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본질을 꿰뚫는 눈 : 총보다 강한 실 [도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본질이 아니다
글 입력 2020.03.20 16:5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던



역사는 승자, 그 시대를 주름잡던 강자의 시선에서 기록된다. 즉 우리가 살면서 교과서나 강의를 통해 공부한 대부분의 서사는 주류의 것이었다. 비주류라고 한들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이야기만이 주목받았다. 책의 저자인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는 우리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직물, 실이 만든 역사를 들려준다.


실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의 방을 한 번 둘러보아라. 옷, 이불, 커튼, 장갑, 마스크, 수건, 매트, 가방, 모자 등. 우리의 일부처럼 언제나 함께하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실이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놀랍고도 아득할 것이다. 같은 것이라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새롭듯이 실을 관점으로 역사를 읊는 일은 낯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자의 이끄는 흐름대로 따라가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51.jpg

 


<목차>


들어가며

머리말

1. 동굴 속의 섬유: 옷감 짜기의 시초

2. 죽은 사람의 옷: : 이집트 미라를 감싸고 벗긴 이야기

3. 선물과 말: 고대 중국의 비단

4. 비단이 건설한 도시들: 실크로드

5. 파도 타는 용: 바이킹의 모직 돛

6. 왕의 몸값: 중세 잉글랜드의 양모

7. 다이아몬드와 옷깃: 레이스와 사치

8. 솔로몬의 외투: 면, 아메리카, 교역

9. 극한 상황에서 옷 껴입기: 에베레스트와 남극을 정복한 옷

10. 공장의 노동자들: 레이온의 어두운 과거

11. 압력을 견뎌라: 우주여행에 적합한 옷

12. 더 튼튼하게,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신기록을 세운 스포츠용 직물

13. 황금빛 망토: 거미줄을 이용하다

맺음말


책은 이집트의 미라에서 중국의 비단, 바이킹의 돛, 레이스, 면, 레이온, 거미줄까지 방대한 범위를 다룬다. 직물에 대한 기초를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던 것-비단(누에고치), 면(목화)-들은 그 직물이 성행하던 당시의 정황을 세세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생전 처음 알게 된 사실-바이킹의 돛은 모직으로 만들었다-도 있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아크릴이며 폴리에스터며 이름도 헷갈리는 섬유의 쓰임도 알게 되었다. 직물에 대한 세세한 정보는 책을 통해 충분히 습득할 수 있기에,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 중 인상 깊었던 두 개를 들어 소개하고자 한다.




최초로 인간을 달에 보낸 여성들



조선 시대 여성이나 중세 유럽 여성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무얼 하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일반적으로 실을 뜨거나 자수를 놓고 있는 이미지를 상상할 것이다. 그렇다. 예부터 실 잣기와 바느질은 여성의 일감으로 여겨졌다. 지금은 여성이 방직기를 떠나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실이 있다. 바로 남성과 동일한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신대륙 발견과 무역로 개척을 통해 막대한 부가 쌓이고 부를 축적한 이들이 거금을 들여 레이스를 구매했지만, 레이스를 만들던 여성의 손에 동일한 임금이 떨어지지 않았다.


첫 번째 이유로, 협회나 길드를 결성하지 못했던 것을 들 수 있다. 길드는 직공에게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직공 개개인이 모여 자신들의 노동이 경제적 가치가 있음을 주장하고 더 높은 임금이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남성들은 길드에 가입해서 부와 명예를 쌓아갔지만, 비공식적인 가내 공방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일하던 여성들은 하나로 조직되기가 어려웠다. 또한, 여성 대다수가 바느질을 배웠기 때문에 잠재적 노동자층이 아주 많았다. 레이스 산업 규모가 아무리 커도 여성 노동자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낮은 임금이 유지되었다.

 

이렇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여성들이 세계 최초로 무언가를 해냈다. 다만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역사가 강자의 시선으로 적힌 탓이다. 모두가 닐 암스트롱을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인간이라고 기억한다. 그렇다면 닐이 달에 갈 때 입은 오메가 우주복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있는가? 바로 여성 속옷류를 만들던 회사, 플레이텍스(Playtex)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회사명은 알아도 우리는 그들 중 어느 한 사람의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름 모를 여성들의 업적은 기억해줄 수 있지 않은가.

 



800px-Playtex-logo.png

 

 

여성들이 만든 놀라운 성과에 의문이 들 수 있다. 길드나 협회를 조직하지 못하고,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던 여성들이 어떻게 우주복을 만드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까? 사실 처음 NASA와 협력하게 되었을 때, 플레이텍스는 해밀턴 스탠더드의 하도급 업체로 들어갔다. 이 결과에 플레이텍스는 실망이 컸다. 그들이 제작한 독창적인 우주복은 공기가 들어가더라도 풍선처럼 부풀지 않은 덕에 기존의 우주복보다 부피가 훨씬 작았고, 신축성은 더 우수했다.


해밀턴 스탠더드는 플레이텍스보다 나은 우주복을 만들기 위해 새로 팀까지 조직하며 애썼지만, 결과는 형편없었다. 처음부터 삐걱거리던 두 회사는 힘을 합치지 못하고, 결국 아폴로 우주선 비행에 우주복을 공급하는 계약 체결을 두고 경쟁 상대가 되었다. 이 경쟁에서 플레이텍스는 불리했다. 탐탁지 않아 하는 NASA를 설득한 끝에, 샘플을 완성하는 데 겨우 6주를 얻었다. 세 회사의 우주복 샘플은 22개의 테스트를 거친 후, 1위가 결정됐다. 플레이텍스. 2위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승리였다.


당시 플레이텍스의 전문 영역은 라텍스로 만드는 몰딩 브라와 거들이었는데, 오메가 우주복을 만드는 과정은 여성용 거들을 만드는 방식과 비슷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옷핀 사용 개수가 엄격히 제한되거나 아예 금지되고, 라텍스를 취급하거나 여러 겹의 천을 접합하는 공정은 전보다 뛰어난 수준을 요구했고, 우주복에 들어가는 엄청난 직물과 부속의 수를 서로 정확하게 연결해야 했다.


NASA와의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플레이텍스의 문화는 격식 없고 다소 산만했으나, NASA는 세밀한 보고와 과학적 해설을 요구했다. 플레이텍스는 공정에 대한 개선 방안을 자유롭게 제안했고, 엔지니어들은 그들의 작업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바느질을 배우며 서로 다른 문화를 맞춰갔다. 이들의 노력 끝에 세계 최초로 달에 착륙한 인간이 탄생할 수 있었다.




당신이 믿는 '스포츠 정신'



다음으로, 스포츠 이야기이다. 올림픽이 열리는 때면 세상이 선수들의 경기와 경쟁으로 떠들썩해진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거나 뜻깊은 메달을 얻은 선수가 있지만 약물 복용이나 부정행위로 여론의 뭇매를 맞는 선수들도 많다. 사람들은 공정하지 못함에 분노한다. 그런데 스포츠계는 뿌리부터 불공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unnamed.jpg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서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나긴 역사를 가진 올림픽이지만, 1900년 파리 올림픽부터 출전 자격이 주어진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전 세계의 여성들. 그중에서도 테니스, 골프, 요트 등의 종목만 허용되었다. 게다가 스포츠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을 정도로 가혹한 복장 규정이 있었다.


위의 사진은 영국 테니스 선수 샬롯 쿠퍼의 경기 모습이다. 그는 몸에 딱 붙는 발목 길이의 스커트, 단추가 목까지 올라오고 소매는 손목까지 내려오는 블라우스, 코르셋, 굽 있는 신발을 착용하고 경기에 임했다. 복장 규정을 만든 이들은 선수들이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옷차림으로 코트의 양옆과 앞, 뒤를 빠르게 활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20200111500497.jpg

 

 

위의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 참가한 수영 선수들의 사진을 통해서도 당시 여성에게 스포츠는 공정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직물 수영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는 선수들 가운데에 레이스로 장식된 긴 드레스와 굽 높은 신발을 신은 여성이 보일 것이다. 놀랍게도 그는 선수들의 코치이다. 선수의 옷차림도 엄격히 규정하는 사회에서 코치가 규약을 받지 않을 리 없다.


여성의 정숙함을 바라는 사회 때문에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스포츠용 브래지어가 한참 지나고서 등장한다. 스포츠 브래지어의 개발로, 일반 브래지어에 강력 테이프를 둘둘 감거나 브래지어를 두 개씩 착용할 필요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1999년FIFA 여자월드컵 결승전에서 득점을 성공한 브랜디 체스테인이 남자 선수들도 많이 하는 세레머니를 했다. 상의를 벗어 던지고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주먹 쥐어 하늘 높이 뻗은 것이다. 이 모습은 스포츠지의 표지를 장식할 정도로 여파가 컸다. 후에 일시적 정신착란이라고 변명해야 했던 그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이렇게 보수적으로 여성들을 옭아매던 규정은 현대에 이르러 정반대로 바뀌었다. 여성 선수들에게만 과도한 노출이 있는 복장 규정을 만든 것이다. 한 뼘만 한 바지가 공식 복장인 배구 등도 문제 있지만, 무엇보다 비치발리볼 종목이 심하다. 남자 선수들은 반바지와 탱크톱을 입고 경기하지만, 여성들은 측면 폭이 최대 6㎝인 비키니 수영복이 공식 규정이다. 비키니 수영복을 입어서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면 남자 선수들이 먼저 입었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여성 선수들의 복장 규정이 활동성을 우선시하여 변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발전해야 할 부분이 많다. 스포츠를 하는 여성은 저마다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훌륭한 경기를 만들기 위해서 매일 같이 강도 높은 훈련을 한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과 실력을 입증하기 위해 관중과 카메라로 둘러싸인 경기장 한가운데에 선다. 진정한 스포츠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성'만의 제약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스포츠의 묘미를 누구도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책 편집과 구성에 대하여



'책'이라는 상품 자체에 대한 평으로 글을 마무리하겠다. 시간순으로 정리된 구성은 아주 좋다. 목차도 명료했고, 챕터 간의 연결도 좋았다. 다만 아쉬운 점 몇몇을 말해보고자 한다.

 

1.

책을 읽다 보니 오·탈자 세 개를 발견했다. 둘은 주어의 조사를 잘못 쓴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복 단어였다. 정확한 페이지를 기재해두었으면 더 좋았을 피드백이지만, 책에 따로 표시해가며 읽지 않아서 눈으로 확인하는 것에 그쳤다.


2.

종이의 두께가 아쉽다. 재질이 너무 얇아서 책을 읽을 때 뒷장이 비친다. 글의 중요한 요소인 가독성에 약간 방해가 되었다. 익숙해진 후에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조금만 거칠게 다루면 쉽게 찢어질 것 같아서 조심스러웠다.


3.

실과 직물은 서두에 말했듯 대부분이 관심 가지지 않는 주제다. 들여다보아야 머나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의 일상에 끼치는 영향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잠재적 독자가 책의 겉면을 보고서 책의 첫 장을 열어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즉, 책 표지와 제목이 중요하다. 표지는 '예쁘다'. 그러나 실에 집중하기 어렵다. 파랑이 강조 색으로 들어가면서 실보다는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띈다. 물론 햇빛이나 자연광에서 비추면 실을 표현한 선들이 반짝거리지만, 실내 백열등에서는 그 표현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실과 직물은 시각보다는 촉각의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표지의 작은 부분이라도 책에서 나오는 직물을 이용했더라면 책이 조금 더 흥미로웠을 것 같다. 실제 직물을 이용하기에 무리가 있다면, 장마다 사진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을 다 차치하고, 이 책을 추천하는 데에 망설임은 없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본문에 언급한 이야기 말고도 어떻게 모직으로 돛을 만들 수 있었는지, 비단이 무역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거미는 왜 누에고치를 대신할 수 없는지 등 당신의 지평을 넓혀 줄 실의 역사에 얽혀보기를 권유해본다.

 

 

 

박윤혜.jpg

 

 



[박윤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00113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