와 에이미의 다툼을 볼 때면 주변에 있는 여느 자매들이 생각난다. 다소 직설적이고 감정적인 에이미의 모습은 딱 욕먹기 좋은 포지션에 위치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에이미는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가족의 안정을 위해 가장 희생하려고 했던 존재였다.
 
세계 최고의 화가가 되겠다는 에이미는 대고모와 함께 유럽으로 넘어가 미술 공부를 했지만 여성의 좁은 입지와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그 시절, 자신이 화가로서 성공할 수 없다는 현실에 마주하고 만다. 그리고 에이미는 사회의 암묵적인 룰을 따르고자 했다. 바로 부잣집 남성에게 시집가는 것. 그것이 곧 부모에 대한 효도이자 사회가 그려 놓은 행복한 여성의 초상화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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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이 아니라 그저 여자일 뿐이야. 여성으로서 나는 나만의 돈을 벌길이 없어. 생계를 유지하거나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이 안돼. 그럴리 없겠지만 설사 나만의 돈이 있더라도 결혼하는 순간 그 돈은 남편의 것이 되고 아이를 낳는다면 그건 내 아이가 아니고 남편의 아이가 돼. 남편의 소유물이 될 거야. 그러니 거기 앉아서 결혼이 경제적 제안이 아니라는 말을 하지 마. 왜냐면 그게 사실이고, 너(로리)한텐 아닐 수 있어도, 나(에이미)에게는 확실히 그러니까"

 
에이미의 내적 갈등이 드러났던 대사이다. 18세기 여성이 부자가 되기 위해선 ’부자인 남성과 결혼하거나 배우로 성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집안에 돈을 벌 수 있는 남성이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자매들도 힘겨운 상황에서 에이미는 자신이 희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꿈과 사랑을 포기하려 마음을 다잡지만, 이제 막 20대가 된 에이미에게 모든 걸 포기하고 사회의 질서에 편입하는 것은 참 고통스러운 일이다.
 
결국 그녀는 고민의 밤들을 지새고 자신에게 프러포즈를 한 남성에게 거절의 의사를 건네게 되고 그녀는 그 이후 죄책감에 눈물을 흘리고 만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곁에는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던 로리가 곁에 있었고 로리는 그녀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결론적으로 그녀 또한 자신이 사랑하던 남성과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그녀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나갔다. 비록 그 후의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그녀들은 분명 사회와의 투쟁에서 승리를 거머줬을 것이라 믿는다. 그녀들의 천성은 어떤 누구도 억누르기엔 너무 고결하고 드높기에, 어떠한 시련도 그녀들이 가는 길을 막을 순 없다.
 

 


사사로운 것으로 여겨지던 여성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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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로

여자 주인공을 결혼시키시오,

아님 죽이거나”


 
다른 이들은 영화를 보며 에이미와 로리의 관계에 격분을 했다는 후기글을 많이 봤다. 하지만 내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화났던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다. 여성의 이야기를 어떠한 바운더리 내로 규정해버리고, 그저 사사로운 것으로 여겨버리는 출판사 사장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이 인물이 19세기 미국의 보수적이며 남녀 불평등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무려 미국에서 여성의 참정권은 1920년이 돼서야 인정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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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누가 봐줄까?”

        

“중요하지 않은게 아니라
아무도 안쓰니까 그렇게 보이는거야.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


 
여성의 이야기. 유년시절 우리가 보고 자라온 동화의 여자 주인공은 자신을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는 남성과의 결혼으로 해피엔딩을 맞았다. 그렇다. 여성에게 ’해피엔딩‘이란 백마 탄 왕자님과의 결혼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시기가 있었다. 여성의 성장과 커리어를 담은 이야기는 대개 교과서에조차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그저 여성의 삶이란 존경할만한 남성에게 존속되는 것. 그것이 팽배하게 받아들여졌을 때가 있었다. 그 시절 그 누가 마치 가문 네 자매의 성장기가 약 160년 동안 영화, 드라마 뮤지컬, 오페라, 만화, 인형 등 문화 전반을 아우러 광범위하게 재생산 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될 줄 알았을까. 사사로운 것으로 치부되어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사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였음을 우리 모두가 이제는 깨달아야 할 때이다.
 
여성들의 삶에 정답은 없다. 인간이 세상에 처음 존재하게 된 그 순간에도 여성에게 주어진 운명이란 없다. 그저 자신의 꿈과 자신의 선택을 믿는 것,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도 나와 같은 자매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발걸음을 다시 옮기면 되는 것이다.
 
2020년이 된 지금, 우리는 여성의 행복 공식 타개를 위해 오늘도 나름의 방식대로 고군분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먼저 용기를 내주었던 여성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더욱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준 그녀들에게 존경과 감사함을 전하고싶다.
 
 
[박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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