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이마 위에 찍힌 소인 (Portostempel i pannen) [도서]

입양인 문학에 대하여
글 입력 2020.03.1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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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혼란은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이다. 그러나 결국 답은 찾지 못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건 아주 본질적이고 정교하게 바라봐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의 근본은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는 건 까다롭고도 회피하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나의 존재에 의문을 품었다. 지금도 그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치열한 고민을 하던 중에 '세계문학세미나' 수업을 듣게 되었다. 수업을 수강하면서 정체성 혼란을 유독 더 고민할 상항에 있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바로 "입양인"이다. 입양인 중에서도 몇몇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다가 자신의 삶을 녹여낸 책을 만들고 우리는 그 작품들을 입양인 문학이라 부른다.

  

수업에서 배운 작품 중에서도 아직 한국에 출판되지 않은 책을 소개하고 싶다. 내가 배운 소설은 브륀율프 정 티옌의 '내 이마 위에 찍힌 소인(Portostempel i pannen)'이었다.

 

*

 

브륀율프 “정” 티옌(한국명: 정서수)을 노르웨이인들은 브륀율프 “융” 티옌 이라고 부른다. 가운데 이름이 독일에서 건너온 조상과 관련되어 있다고 짐작하며 독일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한국 성을 사용하고 있다. 노르웨이적인 이름 사이에 발음을 정확하게 하기 힘든 한국 성을 쓴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의 이름은 한국에서 입양된 노르웨이 시민으로서, 거리에 나서면 중국 출신의 유학생이나 여행객으로 취급을 받기도 하는, 그의 평범하지 않은 정체성을 상징하고 있다.


 

"나는 브륀율프 융 티옌이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소년. 한국에서 수송된 나는 이 농장에 위탁되었다."

  

 

고백체는 작가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사건을 말하는 데 적합하며, 일인칭으로 서술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자신의 심리와 상황을 설명해야만 하는 인물에게 알맞기 때문이다. 소설의 화자이자 작가인 '나'는 일인칭 서술로 자신의 상황을 고백하고 있다. 고백체는 인물의 진실을 고백해서 작품의 진실성을 느끼게 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아버지와 전혀 닮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입양인 문학에는 작가들에게 상황과 심리를 고백하도록 유도하는 인물이 존재한다. 이러한 고백을 듣는 청자는 작품의 예상 독자들이자 가상의 독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화자의 고백의 진실성을 평가한다.


 


입양인 작가들을 억압하는 요소


 

입양인 문학을 집필할 때 작가들은 의도하지 않은 억압을 느낀다. 입양인들이 책을 출판했을 때는 출판계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주목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때 입양인 작가들이 특정한 시각을 갖도록 억압 받기 쉽다.

 

입양아를 받는 위치의 독자들은 입양아들이 국제 입양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서사를 선호한다. 성장소설과 비슷한 틀을 공유하는 입양인들의 자전적인 소설에서는, 유독 성인이 된 이후 출신 국가를 방문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입양인들은 부유한 선진국과는 다른 혼란과 궁핍, 발전하지 못한 도시와 환경, 그리고 친부모와의 상봉이 좋지 않은 결말로 완결되는 줄거리를 읽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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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따라 입양인의 한국 방문은 한국에 대한 거부감을 강화했다. 스웨덴 입양인이자 작가인 아스트리드 트로직(Astrid Trotzig)은 이런 입장에서 책을 냈다. 저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에서 아스트리드는 2주 동안 한국을 방문했다. 아스트리드가 목격한 한국에 대한 감상은 부정적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어설프고 무지한 것으로 보였고, 스웨덴과 비교해 한국의 모든 것들은 서구를 모방한 값싼 모조품처럼 보였다. 작가의 한국 방문은 한국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게 했고, 자신이 스웨덴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확인시켜줬다. 즉, 한국 체류를 통해서 선진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여행으로 완결된다.


반면에, 우리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입양을 선택했다고 말하면서도, 입양인의 슬픈 뒷이야기를 보고 싶어 한다. 입양인들이 다수 인종과 다른 외모로 인해 어린 시절 지독한 인종차별을 당했다거나, 양부모에게 학대 당한 유년기를 보냈다거나, 성인이 된 후에도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심각한 불이익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이들의 발언은 해외 거주 한국 입양인들의 전형적인 삶으로 포장되어서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다. 우리는 입양인들이 불행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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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에 대한 인식의 모순으로 입양인 중 일부는 고향으로 떠나서 입양국에 유배되었다고 느낀다. 이러한 심정을 느끼는 입양인들은 완벽하고 자연스러운 고향으로 인식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을 문학으로 표현한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에 재현된 입양인의 삶이 대표적이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은 가난 때문에 국외로 입양된 한 여인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린 영화이다. 그녀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학교 친구들에게 인종 차별과 무시를 당한다. 그리고 그녀는 사춘기를 겪으며, 외국인과 다른 자신의 이질적인 외모를 비관하며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수잔은 낯선 땅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친부모님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수잔은 한국의 국외 입양방송에 출연해 마침내 친어머니를 찾게 된다. 수잔은 가족과의 상봉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입양인에 대해서 선의의 마음을 품은 한국인들이 주로 느끼는 동정심과 죄책감은 이러한 대중문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입양인 문학


 

미국 입양인인 제인 트렌카 정(Jane Trenka Jeong)은 세 편의 책을 냈고, 노르웨이 입양인 브륀율프 정 티옌(Brynjulf Jung Tjønn)은 네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이들 두 작가는 입양인으로서 삶을 과장되게 슬프거나 비극으로 만들지 않고 현실을 그려내는 방식을 택했다.

 

입양인 문학의 독자들은 단지 입양인들과 양부모들만이 아니다. 여러 독자가 그의 소설을 감동적으로 읽으며, 국제입양의 현주소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며 의미 있는 문학적 소통을 꾀하고 있다.

 

입양인 작가들을 방해하는 기제들을 줄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입양인 문학에 대한 관심이다. 여러 입양인의 목소리가 문학에서부터 언론, 정치 등지에서 게시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브륀율프 정 티옌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 소개되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입양인들의 목소리가 한국인들에게 전달될 기회가 증가하여야 한다.

 

 

참고자료

박정준, [한국 출신 국외 입양인 문학에 나타난 자아 재구성의 문제]. 서울대: 박사 논문, p26-40

장길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1991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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