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연히 어떤 날에, 우리 - 라라랜드, 2016 [영화]

글 입력 2020.03.2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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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의 강력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라라랜드

La La Land, 2016

 

감독 : 데이미언 셔젤

배우 : 라이언 고슬링, 엠마 스톤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성공을 꿈꾸는 ‘세바스찬’과 배우 지망생 ‘미아’는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꿈결 같은 시간도 잠시, 버겁기만 한 현실의 벽 앞에서 두 사람의 목표는 자꾸만 흔들린다. 결국 오랫동안 준비했던 ‘1인 극’의 실패로 미아는 LA를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도망치고, 세바스찬은 그런 그녀를 찾아가 마지막으로 오디션을 볼 것을 권유한다. 한편 처음과 달리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들의 사랑에 세바스찬과 미아는 혼란스러워하는데....... 우리 정말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이건 그들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 마지막, 그 후의 이야기.

우연히 어떤 날에, 우리는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헤어졌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한 5년쯤?

 

그리고 우연히 어떤 날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진즉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잊어버릴 때가 더 많았던 사실을 상기한다. 당신은 아름답다. 그런 당신을 만나 나는 열과 성을 다해 당신을 사랑했더랬다. 여전히 아름다운 당신. 당신은 나를 아직 기억하고 있을까.

 

아.

당신도 나를 알아보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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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오. 얼마나 많은 계절이 흐른 건지 모르겠소. 다시 보니 이리 반갑소. 옆에 있는 그 사람은 남편인가? 당신이 결혼을 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혹시 아이는 있나? 아, 미안하오. 그냥 궁금한 게 많았을 뿐이오.

 

저번에 나온 영화는 잘 봤소. 내가 말하지 않았소. 당신은 정말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이번에 나온다는 신작 역시 기대 중이오. 나 말이오? 보시다시피 이렇게 클럽을 차렸다오. 다행히 반응은 좋소. 당신에겐 여러모로 신세 진 게 참 많소. 'SEB's'라는 이름,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마음에 드오. 만약 이름이 ‘치킨 온 어 스틱’이었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구려. 설마 상표권이라도 주장할 생각은 아니겠지. (웃고) 미안하오. 농담이오. 괜히 마음이 들뜨다 보니....... 걱정 마시오. 당신이라면 그깟 상표권쯤이야. 그러고 보니 마실 것은 시켰소? 아니라면 내가 한 잔 추천해 주고 싶다만. 아, 벌써 마시고 있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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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난 이사를 했소. 가게에서 그리 멀지는 않소. 차로 한 10분쯤? 우리가 함께 살았던 그 집은... 처분했소. 여러모로 바쁘기도 했고 무엇보다 혼자 살기엔 좀 넓었다고나 할까. 뭐 사실 지금 집이랑 비교하면 별로 큰 것 같지도 않다만........ 저번 주말엔 오랜만에 영화를 보았소. 기억하시오? 리알토의 그 극장은 아무래도 문을 닫은 것 같소. 어쩔 수 없었을 테지. 시간이 많이 흘렀잖소. 아마도 다른 이름으로 재오픈을 하려는 것 같던데. 혹시 아시오. 애들을 위한 무대로 바뀌었을지도.


세월은 흘렀지만 우리처럼 무대를 원하는 이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니. 다행히도 우리가 함께 다녀간 그 천문대는 멀쩡하오. 아, 그런 건 당신도 이미 알고 있으려나. 그냥 혹시나 해서....... 당신은 해외를 자주 다녀야 하니깐. 가끔 심심할 때면 한 번씩 거길 가보곤 한다오. 별을 보기엔 그만한 장소가 또 없지 않소. 노래가 생각나는군. City of stars, Are you shining just for me. City o....... 미안하오. 자꾸 옛날 일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감상적이게 되는군. 불편했다면 정말 미안하오.

 

음, 그러니까 사과하고 싶었소. 당신이 한 말이 종종 떠오른다오. 언제까지나 나만을 사랑하겠노라, 당신은 그렇게 말했었지. 어쩌면 당신과 나는 그 천문대에서 우리의 미래를 예감했는지도 모르지. 당신이 파리로 떠난 후에 말이야....... 변명을 하고 싶은 건 아니오.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다른 여자가 생겼던 건 아니오. 믿진 않겠지만 당신 이후에 아직은 아무도 만나고 있지 않으니.


다만....... 그냥 내 문제였소. 우리가 처음에 만났을 땐 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했었소. 그때 우린 너무 힘들었고, 우릴 위로해 줄 사람이 필요했었으니깐. 모두가 아니라 해도 나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 줄 사람. 어쩌면 우린 서로에게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그게 사랑이 아니었다는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그런 예감이 들었소. 이제 더 이상 서로가 필요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아니 그것보단 이젠 서로가 서로에게 오히려 부담스럽다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잖소. 어떻게 잡은 기회를....... 그러기엔 우리 둘 다 너무 와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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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오. 당신이 파리에서 느꼈을 외로움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는, 나도 힘들었다는 변명으로는 용서받지 못하겠지. 하지만 알아주시오. 마지막 통화를 마치고 나 역시 당신과 함께 한참을 울었다는 것을. 당신이 느낀 외로움은 내 것이기도 했다는 것을. 내겐 자격이 없었으니까. 오늘처럼 당신이 내게 다가와 주기 전까지는.

 

왜 말이 없소. 울지 마시오. 내가 괜한 이야기를 했나 보군. 아무래도 난 이번에도 이기적이었나 보오. 당신을 울리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만약에 말이오. 아주 만약에 말이오. 그러니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당신을 따라 파리로 갔다면, 아니 그 이전에 당신을 처음 만난 그 바에서 내가 먼저 술 한 잔을 청했다면, 그렇게 오로지 당신만을 선택하며 살았더라면 지금 우리는 좀 많이 달라지지 않았겠소?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여전히 함께 하고 있지 않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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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소.

 

그런 표정 짓지 마오. 그냥... 잠깐 생각해봤을 뿐이오. 우리에게도 다른 결말이란 게 있었을지도 모르니깐.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바에 들어가 당신과 당신의 남편처럼 함께 음악을 들으며 앉아 있었겠지. 하지만 이미 우리는 알고 있지 않소. 그것이 우리가 바라 온 진정한 미래는 아니라는걸. 당신도 내가 포기하는 것은 원치 않았을 테니. 걱정 마시오. 나 역시 쿨하게 이곳에서 한가로이 음악이나 듣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오. 우리에겐 서로 바라 온 꿈이 있었잖소. 나에겐 이 클럽이, 당신에겐 배우가 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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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만하면 괜찮은 결말이오. 그래도 우리 잘 해내지 않았소? (그녀가 웃는다) 고맙소. 당신은 당신의 삶을 이어나가길. 나는 나의 삶을 꾸려 나갈 테니.

 

언제 한 번 아이도 데리고 오시오. 내 특별히 코카콜라도 준비해놓으리다. 가게는 걱정은 마시오. 내, 그날을 위해서라면 하루쯤은 쉬어도 상관없으니. 음악이 필요하다면 연주까지 해드리리다. 아이가 요새 어떤 노래를 좋아하오? 혹시 Chick Corea? 농담이오. 내가 말하지 않았소. 우리가 원하는 음악은 무엇이든 연주할 수 있는바, 그것이 내 꿈이라고. 재즈만 되는 거 아니었냐고? 뭐, 모든 일에는 항상 예외라는 게 잊지 않겠소?

 

자꾸 말이 길어져서 미안하오. 잘 가시오. 행복하길 바라겠소. 나 역시 그럴 테니.

 

그럼 미아, 안녕히.

 


[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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