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의 일상화' 그리고 '일상의 예술화' [문화 전반]

광주의 도심, 시민과 공존하는 광주 폴리
글 입력 2020.03.1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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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보면 정체모를 조형을 마주치는 일이 많다. 이게 예술작품인지, 필요에 의해 설치된 구조물인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는데, 특히 내가 살고 있는 광주에서는 이런 애매모호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이에 궁금증을 품고 이 조형물에 대해 알아본 결과, 의미와 재미를 모두 겸비한 ‘폴리’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폴리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 함께 파헤쳐 보도록 하자.
 


폴리(Folly)의 건축학적 의미는 '본래의 기능을 잃고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뜻한다. 하지만 광주폴리는 공공 공간 속에서 장식적인 역할 뿐 아니라, 기능적인 역할까지 아우르며 도시재생에 기여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광주 폴리는 2011년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광주의 곳곳에 소형 건축물을 조성한 프로젝트이다. 이때를 시초로 하여 워크숍, 컨퍼런스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하였고 현재까지 설치를 이어오며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폴리는 도시 안에서 각각 단위 개체로 작동하기보다 군집된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여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폴리는 일상에서 시민들의 곁에 자리하여 함께 상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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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오두막, 후안 헤레오스
 
 
광주 폴리 첫 번째 프로젝트 ‘광주풍경’ 중 하나다. 후안 헤레오스 작가는 담양에 위치한 소쇄원, 한옥의 굴뚝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리하여 자연과 사람의 공존, 개방된 공간에 중점을 두어 폴리를 제작했다. 작품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나무의 패턴을 찾을 수 있다. 도심 속 나무의 사이사이에 위치해 있는 이 폴리는 자연의 무늬를 차용하여 어우러짐의 미학을 선사함과 동시에 소통의 장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광주 폴리는 시각적 만족을 충족시켜주는 예술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소통, 쉼터라는 실질적인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었다. 폴리는 막대한 규모의 건축물을 설치하지 않아도, 복잡한 절차의 정책을 시행하지 않아도 도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역할을 다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영향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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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잉고니어만·렘 쿨하스
 
 
두 작가들은 투표를 건축 언어로 표현했다. 이 폴리는 광주에서 가장 번화가인 충장로에 설치되었는데, 이 거리를 지나다니는 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움직임을 통해 투표행위를 할 수 있게 하였다. 응답 구간은 ‘예’, ‘아니오’, ‘중립’이라는 세 가지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어 물음에 따라 택하여 걸으면 된다. 집계된 기록들은 바로 수치화 되어 국민투표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는 광주 폴리 두 번째 프로젝트 ‘미적 자율성과 사회정치적 잠재성 사이를 오가는 중요한 오브제’라는 주제에 걸맞은 작품이다. 17세기 중반 이래로 폴리는 정치사회적 역할을 하여 사회의 비평 매체 역할을 했고 시민들의 의견을 표출하는 역할을 했다. 사회적 현상에 대한 자유로운 의문제기와 활발한 토론 등은 지역 사회를 이끌어가는 시민들의 고유 역할이다. 광주 폴리는 이 같은 역할을 직접적으로 도와 광주 민주화 운동 정신을 보존하고 확장하고자 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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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건축1.jpg

자율건축, 문훈·리얼리티즈 유나이티드(팀 에들러·얀 에들러)
 
 
광주영상복합문화관에 위치해 있는 뷰폴리이다. 뷰폴리는 일종의 전망대 폴리이다. ‘도시의 일상성 맛과 멋’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광주 폴리 세 번째 프로젝트의 일부이다. 도시의 일상적 공간이지만 하나의 장치 즉 폴리가 새로운 창조적 공간으로 탈바꿈 시킬 수 있음을 알게 한다. 이 폴리는 색색의 스트라이프로 뒤덮인 계단을 걷게 한다. 일상에 신비감과 새로움을 더하는 장치로 옥상에 오르는 길을 기대에 부풀게 만든다. 그리하여 도달한 옥상에서는 광주의 풍경을 한눈에 보게 한다.
 
옥상에 있는 ‘CHANGE’는 11개의 판을 직접 조작하여 33개의 색 조합을 만들 수 있다. 이는 빛의 도시 광주, 창조적이고 유연한 도시 광주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광주 폴리에 대한 나희덕 시인의 헌정시「빛의 옥상에서 서른 세 개의 날개를 돌려라」를 곁들어 읽으며 뷰 폴리를 만끽 할 수 있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청각적 고요함 그리고 심적 역동감은 시민들의 발걸음을 다시 이곳으로 향하게 한다.
 
 
오가 가다 오르다 내리다 흐르다 멈추다 녹다 얼다 타오르다 꺼지다 보다 듣다 생각하다 말하다
삼키다 뱉다 잡다 놓다 울다 웃다 주다 받다 묻다 답하다 밀다 당기다 열다 닫다 떠오르다
가라앉다 부르다 사라지다 넘다
서른세 개의 동사들 사이에서
하나의 파도가 밀려가고 또 하나의 파도가 밀려올 것이니
세상은 우리의 손끝에서 부서지고 다시 태어날 것이니
기다리지만 말고 서른세 개의 노를 저어 찾아라
세계의 손끝에서 마악 태어난 당신을

나희덕  「빛의 옥상에서 서른세 개의 날개를 돌려라」
 
*
 
폴리는 ‘예술의 일상화’를 가능케 한다. 무심코 걷는 거리, 공간, 건축물 등에서 폴리를 마주치게 하여 생각 회로를 돌리기 때문이다. 시각적·정신적 자극을 받은 우리는 이 폴리의 역할 또는 의미를 떠올려보며 신선한 재미와 더불어 예술의 힘을 느낀다.
 
그리고 폴리는 ‘일상의 예술화’를 가능케 한다. 칙칙한 아스팔트, 빽빽한 빌딩과 같은 회색 도시에서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폴리로 인해 생기를 얻고 의미를 부여받고 역사를 간직한다. 우리는 역동적이고 창의가 넘치는 도시로 가꿀 수 있다.
 
그래서 광주 폴리를 축약하자면 ‘예술의 일상화’ 그리고 ‘일상의 예술화’이다. 폴리와 함께 다방면에서 예술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출처 : 광주광역시청, 광주폴리

 

 

[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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