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총보다 강한 실 How Fabric Changed History

글 입력 2020.03.1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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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보다 강한 실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1. 단추에서 실과 바늘로, 내 인생의 실타래


 

책방 오픈 준비로 하루하루가 바쁜 요즘, 육아와 업무로 없는 틈 사이에서 고른 책은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Kassia St Clair가 쓴 윌북 출판사의 <총보다 강한 실>이다.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라는 부제를 담은 이 책은 출간 즉시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다.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두가지. 첫 번째 이유는 곧 오픈하는 ‘데어이즈북스’와 원데이 클래스 브랜드 ‘시시소소’ (시시하지 않은 소소한 당신의 취미)가 바로 이 책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두 로고의 의미는 실에 바늘을 꿰 듯 신중하고 세심하게, 매듭을 엮듯 연결되어 심도 있게 라는 의미로 ‘실과 바늘’에서 따 왔다.


두 번째 이유는, 2017년 6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한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에서 관람이 이 책을 이끌었다. 당시 관람후기에 적어 둔 내용은 아래와 같다.


단추가 해가 거듭할수록 더 화려해지고, 의미가 부여되는 시대에 여성의 인권도 함께 성장했다. 이건 내가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큰 즐거움이다. 중세시대 신부나 귀족 등 한정적인 신분에만 치장할 수 있었던 단추가 어느 순간 보여지는 'IT' 아이템으로 변화하는 순간, 여성들의 대외활동도 활발해졌을 터. 이런 의미에서 단추는 여성의 인권에 큰 영향을 끼친 중요한 역사적 산물이었다.


당시 관람했던 전시는 꽤나 내게 인상적이었고, 이후 단추에서 이어진 여성의 인권은 내게 끊이지 않는 호기심을 유발했고 그렇게 이어진 인연이 단추에서 실과 바늘로 이어졌고 내 사업, 그러니까 내 일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매개체가, 내 인생의 실타래가 되어 되었다.

 

 

 

2. 13색 실로 풀어 놓은 화려한 실의 세계사


 

원제 How Fabric Changed History이 이 책은 저자인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의 안목과 지식이한 권으로 탄생한 책이다. 옥스퍼드에서 18세기 여성 복식사와 무도회 연구를 전공한 그녀의 모든 지식의 집합체라고 할까?


제 1장 동굴 속의 섬유부터 제 13장 황금빛 망토까지 실에 관한 13가지 테마의 세계사를 서문에서부터 풀어낸다. 13가지의 이야기는 시간 순으로, 실이 탄생한 역사부터 과거와 현재를 거쳐 미래와 함께 할 실의 변모사를 두루 읽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저자의 깊은 관심사가 아니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총보다 강한 실>이라는 제목처럼, 실이 총보다 강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은 Absolutely YES다. 이 책은 사실에 기반한 실의 역사를 여성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지극히 페미니즘 시선에서 바라봤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실이라는 사물이 여성과 동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음에서 그 관점을 바라보고 이 책을 읽는다면 저자의 이야기들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실에 관한 다양한 문헌에서 발췌해 온 비유와 문장들이다. 언어의 유래에서부터 신화와 속담, 일화와 문화 역사까지. 각각의 장마다 매력적인 실의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 이야기에 유쾌하게 고개를 끄덕인다면, 당신은 이미 이 책에 매료된 것이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 영국 속담, 15세기 - 본문 44페이지, 털은 어디로 갔는가?

 


여자들은 남자, 직업, , 자녀, 친구, 사치품, 편안함, 독립, 자유, 존중, 사랑, 그리고 올이 풀리지 않는 저렴한 스타킹을 원한다. 필리스 딜러Phyllis Diller, 미국 희극배우 - 본문 278페이지, 시장에서

 



3. 매혹적인 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다


 

모든 장의 이야기들이 관심을 끌었지만, 그 중 두가지를 서평에서 남기고 싶다. 이 책의 86페이지에 소개된 선기도璣圖詩란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여자가 한을 풀기 위해, 바늘로 허벅지를 찔렀다던 옛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옛적 여자들은 한을 풀기 위해 실과 바늘을 도구 삼아 매일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4세기 중국에 살던 여인, 소혜蘇蕙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사랑한다며 고백하던 남편이 유배지에 도착하자 마자 다른 여자를 첩으로 맞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소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감히 상상하기가 무서울 정도다. 소혜는 답답했던 심정, 한을 <선기도 璇璣圖, Star Gauge>라는 작품을 만들어 승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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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기도 璇璣圖, Star Gauge

 

 

가로 29자, 세로 29자로 이뤄진 정사각형 모양의 이 작품은 회문시(어느 방향으로나 읽을 수 있는 형식)로 남겼다. 당시 글을 쓸 줄 알았던 여인도 소수였을텐데 이처럼 시까지 작문을 하면서 독창적인 수법으로 작품을 남겼을 소혜. 이 시대 여류 시인의 작품 가운데 아직까지 유일하게 전해지는 게 바로 이 선기도란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백 년 동안 선기도는 보물로 간주되지도 않고, 분실된 적도 있다고 하니, 실연당한 여인의 작품이 다시 한번 실연당한 셈이다.


두 번째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는 <레이스 뜨는 여인>이라는 작품이다.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페이르가 말년에 제작했다는 이 그림은 당시 바느질을 하던 여인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평범하게 보이는 이 작품이 내게 의미를 남긴 건 바로 ‘여자의 미덕=바느질’이라는 역사적 고충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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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페르페이르, 레이스 뜨는 여인

 


당대 사람들은 <레이스 뜨는 여인>을 여자들의 미덕을 표현한 교훈적인 작품으로 이해했다. 바느질은 여자들의 일 중에 가치 있는 것이고, 여자들이 그 일에 집중하면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얌전히 집 안에 머물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 본문 185페이지



어쩜 이리도 동서양이 비슷한 생각을 하였을까? 그런데 이 그림을 다시 생각하면, 이렇게도 받아들일 수 있다. 레이스를 뜨는 건 평범함 여인네였을지도 모르지만, 이 레이스를 입은 건 부를 누리던 이들이었고, 그들의 욕심이 파장을 일으키고, 동서양을 교역하게 하고, 실의 위대한 발전을 가져오고,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것임을.


서문에서 저자는 직물로 만든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옷임을, 실과 직물은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고, 없어서는 안될 존재임을 일깨워 준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노트북에도 존재하고, 앉아 있는 소파에도, 북극을 탐험하는 이들에게도, 우주비행사에게도 꼭 필요한 존재라고 말이다. 어쩌면 직물 산업은 농업이나 목축업보다 오래 됐을지도 모른다고, 직물이야말로 최초의 첨단 기술이라고 말이다.


 

 

4. 글Text와 직물Textile의 즐거운 만남


 

세계사를 풀어낸 책들은 이미 서가에, 세상에 수없이 많다. 학창 시절 대학 입학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온전한 나의 관심으로 세계사를 공부하고 싶다면, 관심 있는 주제를 발판 삼아 세계사를 공부해 보길, 독서해 보길 추천한다. 내 경우 맥주가 그랬고, 이번에 읽은 실과 바늘이 그랬다.


인간이 어쩌다 옷을 입게 되었고, 실크로드가 탄생하고, 또 레이스와 우주복이 탄생했는지, 그 기막힌 여정의 시작은 실과 바늘, 바로 직물에서 시작했다. 바늘로 꿰 맨 실의 여정, 그 길을 함께 탐독하고 싶다면, <총보다 강한 실>을 추천한다. ‘총 맞은 것처럼’ 보다 더 아찔한 여정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오윤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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