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창문을 열어 우리가 직면하는 바깥을 본다 [도서]

단편 소설로 동시대 보기. 「외진 곳」, 「우리[畜舍]의 환대」, 「가리는 손」
글 입력 2020.03.1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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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문예지에 발표되는 단편 소설들은 당대의 이야기를 담는다. 소설로 동시대를 확인하는 일은 즐겁다. 나와 가까워서 크게 공감이 되는 이야기들. 이야기 속에서 멀어 보이지만 나와 맞닿아있는 부분 찾기. 소설로 만나면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도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나는 수많은 단편 소설들을 읽다 보면 자주 별게 다 감동적이고 별게 다 사무친다.


동시대를 묘사한 소설 세 개를 준비했다. 2019년에 발표한 최근의 작품도 있고 몇 년 전의 작품도 있다. 어떤 소설로 모아볼까 고민을 오래 하다가 현실을 강렬하게 담고 있거나 신선한 느낌을 받았던 소설들로 골라봤다.


2019년 이효석 문학상을 받은 장은진의 「외진 곳」은 세상의 중심부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너무 연민하지 않으며 부드럽게 그려낸다. 장희원의 「우리[畜舍]의 환대」는 자신의 방향을 직접 찾고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김애란의 「가리는 손」은 우리가 직면하는 당대의 혐오를 강렬하면서 약간은 서늘하게 잡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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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진, 「외진 곳」


 

밀리고 밀려 가난과 불편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네모집’까지 도착한 자매는 이 집에서는 단지 잠깐 머물 것으로 생각한다. 집이지만 보금자리로 느껴지지 않는 이곳에서, 주인공 자매를 포함한 아홉 집이 각자의 갈등을 감내하면서 살고 있다.


이야기는 자매가 ‘네모집’으로 이사 온 첫날부터 시작한다. 창호지로 된 방문, 바깥에 있는 공용 화장실 등 지금껏 보지 못했고 살아본 적도 없는 낡고 작은 집. 3번 방 여자를 제외하고는 서로 부딪히거나 말을 나누지 않는 아홉 개의 방들. 주인공은 가끔 하늘이 어두워지고 화장실에 가는 길이면 각 방에 켜진 노란 불들을 세어본다. 아홉 개의 모든 방에 노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으면, 주인공은 어쩐지 마음이 따스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시간은 크리스마스이브로 흘러간다. 자매는 작은 방에서 초를 켜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낸다. 그 순간 어디선가 찾아온 성가대가 고요한 캐럴을 불러준다. 중심가보다 빛이 현저히 적으며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고 거친 이곳에도, 크리스마스는 왔다.

 

크리스마스가 오고 3번 방 여자의 전 애인도 찾아왔다. 3번 방 여자는 자매의 도움으로 폭력에서 가까스로 벗어나고 빠르게 네모집을 떠났다. 아마 크리스마스도 오지 않는 더 외진 곳으로. 주인공의 동생도 일본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와중에 주인공이 일하던 어린이집은 아동 폭력으로 운영이 정지되고 폐쇄 절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도 이야기는 희망을 주면서 끝난다. 자주 마주치지만, 인사는 하지 않던 5번 방 남자의 따뜻한 관심이 어려 있는 한 마디. 그리고 켜지는 노란 방 불. 어쩐지 주인공은 현재 상황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각자의 방에서 고요하게 감내하며 사는 네모집의 사람들과 마음으로 연대하면서 말이다.


“어쩌다 우리가 여기까지 왔을까.”


세상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상황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이 뭉쳐있다. 너무 집약적인 느낌은 있지만, 균형을 잃지 않고 이야기는 끝까지 진행된다. 누군가는 폭력의 상황에 있고, 취업은 어려우며 ‘갑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준비하는 시험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진 않아도 연대한다. 잔잔하게, 너무 연민하지 않으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것이 이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지 않을까. 너무 감성적이지 않게 외진 곳의 사람들을 그려내면서 그들을 기억하고 어루만져준다.

 



장희원, 「우리(畜舍)의 환대」


 

「외진 곳」 주인공의 동생이 꿈을 향해 유학을 선택한 것처럼, 한국을 떠나 자신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울타리를 떠나 낯선 세계로, 더 나은 자신을 위해 떠나는 사람들. 「우리[畜舍]의 환대」 속 주인공 재현은 캐나다에서 생활하는 아들 영재를 만난 후 깨닫는다. 영재는 이제 자신이 좁힐 수 없는 어떤 경계선을 넘어버렸음을, 재현은 들어갈 수 없는 영재의 새로운 ‘우리’가 만들어졌음을.


영재를 만나기 위해 캐나다로 향하는 재현 부부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중간에 짐을 잃어버리기도 하면서 가까스로 도착한 캐나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들 영재가 사는 집과 룸메이트들은 재현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흑인 노인과 스물 살 여자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이 지저분한 집이 재현은 당황스럽다.


그 ‘우리’에서 재현은 반대편의 깔끔한 집을 보며 이쪽이 아닌 저쪽으로 넘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재현 부부는 적극적인 환대를 받지만 부담스럽게 느끼고, 그들과 절대 섞이지 못한다. 결국 부부는 그들이 내온 음식을 뱉어낸다. 한국에서 영재를 위해 호들갑스럽게 준비해 온 선물도 전해주지 못한다. 그곳을 나와 호텔로 향하는 재현은 영재와 좁힐 수 없는 경계가 생겼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오빠가 저희랑 함께 살게 돼서 다행이에요.”


민영이 재현에게 건네는 이 말은 마음이 아프다. 재현의 실수와 후회, 그리고 부자사이의 넘을 수 없는 세대와 선이 느껴진다. 소설은 청년들의 새로운 모습을 기성세대의 시선에서 그려냈다. 재현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며 지저분한 그곳. 음식을 뱉어낼 정도로 거북한 곳. 재현은 문신이 피어난 살을 마음껏 드러내며 청소 일을 하는 스무 살 민영이 낯설며, 흑인 노인과 스스럼없이 행동하며 갑자기 27살에 학교를 다시 간다고 ‘이런 곳’에서 계속 살겠다는 영재가 불편하고 이해되지 않는다.


소설 속 그들은 사소한 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데에 문제가 없고, 시간이 날 땐 집에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저녁마다 맥주를 마신다. 나이도 인종도 성별도 다른 그들은 진짜 ‘새로운’ 가족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환상적이고 활달한 식으로 새로운 젊은 세대의 생활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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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가리는 손」


 

개수대 앞 창문을 열어 우리가 직면하는 바깥을 본다. 소설은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당대의 다양한 혐오들을 보여준다. 다문화와 이혼녀 그리고 노인과 학생에 대한, 우리가 자주 마주칠 수 있는 혐오들을 짧은 소설 안에 치밀하게 담아냈다.


노인병원에서 영양사 일을 하고 있는 주인공은 동남아 남자와 결혼해 재이를 낳았다. 재이의 생일을 준비하며 주인공은 얼마 전 재이가 휘말렸던 일에 대해 생각한다. 노인을 폭행해 죽인 학생들의 일. 재이가 그 폭력에 가담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주인공에 마음에 걸렸던 것은 재이가 그 폭력을 보고도 신고를 하지 않았던 일, 그리고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경찰에게 거짓말을 한 일이었다. 그날의 블랙박스 영상은 인터넷에서 내려갈 줄 모르며 주인공을 따라다닌다. 재이와 저녁을 먹으며, 주인공은 재이에게 그날에 관해 이야기 한다. 재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계속 건드리는 것 같은 말들을 던진다. 소나기에 우산이 없어 손으로 머리 위를 가려 비를 피하는 것처럼 주인공은 무언가를 계속 가리고 있다.


주인공은 동남아 남자와 결혼한 여자로, 또 이혼한 여자로 사람들의 눈총을 맞는다. 재이는 동남아 혼혈이라는 이유로 편견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 살아간다. 소설의 마지막은 묘한 긴장감을 주며 끝난다. 주인공은 문득 재이의 손을 본다. 자신이 먹여서 키워 뼈마디가 굵어진 재이의 손. 노인이 폭행당하고 있을 때 블랙박스에 찍힌, 뼈마디가 굵어진 그 손으로 놀라서 입을 가린 재이의 얼굴. 주인공은 문득, 그때 재이가 놀라서 벌어진 입을 가린 것이 아니라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가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힘든 육아를 혼자 버티며 빨대로 물 마시는 것 하나도 직접 가르치고, 사방에서 차별과 시선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열심히 가르친 재이 역시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 우리는 무엇을 가리고 또 지우고 있을까. 다문화 가정 대상의 교육은 자신이 피가 온 또 다른 나라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한국에 스며들기 위한 교육이 더 우선시 되고 있다. 우리는 옳음이라는 말 아래에서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충’이라는 어미를 붙이며 쉽게 상대를 혐오한다. 그들은 소위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혐오의 발언이 쉽게 용인되곤 한다. 쉽게 ‘맞을 만했다’라는 말을 내뱉고 어린아이가 시끄럽고 보챈다는 이유로 엄마와 어린아이를 비하하며 노키즈존이 세워진다. 다양한 약자들의 존재는 흔히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쉽게 가려진다.


*


동시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아주 새삼스러우면서 우리의 가슴에 미친다. 어렵지 않은 이야기가 공감을 끌어내 우리를 그들과 연대하도록 한다. 지금, 개수대 앞 창문을 열어 바깥을 보면 무엇이 보이는가.

 

 



[진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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