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괴물은 만들어진다 [영화]

영화 <나를 찾아줘>
글 입력 2020.03.18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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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영화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다. 일상, 드라마, 스릴러, 공포, 코미디, 액션, 스포츠, 판타지 등등. 영화 타이틀을 검색하면 꼭 붙어 나오는 분류 방식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직관적이지 못하다. 중심 소재나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선 그 밑에 나열된 줄거리까지 읽어야 약간 감이 잡힌다. 때로는 줄거리마저 명확하지 못하다. 물론 영화를 보기 전에 꼭 스토리라인이나 분위기를 알 필요는 없다. 다만 영화의 어떤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만든 카테고리라면 그 몫은 다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장르 구분을 새롭게 하고자 한다.


세 번째 장르는 '심판하는' 영화. 사실 '심판'이라는 단어 자체가 꽤 위험해 보인다. 모두가 지켜야 하는 법을 기준으로 판사가 내리는 판결도 아닌 일반인이 내리는 심판이라. 그러나 뉴스를 접하다 보면 생각보다 자주 답답한 상황과 마주한다. 주취 감형으로 엄청난 상해와 폭력을 가한 범죄자의 형이 12년으로 줄어들고, 몇백 번 불법 촬영을 하고도 집행유예를 받는 세상. 공정하고 공평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법전에 적혀있지만 그러지 못한다. 아무리 많은 것을 배웠든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주관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죄의 무게를 피고인에 따라, 피해자에 따라 다르게 정한다. 게다가 뉴스에 나오지도 못하는 사건은 또 얼마나 많은가. 판사에게 닿지도 못하고 피해자는 짓밟힌 채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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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도덕·윤리를 기준으로 영화 <나를 찾아줘>를 보면 기가 막힐 것이다. 불법을 일삼고, 비윤리적이며, 도덕의 틀을 깬 주인공을 앞세워 이야기를 풀어나가니 말이다. 주인공 에이미를 그저 미친 사이코패스로 볼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선택한 방법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상상도 못 할 선택지다. 그러나 동기 없이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지 않았다.


시작은 그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며 가정에 소홀해지면서 생겼다. 남편의 외도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바라며 법정에 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자는 원래 그래'라는 합리화로 묵인되는 세상이니까. 설령 법정에 선다고 한들 그가 얻는 것이 많을까 잃는 것이 많을까. 이와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슬퍼하고, 주위에 푸념하고, 생각을 합리화하여 제자리에 머문다. 에이미는 다른 결정을 내렸을 뿐, 그가 미친 사람은 아니다. 괴물은 만든 사람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어메이징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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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의 어머니 아버지가 출간한 책 「어메이징 에이미」는 큰 인기를 얻는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어메이징 에이미의 모티브가 실제 에이미다. 둘은 같은 듯 다르다. 전자는 무엇이든 성공으로, 후자는 실패로 끝난다. 예를 들어 어메이징 에이미는 뛰어난 배구 플레이를 보여주지만, 실제 에이미는 1학년 때 배구부에서 쫓겨난다. 존재하지도 않는 자신과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살았을 에이미. 가족 내에서 다툴 때 적어도 몇 번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책을 들먹이며 비교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에이미가 그 책을 진절머리가 난다고 느끼진 않았겠지.


끔찍할 만도 하다. 책 속 에이미는 완벽한 성공의 길을 걷는다. 그의 보호자들은 실제 에이미도 그러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야기를 적었을까. 도전에 성공하고, 시련을 극복하고, 좋은 남자와 결혼에 성공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일련의 과정을 자신의 딸도 따르기를. 에이미가 결혼을 택한 이유도 책과 관련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다른 것은 어메이징 에이미에게 미치지 못하더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그와 견줄 수 있길 바라며. 안타까울 따름이다. 에이미의 바람과는 달리, 그의 남편은 썩 괜찮은 남자가 아니다.


연애할 때 사랑스러운 말과 몸짓으로 살랑거리던 남편은 결혼하고 나태해진다. 책임감과 애정을 자신이 가르치던 어린 학생에게 쏟아붓는다. 다른 사람을 둔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지만 대상이 자신보다 훨씬 어리다는 것도 문제다. 학생의 눈에는 당연히 나이 든 사람이 성숙하고, 노련하고, 어른처럼 보인다. 당연하다. 대체로 사람은 해를 거듭할수록 행동과 말투가 진중해진다. 이 사실을 모르는 학생은 인간의 당연한 변화를 유식함과 점잖음으로 착각한다. 또래 애들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를 가지고 있다며.


에이미의 남편은 세상을 잘 모르는 학생을 꾀었다. 양쪽에 잘못을 저지른 그에게 응당한 벌을 주어야 한다. 잘못을 깨닫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도록. 그러나 어떻게? 어린 학생은 자신이 만든 사랑이라는 환상에 빠져있다. 게다가 남편이 불쌍한 척하며 학생에게 이별을 고한다면 학생의 착각은 다른 방향으로 튈지도 모른다. 학생이 정신 차리고, 남편이 잘못에 책임질 방법은 무엇일까. 보통 여기까지 고민을 하고 이내 생각을 멈춘다.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까. 다만 에이미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결혼 후, 남편의 원대로 시골로 내려가 따분한 생활을 하며 견딘 세월을 더는 묻어 두지 않는다. 남편을 만나기 전, 똑똑한 머리로 명문대에 입학한 자신을 다시 데려올 때다.


 

 

내가 왜 죽어?


 

에이미의 원래 계획은 이러했다. 남편이 자신을 죽였다는 흔적을 곳곳에 뿌려두고 사라진다. 그리고 모든 자초지종이 공개되어 남편이 지탄받는 타이밍에 물에 빠져 죽는다. 자신의 시체가 발견되면 시나리오는 현실이 된다. 하지만 에이미는 계획을 바꾼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왜 죽어? 에이미의 지적대로 그는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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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그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은 계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겪는다. 우선 남편은 평생 괴로움을 겪어야 한다. 세상의 이목이 쏠렸던 실종사건이기에 그는 이제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한다. 사람들의 눈과 귀가 CCTV나 마찬가지다. 쇼윈도 부부가 된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는 누구보다 행복한 척 연기하다가 문이 닫히는 순간 비즈니스 관계로 돌아선다.


남편이 에이미의 모든 계획에 대한 증거를 수집해서 세상에 공개하지 않는 이상 이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 남편은 끔찍하다고, 에이미가 무섭다고 한다. 고작 외도 한 번으로 이런 대가를 받는 것이 심하다고 생각하겠지. 본인에겐 별거 아닌 일이었을지라도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에이미가 쇼윈도 부부가 된 것에 괴로워하지 않지만, 남편은 괴로워하듯, 남편은 자신의 외도가 으레 남자라면 할 수도 있다고 느낄지라도 에이미에겐 청천벽력이었다. 피해 여부와 경중을 따지는 것은 피해자의 몫이다.


다음 인물은 에이미의 오랜 스토커이다. 스토커는 허영에 가득 찼다. 자신과 급이 맞는다고 생각한 사람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한다. 뛰어난 자신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미술 작품쯤으로. 영화에서 나오는 인물 중 가장 어리숙한 사람이라고 본다. 에이미나 에이미 남편, 어린 학생 모두 방식이 다를 뿐, 사람을 사람으로 대한다. 그러나 스토커는 그렇지 않다.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는 너를 해치지 않아'라고 말하며 에이미에게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라며 '예쁜' 옷을 내밀던 남자. 남자는 우스꽝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돈, 머리, 이제는 원하던 사람까지 가졌다고 착각한 남자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몰랐다. 인격체는 누구도 소유할 수 없다.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저 두 사람 말고 눈에 띄는 인물이 또 있다. 남편의 쌍둥이 동생 마고. 오빠의 외도를 뒤늦게 알고 분노한다. 그러나 분노는 아주 짧다. 곧 원래대로 돌아와 남자를 보살피고 지지한다. 에이미가 천하의 나쁜 사람이고, 남자는 나쁜 사람의 술수에 놀아나는 불쌍한 사람인 양. 마고의 맹목적인 행동은 의문 하나를 만든다. 과연 가족 관계가 아니었어도 똑같이 행동할까? 마고는 에이미와 직접 대화를 나누기보다 남자를 통해 이야기를 듣는다. 양쪽 생각을 들어보지 않고 한쪽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으면 제삼자라는 객관성을 잃기 쉽다. 게다가 태어나서부터 자신과 함께한 존재의 영향력이라면.


이런 말을 많이들 한다.

 


당신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고,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든 당신 편이 되어 줄 사람은 가족뿐이다.


 

세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한 번 되짚어보아야 한다. 정말 나에게도 당연한 것이 맞는지. 피가 섞이고, 태어난 순간부터 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놀고 다투고 화해하며 살아온 세월이 있기에 가능한 걸까? 나는 저 말이 가끔 협박처럼 보인다. 세상에 너를 이렇게 아낄 존재는 가족뿐이니까 가족에게 잘하라는 의미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잘못을 지적하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옳지 않은가? 소중함을 근거로 들어 그의 잘못을 용인하고 더 나아가 돕는 행위가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이해되는가.


살인과 비교하면 바람은 별거 아닌 일이니까 그가 누명을 쓰지 않도록 돕는다? 에이미가 느꼈을 배신감과 고통은 죽음과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목숨을 건 계획을 만들 수 있었겠지. 이미 난도질당한 기분을 느꼈으니까. 물론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른다. 그러나 책임은 자신의 몫이다. 앞서 말했듯 피해의 경중을 따질 수 있는 것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몫이다. 에이미의 소름 끼칠 정도로 치밀한 계획을 무조건 옹호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그가 이 선택을 내리기까지 겪었을 고통을 헤아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상황의 한 면만 보고 판단 내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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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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