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관이 넷플릭스의 경쟁상대가 아닌 이유 [문화 공간]

지금 영화관을 그리워하는 당신에게
글 입력 2020.03.1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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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과 우리의 일상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문화공간의 사용이 자유롭지 않게 된 지 두 달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공유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콘서트장, 전시회장, 공연장 등 기꺼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던 많은 문화 공간들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찾는 문화 공간인 영화관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많은 영화들이 눈물을 머금고 개봉을 미루거나 의도치 않게 소수 정예 관객을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등의 OTT 서비스의 다양화, 대중화로 오랜 기간의 칩거 생활 동안 문화 소비량은 오히려 증가했지만, 대형 스크린을 앞에 두고 팝콘을 나눠 먹으며 함께 웃고 감동했던 순간들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주변에서 항상 묵묵히 곁을 지켜온 영화관은 누구나 쉽게 일상에서 벗어나 두 시간 동안 새로운 세상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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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관극장 Photo by 인천광역시의회

 

 


영화관의 역사는 곧 우리 이야기 민족의 역사


 

우리는 이야기의 민족이다. 오래전부터 설화, 민담, 신화를 말로써 전달해 왔으며 다음 이야기를 손에 쥐고 있는 마을의 이야기꾼들은 보이지 않는 그런 맛깔난 권력으로 돈을 모았다.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 산업을 발전시켜 낸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이야기를 사랑하고 또 존중하는 태도는 자연스레 많은 인재들이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아직 영화 산업의 구조적 측면에서는 나아가야 할 길이 멀지만, 이야기를 하고 싶고 또 듣고 싶은 꿈이 가득한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인 애관극장은 한국 사회 극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애관극장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시대에 맞게 변화하여 1998년 'CGV 강변' 등장 이후 2004년멀티플렉스로 새 단장하였고 현재까지도 열혈 상영 중이다. 대기업의 자본이 투입되면서 멀티플렉스 시대가 도래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 유일의 단관극장'이라는 타이틀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영화관도 있다. 바로 광주 극장이다.


한 시기에 한 영화만 상영하는 단관극장이 전부이던 시절, 너도나도 '그 영화'에 대해 떠들던 당시의 분위기가 궁금해진다. 하나의 영화만 상영하는 만큼, 유통업자의 취향과 관점에 의해 엄격히 선별된 영화와 그에 모이는 집중된 관심은 지금과는 다른 문화 공유의 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편, 오랜 기간 한국 영화의 변천을 함께 해 온 화양극장은 2007년 단관극장의 막을 내렸다. 30년 동안 극장 간판의 포스터를 직접 그려 작업하던 간판 화가는 그동안 오롯이 극장의 얼굴을 그려내면서 지금은 한국 영화의 산증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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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이 주는 영화 이상의 무엇


 

시대가 바뀌면서 형식은 진화한다. 현재의 멀티플렉스는 다양한 관객의 폭넓은 수요를 감당하며 여러 목소리를 담고 있다. 영화관은 단순히 영화 감상의 공간으로써의 역할을 뛰어넘어 쇼핑, 외식의 공간과 일체화되고 다른 문화 산업들과도 연계하여 관객들에게 하루 종일 색다른 문화 경험을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 OTT 산업 성장이 가속화되면서 영화관이 줄 수 있는 특별한 문화 경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화관을 방문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대형 스크린, 사운드 그리고 팝콘과 콜라. 이 세 가지의 대표적인 요소 외에도 우리를 영화관으로 이끄는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다. 영화관에서 영화 <애나벨 2>를 볼 적의 일이었다. 영화 초반, 갑작스러운 장면에 놀란 앞 관객은 팝콘을 위로 던져버렸고 친구와 내 발 쪽에 팝콘이 쏟아졌다. 동시에 서로를 쳐다본 친구와 나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이후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매 장면마다 긴장이 맴돌던 순간, 화면 속 빛이 애나벨의 표정을 적나라하게 비추자 자신도 모르게 한 관객이 '풋' 웃음을 터뜨렸고, 주변 사람들도 그 웃음의 의미를 알겠다는 듯이 함께 소리 내어 웃었다.

 

영화관을 나오고, 영화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는 생각보다도 영화와 영화관에 대한 새로운 경험에 왠지 모르게 신이 났던 기억이 있다. 집에서 혼자 애나벨을 감상한 친구에게 영화를 보다 다 같이 웃었다고 말하니, 영화에 그럴 만한 장면이 있었냐며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이렇게 문화 공유 공간은 문화 콘텐츠 자체 이상의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옆 사람의 반응은 내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함께 웃은 웃음은 하나의 웃음 강도보다 훨씬 크게 기억에 남는다. 아주 무서운 영화라도 보고 나오면, 함께 감상한 사람들과 함께 싸워 이겨낸 기분까지 들 때도 있다. 같이 울고, 웃은 시간은 하나의 기억으로 뭉뚱그려져 영화와 함께 머릿속에 저장된다.

 

더불어 영화관 자체의 공간이 주는 경험도 있다. 이는일부러 심야영화나 조조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부산 여행 중 친구 셋과 처음으로 심야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우리 빼고는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 앉아있는데 광고가 끝나도 영화가 상영되지 않아 직원을 불렀다. 직원이 상영관 뒤로 들어가 영화를 상영시켰고 우리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영화를 감상했다. 중간중간 조는 친구를 깨우고 또 속닥속닥 배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전에 없던 영화 경험을 하고 텅 빈 영화관을 나왔다.

 

모두에게 작지만 여러 개의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주는 이 영화관들이 넷플릭스와 전면적인 경쟁상대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관과 OTT 플랫폼이 주는 문화적 경험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넷플릭스가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문화콘텐츠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면, 영화관은 실시간 문화 공유의 공간으로써 계속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오늘날 사람들의 문화콘텐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보는 시각도 다양해지는 이 시점에서, 영화관이 높아진 대중들의 눈높이를 반영하고 당장의 이윤보다 영화산업의 꾸준한 부흥을 향해 나아간다면 영화관의 앞날은 계속 화창할 것이다.

 

 

[추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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