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가야하는 길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 다양한 생각이 가득한 세상, 우리는 어떤 것을 봐야 하는가.
글 입력 2020.03.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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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상상에 관람객의 상상이 더해지는 그 시점. 작품은 완성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을 기억한다. 주인공 ‘라일리’가 조금씩 성장하자, 그녀의 어린 시절 상상 속 친구인 ‘빙봉’이 그녀의 세상에서 떠났다. 우리는 성장하며 많은 것을 본다. 그렇지만 더 많은 것을 잃고, 잊고, 놓친 채 살아간다. 무한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던 그 시절 어떤 것이든 꿈과 상상으로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현실에 맞는 꿈을 꾸고, 상상이 아닌 현실을 바라본다. 상상하는 방법조차 잃어버린 채 말이다.


 

빙봉 고화질.jpeg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상상하는 방법을 잊지 않는 이들이다. 그들은 더 많이 꿈꾸는 방법을 알고, 우리에게 꿈꾸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미 커버린 사람들에게는 상상하는 방법을 다시 알려주고, 어린아이에게는 그렇게 상상하며 사는 것이 틀린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볼로냐 일러스트의 입구에선 볼로냐가 어떤 곳인지 보여준다. 회랑의 도시, 부자의 도시, 현자의 도시 등 다양한 별명을 가진 이곳. 다양한 이름을 가진 것처럼 볼로냐 일러스트에서 보여주는 그림과 내용 또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Vendi Vernic


 

ⓒ Vendi Vernic.jpg

 

 

처음으로 만났던 작품은 2018년 볼로냐 일러스트에서 우승한 Vendi Vernic의 작품이었다. 그녀는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녀가 그리는 그림의 결말이 자연으로 향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볼로냐 일러스트의 중간중간 작가들의 인터뷰가 있다. 그 인터뷰에서 그녀는 소재를 한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전할 수 있는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사용해서 그림을 그린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예술이란 장벽을 허문다. 도화지 속 수채화 물감으로만 된 것만이 미술을 의미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만난 작가의 작품은 곧 볼로냐 일러스트를 대변한다. 그리고 그녀의 그림은 앞으로 이번 전시회에서 보여줄 그림들을 기대하게 한다. 미술이란 강박에서 벗어나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지 말이다.

 


 

Once upon a time


 

첫 주제는 ‘Once upon a time.’이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옛날 옛적’이런 느낌이다. 주제와 함께 각 나라의 전래동화 속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현대적인 시각에서 전달하고자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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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 눈에 들어온 작품은 얀베이직의 작품이었다. 화가는 구불구불한 미로를 그렸다. 그리고 그 미로 속의 동화의 일부가 있다. 동화 속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모를 이들에게는 그 미로를 따라서 자신의 이야기를 더한다. 초반에는 이 미로를 출어보고자 했다. 출구가 명확히 명시되어있는 작품은 아니다. 그렇지만 미로가 있고, 미로는 풀어야 한다고 배웠기에 그 앞에서 그림이 아닌 미로를 따라갔다. 그러다가 포기해버렸다.


어쩌면 작가는 미로를 풀지 않고 그림을 보는 이들이 그림 속 환상의 나라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희망한 것은 아닐까. 미로 속에서 갇혀 자신이 원하는 모든 상상을 펼쳐보라고 말이다.

 


 

Imagine


 

상상해보자. 볼로냐 일러스트 벽면의 글귀에 일러스트의 자질은 기술을 넘어 표현과 상상력이라도 쓰여있다. 볼로냐 일러스트의 심사 기준이란 그 ‘상상력’이란 것은 작가에게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닌 이곳에 온 사람들에게 다시 향한다. 그림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곳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객관식이 있는 답이 아닌 서술형의 답으로 백 점이란 없는 시험지에 우리의 생각을 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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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로우 배시의 작품들은 모두 외계인이 있었다. 작가는 그림 속의 외계인이 현대인을 의미한다고 한다. 초반 설명을 보지 않고 본 그 그림은 인상을 쓰게 된다. 하지만 그 외계인이 나라는 것을 알게 되니 그 외계인을 사랑하게 된다. 현대인을 그린 것이면 현대인인 나라도 그 외계인을 좋게 봐주고 싶었다.


전시회를 보고 집에 가는 길은 우연히도 퇴근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다같이 침묵 게임이라도 하듯, 한 없이 핸드폰만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소리라도 내면 누가 죽이러 오는 듯이. 그림만큼이나 차가운 현실 앞에서 작가의 그림에 색이 없음을 보면서, 다시는 변화할 수 없다는 낙담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은 친구들


 

우리는 동물과 참 가깝게 살아간다. 어릴 때는 안경을 쓴 뽀로로가, 지금은 너무나 큰 자이언트 펭수가. 예전에는 말하는 공룡인 둘리가. 말하는 니모. 우리의 사물엔 하나씩 동물 이미지의 무언가가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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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은 우리의 친구. 둥글한 얼굴, 둥글한 몸, 곰 세 마리 노래 이후, 사람들이 좋아하는 1등 동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영화 ‘레버넌트’를 보고 난 이후,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그런 곰을 무서워하는 나에게도, 노에미 블라 작가의 곰은 친근하게 다가왔다.


누군가는 곰을 가방 속에 누군간 홀에 그 곰을 넣어버린다. 누군가의 다리에 곰이 매달려있다. 그 곰은 개개인의 사연, 슬픔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곰을 쫓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작가도 이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작품의 이름은 ‘곰은 절대 떠나지 않아요’다.


우리는 크고 작은 일들과 마주한다. 곰과 완전히 헤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외면하지 않고, 그 곰을 즉시 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그 곰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자연


 

자연의 일부인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면서 살아간다. 그 어떤 것들보다 빠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다른 동물들은 먹이 사슬이란 굴레 속에서 결국은 삶과 생이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인간은 그 먹이 사슬의 최고 위치 속에 있다고 착각하지만 아예 먹이 사슬 속에 속해있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자연과 공생해야 한다. 앞에서 보았던 작은 친구들이 어린이에게는 전래 동화 속 만날 수 없는 생명체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을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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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 자바들라프’ 작가의 그림 속에는 귀뚜라미가 존재한다. 귀뚜라미가 울던 시대를 지나 귀뚜라미는 울지 않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림 속의 귀뚜라미는 슬픔을 떨쳐버리기 위해 숲 속 동물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귀뚜라미가 슬픈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 아이는 울고 있을까. 목탄으로 그린 이 그림은 목탄의 특성상 선이 두껍고, 강하다. 그러면서도 목탄에서 퍼져나가는 희미한 가루들은 귀뚜라미의 공간에 생명력을 더한다. 그 공간이 더 고독하게 더 조용하게. 귀뚜라미의 슬픔이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인간 때문은 아니기를.


그 슬픔의 울음소리라도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다시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전시의 마지막 챕터는 삶이다. 어쩌면 앞에 있던 챕터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옛날 옛적에 동물들과 자연 속에서 상상했던 삶을 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기에 유독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거나 혹은 혼자 있는 그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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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전시회의 분위기에 맞춰서, 조용히 관람 중이었던 내가 유독 크데 웃어버린 그림이 있다. 앙투안 코르비누의 작품이다. 작가의 작품은 TV 시리즈 왕좌의 게임, 워킹 데드 등에서 나오는 장면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담았다. 그 작품을 보면서 웃었던 이유는 공존이기 때문이다.


예술과 예술이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동화책은 글과 그림이 하나 되어 있다. 그리 없는 동화책은 그림책이고, 그림 없는 동화책은 그저 글귀, 책이다. 결국 동화책은 그림과 그림이 하나 되어 나타난다. 앙투안 코르비누의 작품은 그림과 TV매체가 하나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TV 속의 이야기를 찾는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던 이들은 그림 속에 상상을 더하고, 드라마를 본 이는 그 그림 속으로 자신의 추억을 다시 되새긴다. 꾸밈없는 우리의 삶, 그리고 우리가 보는 것들을 그린 그의 그림. 우리가 보는 우리의 것을 작품으로 다시 재창조한다.

 

 

“옛날 옛적에 동물들과 자연 속에서 사는 삶을 상상했다.”



우리는 이제 전래 동화를 보면서 그 주인공이 내가 되지 않는다. 동물들과 대화하지 않고, 자연을 파괴만 하고 있다. 상상이 아닌 현실을 보고, 그저 하루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볼로냐 일러스트를 보며 상상하는 것은 자유라는 것을 느낀다.


2019 볼로냐 일러스트는 우리의 삶을 보여준다. 우리는 어두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핸드폰만을 보는 세상. 각자의 곰(우울함)이 있는 세상, 귀뚜라미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세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과 마주하여 다시 긍정의 상상을 펼치면, 우리는 다시 밝은 세상을 보지 않을까.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2020년 2월 6일부터 2020년 4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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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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